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나를 만나러 그의 사가를 찾았다. 그런데 오늘은 먼저 온 손님이 있는지 떠들썩했다. 누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거지. 문턱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서니 마다라의 모습이 보였다.

 이즈나는 형의 손에 있는 무언가를 낚아채기 위해 폴짝폴짝 고군분투하는 중. 마다라는 그런 귀여운 동생을 신나게 놀려대고 있는 중이었다. 겉으로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평범한 공책 같았다.

 "형!"

 "이즈나 너, 어쩜 이리도 키가 안 자라? 형이 시킨대로 밥 잘 챙겨 먹고 있는 거야? 워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한 게 불과 일주일 전이잖아! 나도 친구들 중에서는 큰 편이야! 형이 내 나이 때 너무… 윽! 밥을 많이 먹은 거지! 이리 줘! 안 그럼 때릴 거야! 형이라도 때릴 거라고!"

 "컥! 커헉! 음, 형만큼 크려면 아직 멀었지만 힘이 세진 걸 보니 잘 먹고 있는 게 분명하네. 어떡할까, 이만 돌려 줄까, 응? 이번에는 어디 힘으로 뺏어 봐.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자. 워어이-."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키도 컸고! 형의 말대로 힘도 세졌고! 칭찬받는 횟수도 늘어났고! 옷 안쪽도 여러 가지로 형과 비슷해졌어! 이제 됐지! 그걸 한테 보여주는 것만은 하지ㅁ… 헉."

 이제야 봤구나. 마다라보다 한발짝 늦게 내 인기척을 알아차린 이즈나는 폴짝대느라 흘러내린 옷을 추켜올리고 다급히 안색을 고쳤다. '옷 안쪽도 여러 가지'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그러나 건강한 사고를 가진 인간이라면 당연히 책에 관심을 보이는 게 먼저다.

 "세상에서 가장 오그라드는 브라콤 TOP 1, 2께서 오늘은 왜들 그러시나? 뭘 가지고 투닥대는 거야?"

 "이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형제 간의 뜨거운 우애가 담긴 비밀 교환일기라는 굉장한 물건이지. 얼마나 굉장하냐면, 이즈나가 무려 6살 때 쓴 일기도 있어. 뭐라고 썼는지 다같이 읽어 볼까?"

 "기다려! 비밀이 공개되는 날 우애는 깨지는 거야! 그날부터 의상한 형제라고! 각오라면 되어 있으니까 잘 생각해! 한테 보여 줬다간 형 앞에서 피 토하고 죽어 버릴 거야아아아!"

 형제끼리 교환일기라니. 과연 놀랍다. 하시라마랑 토비라마도 '에-'라는 반응을 보일 만한 역대급 닭살짓이다. 뭐, 마다라로서는 훗날 동생을 놀려먹기 딱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네. 투닥거린대봤자 남들이 보기에는 노닥거리는 거나 다름없고 달달한 분위기는 웬만한 연인이 부럽지 않다.

 "거 참, 피를 토할 정도로 부끄러운 내용도 아니잖아. 어디 보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이거야. '마다라 형 엄청 멋있는데. 왜 나밖에 모르지? 나는 어른이 되면 형이랑, 아니, 줄긋고, 형 닮은 여자랑 살 거야. 엄마가 형이랑 혼인하는 거 아니래.' 어흑, 몇 번을 읽어도 눈물난다!"

 "읽을 때마다 웃어대니까 눈물이 나지! 다음은 형 거 읽어! 치사하게 나만 놀리지 말고!"

 애당초 나는 여기서 배경 밖 인물이다. 모처럼 형제가 러브러브하고 있는데 눈치없이 끼고 싶지 않다.

 그건 둘째치고, '형 닮은 여자랑 살 거야'는 실제로 거의 이루어진 상태 아닌가…?

 본인들은 자각이 없나 보다. 뭐, 내가 티내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아직까지 마다라만큼 나와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이건 교환일기라 쓰고 '우치하 이즈나 육아일기'라 읽는단다. 네 비밀들은 내 일기에 훨씬 자세히 적혀 있어. 잊었니?"

 "아… 마, 맞아. 그랬지 참! 육아일기라니, 나한테는 그런 말 한마디도 안 했잖아! 남자 대 남자의 우정 쌓기라고 했잖아! 지금이야 물론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만 그때는 정말 믿었단 말야!"

 마다라와 이즈나. 형제이기 전에 당주의 아들로 태어난 두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서로를 경계해야 하는 입장이다. 후계자 선정을 제쳐놓고 생각하더라도 형이 동생에게 혹은 동생이 형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면 큰 문제가 된다.

 그런 면에서 하시라마와 토비라마는 모범적인 사례다. 센쥬에 있을 적, 두 사람을 볼 때는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었다. 반면에 내가 우치하에 왔을 때 이즈나는 이미 마다라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토비라마 없는 하시라마는 더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즈나 없는 마다라는 넘어진다.

 지금껏 이즈나는 우치하와 마다라를 이어주는 든든한 다리 역할을 해 왔다. 그 다리가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이제라도 무슨 짓이든 해서 두 사람을 조금 떨어뜨려 놓아야 할까? 글쎄, 현재의 모습을 보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내가 못난 아들들을 둔 탓에 네가 괴로움을 겪는구나.'

 지금으로부터 몇 달 전, 타지마 님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처음부터 그것이 그의 진심이었다.

 (…)

 어느날 갑자기 타지마 님께 불려갔다. 아버지도, 이즈나도 없이. 오로지 나 혼자.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나는 수장님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이전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따뜻한 말도, 웃음도 없었다. 처음에는 어떤 대화도 없이 묵묵히 차를 마셨다. 나로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타지마 님께서 조용히 찻잔을 내려 놓으시며 말씀하셨다.

 "1년 전… 귀여운 구석이라곤 없는 장남 녀석이 어쩐 일로 아비를 찾아와서 부탁하더구나. 마음에 둔 여인이 있으니 허락해 달라고. 당연히 나는 허락해 줄 수 없었다. 다른 자잘한 이유들을 제쳐두더라도, 녀석에게는 이미 정해진 혼처가 있으니까."

 마다라가 5살 되던 해. 이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 이미 그에게는 미래의 아내가 결정되어 있었다. 하시라마보다 먼저였던 점을 감안하면 한 시대의 풍습으로 본다 해도 너무 빨랐다.

 지금까지도 마다라에게는 자신의 약혼자와 딱 한 번 같은 장소에 있었던 경험이 전부다. 얼굴을 똑바로 마주본 적도, 말을 섞은 적도 없고,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어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것뿐이라고 했다.

 "마다라는 제 어미의 강한 성정을 그대로 물려받아 포기하는 법이 없어. 언제나 전장에서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을 각오로 싸우지. 여자 쪽의 혼처가 결정되면 마음을 접을 거라 생각했건만…"

 결혼은 두 집안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성립되는 긴 거래다. 한때에 지나지 않은 감정 따위를 내세워서 뭘 어찌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애는 운명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하지만 마다라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시라마 못지 않은 바보다. 게다가 고집불통이기까지 해서. 누구에게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입이 불어터지도록 얘기해 봤자 들리지 않을 게 뻔하다.

 "…1년 뒤, 이번에는 이즈나가 찾아와 응석을 부리더군. 여기서부터는 너도 잘 아는 얘기다. 누구 자식 아니랄까봐, 녀석이 똑같은 생각으로 선수를 쳤어. 눈앞에서 빼앗기기 전에 누구의 여자도 될 수 없게 만든 게야. 그까짓 약혼쯤은 언제든 깰 수 있으니. 뒤에서 나도는 풍문쯤은 감수하겠다는 거겠지."

 타지마 님께서 내게 차를 따라 주실 때 그는 한결 부드러워진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몸 둘 바를 몰랐다. 잔을 앞으로 내밀고 있다가 가슴 앞으로 가져온 나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용히 차를 마셨다.

 "녀석들에게 아비로서 미안한 마음뿐이야. 특히 마다라는… 원래는 장남의 운명을 타고난 녀석이 아니니까. 더욱 마음이 쓰이는구나. 다섯 명의 자식들 중 셋이 죽고 이제 둘만 남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계속 늙고 있어. 지금이 아니여도 언젠가는 너희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타지마 님의 말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섣부른 행동을 삼가한 채 다만 따뜻한 차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또 가라앉히며 기다렸다.

 "……."

 끝일 리가 없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이즈나와 내 약혼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테니까. 나는 수장의 딸도, 명문가의 딸도 아니다. 이용할 가치가 없는데다 이미 다른 자식의 마음에 든 여자이기까지 하다.

 "나는 네 통찰력을 믿는다. 일족의 수장으로서 마다라는 더할나위 없이 뛰어난 녀석이지. 전장에서라면 아마 대적할 자가 없을 게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야. '당주로서'는 엄연히 다른 얘기다. 지금은 이즈나가 녀석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두고 볼 수 있겠느냐."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단지 저는… 제게는… 너무나도 부담이 큰 임무라…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지금은 아직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제 주제에 그런… 끝내 결심이 설지, 어떨지, 그것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니,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부족한 저를 용서하십시오."

 (…)

 "이 형에게 감사해라. 너는 힘들게 자신을 피력할 필요가 없거든. 여기에 다 쓰여 있으니까. 우치하 이즈나를 이불에 넣으면 언제 잠들고 언제 일어나는가? 이즈나의 입에 음식을 넣으면 뭘 삼키고 뭘 뱉는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축적과 배설의 주기까지…"

 "더러운 얘기까지 꺼낸다면 나도 가만 있지 않겠어! 일기가 없어도 형에 대해서라면 뭐든 알고 있으니까! 형은 사실 여자애를 무서워하지~ 일부러 여자애 앞에서 이상한 짓하고 쫓아내 버려야만 안심이 되지~ 그것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여기서 하나하나 다 얘기해 버릴까 보다!"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여전히 천진난만한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허허허 웃으니 수장님께서 목숨보다 아끼시는 두 남자가 투닥대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내게로 관심을 돌렸다. 귀하신 도련님들 앞에서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일 수밖에 없다. 이런 여자라도 긴히 써 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잘들 논다. 에휴."

 "앗, 잠깐! !"

 타지마 님… 저 못하겠어요…….

 작심하고 나서도 그때뿐이에요. 만나자마자 깨닫는걸요. 무리라는 것쯤은 너무 당연하지 않나요. 처음부터 사람 잘못 고르신 거예요. 제 주제에, 제가 무슨 수로 이 둘을 갈라놓냐고요.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셔도, '그때까지만'이라고 명령하셔도, 제 마음은 절대 납득하지 못한단 말예요.

 "미안, 미안. 뭔가 중요한 볼일이야?"

 "굳이 말하자면 대화를 좀 하고 싶었어."

 "진작에 얘기할 것이지. 둘 중에 누구랑?"

 "그게 말이지, 참 어려운 문제네. 하하하하."

 난제에 부딪히면 웃고 보는 나지만 역시 이런 문제는 재미없다. 타지마 님께 가서 솔직히 말씀드려야지. 나는 도저히 그럴 만한 그릇이 못된다고.

 "모처럼 셋이서 만났으니까 어딘가 놀러가자."

 "놀러가자니, 이렇게 갑자기? 어디로 갈 건데?"

 "저어 멀리 속세와 떨어진 곳."

 "도 참,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니까."

 "어디든 뭐가 중요하냐. 여기만 아니면 되는 거야. 그렇지?"

 "역시 마다라 너는 가끔 짜증날 정도로 나랑 마음이 잘 통해."

 "말 좀 예쁘게 해라. 어디 가서 얼굴만 믿고 설친다는 말 듣지 말고."

 "내가 미인이긴 하지. 공부도 잘하고, 힘도 완전 세고, 남자복도 터졌고!"

 ", 창피하니까 목소리 낮춰. 형도 말투가 불량하잖아. 아휴, 정말…"

 애당초 우치하에 인물이 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잖아. 여자 같지도 않은 내가 왜 여우짓을 해야 돼. 어차피 먹힐 리도 없어. 몰라, 몰라. 수장님께서 약혼을 취소하셔도, 딴 놈에게 시집가라 하신대도, 난 이제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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