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친구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에서는 장차 마을을 이끌어갈 닌자들을 양성한다. 넓은 의미로는 불의 나라 국방의 토대가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로는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다양한 닌자의 전투 기술을 배운다. 체술은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 수업에서는 운동장에 모여 일대일로 대련을 한다. 자신의 체술 능력이 동급생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여자끼리 남자끼리 나뉘어서 하게 되므로, 여자애들의 대련이 끝나면 남자애들은 몸풀기 운동을 시작한다.

 여자애들은 벤치에 앉아서 쉬어도 되지만 대부분 남자애들의 대련을 구경하러 앞으로 나와 있다. 그녀들의 시선이 누구에게 향해 있는지 안 봐도 뻔하다. 체술능력이 좋은 여자애는 방금 대련을 끝내고도 신이 나서 발을 동동거린다. 할 말을 잃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숨이 나왔다.

 "왜 그래, ?"

 "올해도 우리는 하위권이네."

 옆에 있는 린에게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떨군다. 기운 넘치는 여자애들 때문에 둘 다 뒤로 밀려나서 오비토며 카카시며 당최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단짝인 린만은 내 한숨 소리를 들었다. 그 옆에는 아스마를 보러 나온 쿠레나이도 있다.

 "린과 너는 의료닌자가 될 거잖아. 전투형에 속하지만 나도 환술이 특기라서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 모든 걸 다 잘하는 사람은 없어. 하타케 카카시 쟤만 빼고."

 여자애들 사이에 틈이 생겨서 살짝 보인다. 카카시의 상대가 또 쓰러졌다. 붕- 퍽! 소리부터가 남다르다. 수준이 다르다는 걸 알지만 카카시는 애써 상대를 봐주지 않고, 묵묵이 쓰러뜨린 뒤 나른한 표정을 짓는다. 누가 덤벼도 몇 초 만에 끝나버리니 지루할 만도 하다.

 남자애들은 종종 너무 잘난체 하는 거 아니냐며 카카시를 질투하지만, 나는 그가 어째서 상대를 조금도 봐주지 않는지 알고 있다. 닌자는 적의 앞에서 겸손할 필요가 없다. 전력이 약할수록 오히려 강자의 가면을 써야 한다. 닌자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뿐만 아니라, 상대의 의지까지 컨트롤하는 것이다.

 카카시에게 기본을 배운 덕분에, 나는 린이 모르는 쿠레나이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 제일 먼저 쓸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은─.

 "어, 아스마 급소 맞았나 보다."

 "뭐?"

 전문용어로 '교란'이라고 한다. 이번 경우를 예로 들자면 말로 떠보는 것이다. 큭큭큭. 쿠레나이는 아스마에게 완전히 시선을 빼앗겼다. 그보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린의 손을 꼭 붙잡고 틈새를 파고들어 앞으로 나간다. 비켜라, 비켜, 공주님 지나가신다.

 여자애들을 밀쳐가며 운동장이 제일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뻔뻔하지만 욕을 먹어도 내가 먹는다. 대련할 때 일부러 체력을 남겨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린, 저기 봐, 카카시가 또 대련을 하나 봐."

 "응, 그리고… 오비토도 보이는걸…?"

 아이들에게 가려져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세히 보니 린의 말대로 카카시의 맞은편에 오비토가 서 있다. 그의 피나는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걱정이 앞선다. 카카시에게 경쟁심을 느끼는 오비토니까, 누구보다 지기 싫을 테니까, 어쩌면 크게 다칠지도─.

 퍽─. 타격음이 울림과 동시에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나의 달링이 얻어맞는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카카시가 오비토의 왼쪽 뺨에 주먹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왜 얼굴을 때려! 달링의 얼굴에 파랗게 멍이 들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오비토는 침착하게 대응했지만 그를 사랑하기에 카카시가 진심으로 미웠다. 봐주지 않는 것이 정답이라 해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눈 앞에서 얻어맞고 있는데 그런 상황을 응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오비토에게도 이것은 혹독한 시련이겠지. 카카시는 이미 아카데미에서 조기졸업이 언급되고 있는 천재다. 7년 뒤의 자신과 싸운다고 생각하면 상대의 기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까.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하는지, 오비토가 그러한 부담을 항상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의 패배가 더욱 쓰게 느껴졌다.

 "다행히 실력이 늘었네. 노력에 비해서는 여전히 한심한 수준이다만."

 카카시는 오비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금까지 다른 남자애들에게는 하지 않았던 이례적인 행동이었다. 원래 그는 쓰러진 상대가 일어나든지 말든지 관심도 없었고, 별달리 말을 건네지도 않았다. 구경하던 여자애들은 꺄아 소리를 지르고 남자애들은 얄쌍한 눈으로 카카시를 쳐다본다. 이번에도 잘난체라고 생각했겠지만 녀석들은 카카시를 모른다. 내가 듣기에 '한심'은 크게 의미가 없고, '노력에 비해서'가 중요한 부분이다. 비록 졌지만 노력한 것에 대해서 만큼은 인정받았다. 그것이 녀석들과 오비토의 결정적인 차이다.

 오비토는 아니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카카시의 손을 잡고, 가뿐히 일어나 엉덩이를 탁탁 털었다. 평소처럼 털털한 모습을 보니 그제서야 나도 긴장이 풀렸다. 처음부터 누가 이기는지 따윈 중요하지 않았다. 린의 마음도 나와 같았을 것이다. 다른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아이를 응원하느라 떠들썩할 때, 우리는 단지 카카시와 오비토가 다치지 않길 바라며 가슴을 졸였다.

 (…)

 오늘 수업은 상당히 고된 것이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종례를 했다. 하나 둘 씩 교실을 빠져나가면서 아이고 곡소리를 낸다. 그리고 아까부터 안절부절 못하는 우리 쿠레나이, 더는 참을 수 없었는지 아스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묻는다.

 "괜찮아…?"

 "뭐가?"

 "아까 맞은 데 말이야… 지금도 아파…?"

 "글쎄, 조금 쓰라리긴 한데. 그건 왜?"

 "병원에 가…! 꼭 가야 해…!"

 "응?"

 그러고는 자기의 눈동자 색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후다닥 사라졌다. 당연히 아스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평범하게 까진 것뿐인데 병원에 가라니. 멀리서 지켜보며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혼났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에게도 미래의 아내의 손길이 필요한 사랑스러운 달링이 있다. 카카시와 대련할 때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왼쪽 뺨에 긁힌 듯한 상처가 있다. 나와 린은 가벼운 구급상자를 언제나 가지고 다닌다. 이래 봬도 장래에 의료닌자가 되는 것이 목표니까.

 "저기, 오비토 ㄱ…"

 "네에, 무슨 일이십니까, 카카시 너무 좋아 1人 씨."

 그가 무관심한 말투로 대답하며 가방에 책을 넣는다. 이런 말을 듣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기에 벙찐 얼굴이 되었다. 내가 카카시와 친한 건 사실이고 교실에서도 그런 모습을 가끔 보이긴 했지만. . . . 혹시, 오늘 운동장에서 응원하는 여자애들 사이에 있었던 것을 비꼬아 말하는 건가. 카카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린이고 나는 그냥 단짝의 옆에 있었을 뿐인데. 달링에게 오해를 받는 것은 슬프지만 딱히 해명할 방법도 없다. 그보다 반창고다.

 "저, 저기… 이거……."

 고개를 돌려 내가 앞으로 내민 반창고를 말 없이 바라보던 오비토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그리고는 붙여달라는 듯이 자신의 왼쪽 뺨을 살짝 내밀었다.

 "오비토 군……."

 나는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며 머뭇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얼굴이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심하지만 못하겠다고 말하려는 순간, 오비토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아끌며 말했다.

 "붙여 주는 게 좋아."

 미래의 남편이 아내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좋은 의미로 꾸우우욱 조여 왔다. 기쁘면서도 긴장이 되어서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의료반 수업에서 배웠던 것들에 비하면 간단한 일인데. 나는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에게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오늘… 응원…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난… 오비토 군이 다칠까 봐… 그게 너무 걱정돼서……."

 "아아, 그랬던 거야?"

 왠지 다정한 말투.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당연하지! 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이미 머릿속은 '좋아'로 가득, 가슴속은 '사랑'으로 가득, 어떤 말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수줍게 고개만 끄덕였다.

 "바보 카카시는 그렇게 많은 여자애들에게 응원을 받았는데도 조금도 기뻐 보이지 않았지…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아. 나도 이제는 녀석이 부럽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비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의 시선은 이제 교실 밖의 복도에 향해 있다. 그런데 문득 머리 위로 익숙한 손길이 느껴졌다. 고맙다고 말하듯이 쓰담쓰담. 나에게 그보다 귀중한 보상은 없었다.

 "왜냐면 내가 졌을 때도 너는 웃어 줬잖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다른 여자애들은 카카시의 잘생긴 낯짝이나 구경하고 있었겠지. 덤으로 내가 얻어맞는 것도. 하지만 너는 나를 제대로 지켜보고 있었어. 그러니까 난… 너 하나만으로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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