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하 일족 안에서 '무장'의 삶은 일년의 절반 이상을 훈련과 전투로 다 써 버릴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성년이 되기 전의 '준무장'은 유사시에 똑같이 전장에 나가 싸우지만, 일반적으로 훈련 위주의 활동을 한다.

 이런 견습생들을 두 명의 리더가 나누어 관리함으로써 차세대 양성이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보통 성인이 되기 2-3년 전 발탁되어 성인이 된 뒤에 후배에게 물려준다.

 나는 머잖아 다음 리더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하나는 보나마나 이즈나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중요한데…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마다라는 아직 고민이 필요한 모양이다.

 기왕이면 내 약혼자를 돕고 싶었기 때문에 과감히 그의 생각을 물었다.

 마다라는 내게 그 정도의 배짱이면 충분히 해낼 거라면서 조건 하나를 내걸었다.

 다름아닌, '신뢰를 얻는 것'.

 사실, 현재의 나는 준무장에 해당하는 집단의 일원도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렇다.

 단장이 되려면 일단 단원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단원이 되기 위해, 이즈나를 찾았다.

 이즈나로서는 무인의 삶에 어떤 희생이 따르는지를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전 평범한 여인으로 사는 쪽을 권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싸우고 싶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고민이라면 이미 충분히 했으니까. 예상했다는 듯 이즈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인이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감수해야 한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정도는.

 "……."

 예전의 나였다면 자신의 꿈을 쫓는 것만큼 인간으로서 떳떳한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이즈나에게 면목이 없다. 그와의 약혼이 나로 하여금 이전에 없던 책임감을 느끼게 했다.

 "미안."

 전장에서 멋지게 싸울 수 있는 약혼자라면 모를까, 한 사람의 아녀자, 언제나 따뜻한 미소와 함께 지아비를 기다리는, 그리고 반기는, '이상적인' 약혼자가 될 자신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약혼자인 이즈나가 무덤덤했던 이유는 진작부터 그런 나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거긴 사내놈들뿐이라서 보통 여자애가 일원이 되려 하지는 않아. 여자가 무인의 길을 택했을 때는 개인교사를 구하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내놈들과 같이 뛰고~ 뒹굴고~ 물 속에 빠지고~ 심지어 숙박훈련 때는~~~"

 "아… 음……."

 나는 머쓱하게 뒷덜미를 긁적였다. 말하나 마나한 얘기인데도 약혼자에게 직접 들으니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자는 건…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긴 했다.

 "나, 나야말로 이참에 한마디 해 두고 싶은데! 진작에 여자애들을 위한 수양 단체를 만들어 놨으면 이런 고민은 할 필요 없었을 거 아냐. 여자들끼리 단합할 기회를 주지 않으니 불편해도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타지마 님께서 교사를 구해 주시겠다고 했을 때도 기어이 겸양하고 왔으니까 말리지 마. 난 너랑 같이 리더가 될 거야."

 "심지어 리더가 되는 게 목표라니, 쉽지 않을 텐데. 사내놈들에게 신뢰를 얻는 게… 알잖아, 우열을 가리는 문제에는 각자의 자존심이 걸려 있어. 싸우다 보면 친구고 뭐고 최소한의 자비심마저 잊게 돼."

 "알아. 걔네 앞에서 '내가 네놈들 머리 위에 있겠다'고 말하면 일단 장렬한 비웃음을 받고 시작하겠지. 지금까지 없었던 냉대와 멸시를 맛보겠지. 각오라면 되어 있어.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걸."

 이즈나는 무언가 더 해야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마음 속에서 변화가 일어났는지 한껏 들이쉰 숨을 꾹 삼켰다. 그리고는 단지 미소만 머금었다. 나를 향한 그의 온전한 신뢰가 눈빛으로부터 느껴졌다.

 "하지만 너무하지 않아? 나는 내 약혼녀의 땀 흘리는 모습, 흐트러진 모습, 물에 젖은 모습, 심지어 자는 모습까지 다른 놈들에게 다 보여 줘야 돼. 아직까지는, 그 정도의 각오는 되어 있지 않아."

 터무니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라면 오히려 잔머리를 굴리기 보다는 맨몸으로 부딪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쪽이 사내놈들 성미에 맞기도 하고. 어쨌거나 이즈나를 설득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 세치혀로 이 정도쯤은─

 "저… 저기… 으음… 내가 최대한 조심할게… 장담은 못하겠지만… 너한테는 정말 미안해… 그렇다고 다시 타지마 님께 가서 나랑 혼인하기 싫다고 하지는 않을 거지…?"

 "글쎄-."

 환장하겠네. 약혼자 앞에서는 책에서 배웠던 것들이 하나도 쓸모없었다. 이즈나가 팔짱만 껴도, 고개만 돌려도… 그를 어떻게 구워 삶을지 궁리하기는커녕,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안 돼애애애… 힝… 아니, 아니야! 다시, 다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그래도 안 된다고 하면 오늘은 더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네 앞에서 깨끗하게 사라져 줄 테니까, 응? 이즈나아아아-."

 이게 최선이다. 감히 어찌 이처럼 훌륭하신 약혼자 님 앞에서 잔머리를 쓰겠는가. 무조건 진심이다. 근성으로 부딪히지 않으면. 아니나 다를까, 이즈나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좋아, 먹혔어!

 "도 참, 내가 널 모를까 봐?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어. 하지만 생각보다 빨랐으니까… 조금은 당혹스러운 것도 사실이야. 다른 녀석들에게는 내가 잘 얘기해 둘게. 미노루와 료우가 기뻐하겠다."

 "그 두 녀석은 처음부터 내 편이었지. 누가 책벌레들 아니랄까봐 나만 보면 무언가를 물어보려고 난리라니까. 지난번에 가르쳐 줬던 건 제대로 기억할런지 모르겠네. 나는 이제부터 신체단련에 집중해야 하는데… 당분간 네가 애들 좀 봐줘야겠다. 대신 이즈나가 바쁠 때는 나만 믿어!"

 "사실 난 리더같은 거랑 어울리지 않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없어서 힘들었어. 형에게조차 말이야. 근데 넌 달라. 너만 있으면 아무 걱정 없을 것 같아. 네가 웬만한 사내놈들보다 더 듬직하다는 걸 알고 있거든."

 "마다라가 들으면 울겠다. 나 때문에 더이상 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원망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네, 이참에 확실하게 브라콤 졸업시켜 줘야지 안 그럼 피곤할 거야. 이즈나 네가 내꺼라는 걸 모두가 알게 해 줄게."

 "오늘의 명대사-.(짝짝짝)"

 사랑스럽다… 이즈나의 웃는 얼굴을 보며 진지하게 생각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일어났다. 녀석의 옆에 앉으니 분위기가 달라졌다. 조용히, 차분히, 내 약혼자의 팔이 어깨를 감싸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하는 게 옳았던 걸지도. 덕분에 강해지는 것, 의지하는 것, 모두 익숙해졌다. 내가 익숙해지자 이즈나도 내게 기대기 시작했다.

 "아니. 그래도 역시 조금 우울해."

 이즈나의 목소리가 변하는 것은 전부터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매번 놀라곤 한다.

 "너랑 약혼까지 해 놓고 우습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생각도 들고…"

 방금 전까지 여자애 못지 않은 애교쟁이었다가 갑자기 타지마 님처럼 변해 버리니까.

 어떨 때는 마다라와 비슷하기도 하다. 평범하게 남자답다고 해야 하나…

 ", 왜 그렇게 봐?"

 "아, 아아… 거짓말이라도 이럴 때는 '긴장해야 돼!'라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못하겠다. 양심적으로… 음… 너 외에 다른 놈들이 나를… 동료애라면 모를까… 그 이상은……."

 아직 미성숙한 몸이라 해도 남자애의 가슴은 널찍하구나. 뭐랄까, 자연스레 손을 올려 놓았다. 이렇게, 쏙 하는 느낌으로 안기면서, 나도 모르게. 어째서인가 굉장히 애틋한 표정을 짓게 되었다.

 어떡해. 이즈나가 생각해도 이런 내 모습은 어색한가 봐. 아니, 의외로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넘어가 줬다. 다른 데 보면서 웃음 참는 건 아니겠지. 헛기침 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긴장하고 있을 테니까, 너도 긴장해. 이런 말하기 싫지만 내가 너보다 인기 좋잖아."

 뭐야, 재수없게. 그래, 그렇긴 하지. 지금까지 여자애들 때문에 질투한 적은 없었는데.

 "처음인 줄 알았지?"

 "에? 앗, 음…! 음음…!"

 이즈나가 먼저 뽀뽀할 줄은. 나는 그의 면모를 전부 알고 있지 않았다.

 분하지만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자만했던 거다. 상냥한 말투, 귀여운 행동에.

 어쩌면 속았는지도. 이러어어어언, 딥키스 하지 마아아. 선수 같잖아아아아.

 "제발… 아니라고 해줘… 또… 나쁜남자는 아니라고……."

 말하면 뭐해, 벌써 약혼해 버린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야.

 남자 따위 처음부터 아무래도 좋았…ㄴ으으으으!!! 저리 가아아앗!!!

 "너는 언제나의 내가 좋은 거지? 좋을대로 해 그럼. 얌전히 있을 테니까."

 "너도 똑같아!!! 이미 알아 버렸다고!!! 이제는 네가 징그럽단 말이야!!!"

 "뭐어? 이 정도로 징그럽다고 하면 어떡해? 갈 길이 머네. 으휴…"

 아무것도 못 봤다.

 아무것도 못 들었다.

 절대 아무 일도 없었다.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