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처음 우치하에 왔을 때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였다. 낯설어하거나, 경멸하거나.
이렇게 된 이상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는 녀석은 없겠지. 나도 딱히 아쉬울 건 없었다. 이참에 비혼주의자가 되려고 마음먹었는데. "……." 이즈나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그의 사가에 숨어서 기다렸다. 모퉁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기다리고 있다가 타이밍에 맞춰 팔을 홱 잡아끌었다. "잠깐 얘기 좀 해…!" "우왓…! 뭐, 뭐야…!" 잠시후, 나는 근처의 숲으로 이즈나를 데려왔다. 다른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다. 일부러 조용한 장소를 골라서 녀석과 내가 나누는 이야기를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할 셈이었다. "으으… 무슨 여자애가 힘이 이렇게 세…!" 급하게 오느라 힘조절을 못해서 이즈나가 내게 잡혔던 손목에 아픔을 호소했다. 녀석이 흐트러진 옷을 추스르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쩐지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덕분에 의도치 않게 이상야릇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그래, 여자든 남자든 갑자기 이성에게 팔을 붙잡혀 끌려오면 무섭겠지. 더구나 그 이성이 나라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나도 더는 봐줄 생각이 없거든! 탁─. 이즈나의 양팔을 그러쥐고 뒤에 있던 기둥에 밀어붙혔다. 이번에는 딱딱한 나무에 등을 부딪쳤지만, 아픈 것보다 놀란 표정이 되었다. "더는 못 참아." "하… 하지만…" 더 하면 울겠네, 이 자식. 그런 거 아니거든? "말해. 무슨 속셈이야." "아… 저기… 일단 진정하는 게…" "이봐, 약혼자 씨. 지금 나랑 장난해?" "아니… 말했잖아… 나는 비밀을 지켜야… 헉!" 멱살을 콱 움켜쥐자 내게서 본격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꼈나 보다. 시선을 회피하는 녀석에게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갔다. 녀석의 긴 머리카락 때문인지 묘하게 청순한 외모 탓인지… 뭐랄까, 점점, 내 모습이 입술을 덮치기 일보직전의 치한같았다. "나 참… 좋아, 신사답게 대해 주지." "으응… 고… 고마워… 하하……." "어물쩍 넘어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걸." "네가 화내는 거 이해해. 하지만 이번 일, 난 어디까지나 제3자의 입장이야. 나야말로 가운데 끼어서 곤란하다고. 생각해 봐, 너랑 약혼한 건 내게 있어서도 인생을 건 도박인데… 이제 와서 쉽게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였다면 나도 절대 그런 일은 벌이지 않았어." "제3자라니, 무슨 소리야? 다른 녀석이 이 일에 연관되어 있어? 누구한테 협박이라도 당하고 있는 거야? 어떤 자식이 감히… 숨지 말고 당장 나오라 해! 약혼이니 뭐니 비겁한 수 쓰지 말고 불만이 있으면 내 앞에서 직접 말하는 게 신상에 좋을 거라 전해! 걱정 마, 이즈나 넌 내가 지켜줄 테니까!" "오해야, 오해.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나는 나한테 있어서 정말 중요한 사람과 약속했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 사람과의 의리를 져버릴 수는 없거든. 그러니까 절대로 말 못해. 정 비밀을 듣고 싶다면… 너, 너 마음대로 해! 무슨 짓을 해도 털어놓지 않을 거야!" "아니, 정말 내가 널 어떻게 할 것처럼 말하지 마. 분위기 자꾸 이상해지잖아. 뭐, 어쨌든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 그 대신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겠어. 네 중요한 사람이 뭐라 지껄이든 내 약혼자는 이미 너로 정해졌다고. 알아들어? 맘에 안 들면 나랑 직접 얘기하라고 해!" "알았어… 얘기는 해 볼게… 근데, 그 사람도 딱히 용기가 없어서 숨어 있는 건 아니야. 지금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자세히 얘기해 줄 수는 없지만 네 앞에 당당히 나타날 수 있는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게다가 너도 내 약혼자로 있으면 억지로 싫은 녀석과 만날 필요 없잖아." 젠장, 이즈나 녀석. 잘도 빠져나가는구만. 변명에 불과한 소리긴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어쩌면 더 짜증나는 녀석과 약혼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 최악은 면했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결혼한다 해도 이즈나 정도면 솔직히 마다할 이유가 없고, 하지 않는다 해도 그 전까지 자유를 준다면… 나한테도 딱히 나쁠 것이 없다. "헤헤……." 자식, 웃기는. 중요한 사람이라니, 누구지? 이즈나는 워낙 교제 범위가 넓어서 짐작하기 어렵다. 나와 약혼해서 뭘 얻어내려는 건지 알아내지 않으면. 어쨌든 이것으로 이즈나가 그 사람과 이번 일을 계획했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생각해 보자… 이즈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타지마 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계신 듯하니 상관 없을 테고… 다음은… 형제들… 그 중에서……. "저, 저기! 여기까지 왔으니까 뭐라도 먹고 갈래?" 갑자기 뭔 전개야. 라면 먹고 갈래도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걸 방해하려는 거냐. 발버둥쳐 봤자 소용없어. 마침 배고프던 참이고 잘됐네. 라면… 아니, 차라도 한잔 얻어 마시고 갈까. "자, 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이런 건… 이상해…" 딱히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뭘 의식하는 거지. 이즈나가 괜스레 두리번거리며 나를 사가 쪽으로 이끌었다. 다시 보니 좀… 뭐랄까,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뭐, 타지마 님은 자유분방한 우리 부모님과 차원이 다르신 분이다. 아마 이즈나도 다른 형제들처럼 엄격하게 자랐겠지. 그런 녀석이라 더 놀려 주고 싶다. "아무리 뭐래도 약혼자를 너무 경계하네." "약혼자라서야. 원래 같이 있어도 딱히 이상한 게 아니니까, 그래서 오히려 이상하달까, 애초에 평범한 상황이 아니잖아. 나는 아직 너한테 어떤 태도를 취해야 좋을지 모르겠단 말야." 아하,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이거지? 처음에 나한테 착각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그 오만한 녀석은 어디 갔길래 코빼기도 안 보이냐. 실은 엄청 긴장하고 있었던 거 아냐? 귀여운 녀석… 너야말로 문제 일으키지 마라. 숙맥 주제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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