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육 시간이 되어 운동장으로 나왔다. 맑은 하늘 아래의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옛날 같은 장소를 뛰어다니던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마을에 전쟁의 위기감이 흐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아이였던 우리들에겐 평화로운 시절이었다. 웃거나 울거나 가끔 수업이 듣기 싫어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지금 생각하면 그저 그리운 감정 뿐. 이 풍경은 그대로이지만, 그 동안 내 나이와 함께 많은 것들이 변했다. 이제 나는 벤치에 앉아 있어도 눈앞의 남자아이보다 신장이 높다. 아이는 나를 올려다 보며 내게서 늘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다. 그야 말로 가슴속이 꿈으로 가득차 있을 시기. 나도 그 나이 때부터 여러가지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곤 했었지만, 이제와서는 잘 기억나질 않는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바랐던 미래가 이런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땐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것, 그 만큼, 그땐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내게서 없어선 안 될 소중한 것들이었다.

 (…)

 "선생님."

 "응?"

 "어째서 어른들은 옛날을 그리워하기만 하는 거냐 이거?"

 갑작스런 코노하마루의 질문에 침묵속에서 잠시 생각을 고른다. 그 사이 녀석이 다시 입을 연다.

 "현재도, 미래에도, 좋은 일은 많이 생길 텐데. 어째서? 지나간 일들은 언제나 그대로일 뿐이고, 하나도 재미없지 않냐 이거."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재미인가… 하기야, 진짜 그리움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기엔 아직은 너무 어리다.

 "선생님도 그렇게 늙은 편은 아니라서 다른 어른들의 마음까지는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이건 선생님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어른들이 옛날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었기 때문일 거야."

 "가장 아름다운 시절…? 선생님은 지금도 예쁘다 이거."

 "엣, 아하하, 고마워. 근데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그런 아름다움을 뜻하는 게 아니야. 말로선 다 설명할 수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떼묻지 않은 순수함이랄까. 그땐 아주 사소한 일에도 웃을 수 있었고, 두려운 것도 많지 않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어."

 "지금은 다르냐 이거?"

 "아무래도 그렇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좋은 일도 많았지만 싫은 일도 엄청 많이 겪었으니까."

 "……."

 녀석이 시선을 모로 향한 채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다. 내 말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9년이란 시간이 있었으니 제 나름대로 그것을 해석할 것이다.

 "첫사랑은 죽을 때까지 잊어버릴 수 없는 것이라고 들었다 이거. 그것도 같은 이유냐 이거?"

 "응, 맞아."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나, 언젠가 사랑하게 될 사람은 첫사랑보다 소중할 수 없는 거냐 이거?"

 "음……."

 여기서는 인생 선배로서 확실하게 답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곧바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학교 시험과 달리 옳고 그름이 정해져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는 나로서도 조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꼭 그렇지만은 않으려나."

 "?"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은 다른 사랑도 마찬가지야. 항상 아름다운 것만 추억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선생님이 조금 전에 말했지? 그 동안 살아오면서 좋은 일 만큼 싫은 일도 많이 겪었다고. 그렇게 잊고 싶은 기억들이 하나 하나 씩 늘어가다보면, 그 이전의 시간이 더 애절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해. 변하지 않기 때문이야말로 과거에 더 기대고 의지하는 거야. 하지만 코노하마루의 말도 맞아. 현재도, 미래에도, 좋은 일들은 많이 생기겠지. 그래서 모두 현재를 더 낫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거고. 선생님은 아직도 첫사랑인 남자를 좋아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제는 그만 그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이 자신을 위한 일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

 나는 이 아이에게 충분한 대답을 준 것일까. 적어도 현재의 나에게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주륵-.

 ?!

 갑자기 아이의 작은 뺨 위로 흘러내린 눈물.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놀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두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녀석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선생님은… 힘든 일을 잔뜩 겪었구나… 그래서 계속 과거를 그리워하고… 아직도 첫사랑인 남자를 좋아하는 거구나……."

 "에… 그건…"

 "그런 줄도 모르고 난… 언제나 놀아달라고 조르기만 하고… 선생님한테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어……."

 "코노하마루, 잠ㄲ…"

 "미안… 나 반성할게… 흑……."

 고개를 숙인 채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녀석이 아이들의 무리로 돌아간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나 내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반성해야 할 쪽은 오히려 내쪽이다. 조금 전의 눈물로 코노하마루가 정말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는 것을 또 한 번 느꼈다. 어린아이답지 않은 듬직함에 쓴웃음이 지어지기도 하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녀석의 뒷모습이 귀여워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내 마음을 강하게 휘어잡고 있는 것은… 감사함이다.

 나는 정말 훌륭한 제자를 두었구나.

 내 삶에 이 이상의 행운이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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