며칠째 계속되는 우울한 날씨에 태양이 먹구름에 완전히 가려져서 커튼을 치지 않아도 방 안이 어두컴컴하다.

 언뜻보면 평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듯한 집안에 묘한 위화감이 맴돈다. 오늘 점심식사시간에는 카라마츠군이 자리에 없었다.

 "그럼 다녀와."

 "응, 금방 돌아올게."

 오소마츠가 약국에 약을 사러 나가고, 나는 쟁반 위에 죽과 수저를 담아 2층으로 올라갔다. 감기에 걸린 카라마츠군을 위해서였다.

 평소대로라면 미닫이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섰을 때 상냥한 미소와 나를 '시스터'하고 부르는 소리가 반겨주어야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에는 식은땀이 잔뜩 맺혀 있고, 매마른 입술사이에서는 괴로운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그가 이토록 지독한 감기에 걸리게 된 것은 어찌보면… 아니, 확실하게 내 탓이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볼일을 보러 나갔다가 자신의 가방을 열어보았을 때, 나는 언제나 가지고 다니던 접이식우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며칠 전 가방을 정리하면서 잠시 빼놨다가 그대로 방 안에 두고 온 것이었다.

 웬만하면 그냥 비를 맞으며 집으로 달려가는 것을 택하는 나이지만, 그런 내게도 그 날의 비는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형제들 중 한 명에게 전화를 해서 우산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기로 했다.

 누구보다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물론 소꿉친구로서 가장 마음이 편한 오소마츠였다. 그런데 내가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문득 휴대전화기가 울렸다. 수화기너머로부터 들려온 목소리는 오소마츠의 밝은 하이톤이 아닌 카라마츠군의 차분한 로우톤 목소리였다.

 "비가 많이 오는데, 우산은 가지고 나간 거냐."

 …

 …

 …

 그때 내가 여분의 배터리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차가 많이 막히니 좀 더 여유를 잡고 나오라고 미리 연락했을 텐데.

 하다못해 번호를 외우고 있었더라면, 다른 사람에게 휴대전화기를 빌려서라도 그 말을 전했을 텐데.

 내가 바보라서, 그 날 카라마츠군은 싸늘한 정류장에서 한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야 했다.

 …

 …

 …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카라마츠군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긴 뒤 드러난 이마 위에 가볍게 손을 얹어본다. 역시 열이 전혀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정점을 찍으려는 듯이 펄펄 끓고 있다.

 약을 먹으려면 죽이든 뭐든 뭐라도 조금 먹어야 하는데, 지금 카라마츠군은 수저를 들기는 커녕 몸을 일으킬 기운 조차 없어보인다. 어쩌면 병원에 가서 해열제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힘겹게 눈을 뜬 카라마츠군이 흐릿한 초점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렇잖아도 욱씬거리던 마음이 더욱 아파온다.

 열에 일가견이 있는 나는 지금 카라마츠군이 얼마나 큰 무게를 견뎌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몸은 기절해 있는 상태나 마찬가지인데, 실낱 같은 의식이 나를 보고, 내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카라마츠군은 이런 순간에도 자기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한다.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그것이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인지, 나로서는 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가끔은 다른 사람에게 의지해도 좋을 텐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버텨가며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한심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하다. 너에게 귀찮은 일을 시켜버렸군… 이건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그만 네 방으로 가서 쉬어라. 여기 있으면 감기가 옮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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