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빛 조명 아래 달달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인간의 욕망과 로망은 한끝차이인 것 같다. 말하자면 '하룻밤의 꿈을 사는' 목적으로 찾는 곳이 바로 이 화류가니 말이다.

  "정말 물로 괜찮겠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피식 하고 들려오는 작은 코웃음 소리마저 유혹적이라고 해야 할까, 신기한 마음에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게 된다.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옛날에는 남자를 상대하는 예쁘장한 소년을 뜻하는 말이었다가, 현재는 반대로 여자들의 판타지를 나타내는, 화류가에서 얼마 안 되는 존재, 이로코(色子).

  남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얼굴, 유혹하는 눈빛, 우아한 동작, 정말 여자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몸에서는 뭔지 알 수 없는 굉장히 달달한 향기가, 만지면 부드러울 것 같은 머리카락에서는 은은한 말리화의 향기가 난다. 그야말로 '꿈'을 위한 존재인 듯하다.

  "누나가 너무 긴장하는 것 같아서 술의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던 건데요."

  "아, 저,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닌자로 살아가다 보면 밤의 세계와 관련된 임무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것의 주 무대가 되는 곳이 바로 화류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유녀들만 봤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임무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호기심에 약간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신기하지 않은가. 남자 기생이라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임무 중에 음주란 절대 있을 수 없다. 손님인 척하고 은신해 있다가 기회를 봐서 계획대로 움직여야 한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대장인 카카시에게 면목이 없다. 나중에 어디에 한눈팔고 있었냐고 추궁이라도 해오면 그땐 더욱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저도 어렸을 때 닌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상급 닌자라니 대단하네요."

  "글쎄요, 같은 상급 닌자라도 다 급이 달라서… 저는 말단 중에 말단이예요. 하하하."

  "일일이 존댓말 쓰지 않으셔도 돼요. 이로코에게 너무 예의바르신 거 아닌가요?"

  "그, 그치만… 손님이라 해서 제가 뭐 특별한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임무를 수행하러 온 것 뿐이고요. 가장 중요한 마지막 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노라면 등골에 식은땀이 흐른다. 임무와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목적을 들켜선 곤란하고, 계획대로 협력받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여야만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럽게 있어야─.

  "이번에 붙잡아야 하는 사람은 도망치는 데 선수인가 보죠?"

  벌써 들킨 거냐. 하여간 나란 여자는, 아무리 뭐래도 상급 닌자인데 어째서 이렇게 속으로 감추질 못하는 거야. 젠장. ─아니, 생각해 보면 이 남자는 화류가에 살면서 온갖 일을 다 겪어 왔을 테니, 대충 분위기만 보고도 눈치챌 법하다. 이렇게 되면 이제부터 눈앞의 남자까지 같이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행여 정보가 새어나가기라도 하면 끝장이니 말이다.

  "그 분께서는 오늘 평소보다 늦게 방문하실 거예요.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긴장 풀어요."

  "에… 그, 그걸 어떻게……."

  '언제나 보고 있으니까요.'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 나지막이 속삭이며 이로코가 내 등 뒤로 다가온다. 잔뜩 경직되어 있는 어깨를 자근자근 주물러 주니 좋은 냄새와 함께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다. 아니, 아니, 무얼 두 눈을 지그시 감는 거야. 정신 차려, . 넌 임자가 있는 몸이야. 이러면 안 된다고.

  "단단하게 뭉쳐 있네요. 남자친구가 안마 같은 건 잘 안 해주나 봐요."

  "네, 네……."

  그래서 정직하게 말하면 지금 무지 행복합니다. 예쁘장한 남자가─ 아, 물론 우리 카카시에 비할 것은 못되지만─ 부드러운 손길로 주물러 주고, 상냥하게 말도 걸어 주고, 좋은 냄새도 나고, 그리고─… 아아, 몸도 마음도 굉장히 편안하다. 이런 기분이구나 화류가라는 건.

  "누나는 오늘 처음 맞는 손님이지만 왠지 보이는 것 같아요. 어른의 노련미,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도."

  "하… 하하하……."

  네 그렇습니다. 몸은 벌써 이렇게 되었지만 속은 영락없는 철부지 어린애입니다. 초면에 이렇게 저를 알아봐 주시다니… 당신은 정말 굉장합니다. 만약 내게 남자친구가 없었다면 새로운 경험이라 치고 당신과 밤을 보낼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물론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즐겁게 얘기만 나누겠지만요.

  "나요, 누나라면 돈과 상관없이 할 수 있어요."

  "……."

  "알아요, 내가 이로코라서 언제나 이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물론 평소에도 가끔 말하긴 해요. 그래야 몸값이 더 오르거든요. 남자를 상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죠. 무슨 뜻인지 이해가 돼요?"

  어깨에 머무르고 있던 손이 천천히 팔을 훑어내린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마찰하는 순간, 만약 내가 긴장을 놓고 있었다면 무언가 찌릿 하고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인지 뭔지 그새 다시 경직되어서,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동요가 되지 않는다. 아직까지는.

  "돈과 상관없이 당신과 잘 수 있다. -라고 말했을 때 남자는 기뻐하지만 그러면 내 몸값이 줄어들어요. 그런데 여자의 경우에는 다르죠. 오히려 돈을 배로 주려고 해요. 알다시피, 여기 오는 여자들은 보통… 뭐라고 해야 하나, 권위와 프라이드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거든요. 다시 말해 이런 거예요. '네까짓 게 감히'…"

  잘 모르겠지만 굉장하구나. 하기야, 여자라고 해서 움츠러들고 내숭만 떠는 시대는 옛날에 끝났지. 여자가 남자를 사기도 하는데 새삼스레 놀랄 게 뭐 있어. 그치만 역시 조금 당황스럽고, 왠지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심이예요. 누나 같은 사람이 이상형이거든요."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나름 욕망을 가진 남자라는 것인가. 이성에게 호감을 사는 것은 기쁘지만 여기서 웃어도 될지 모르겠다. 어쩐지 분위기가 점점 이상야릇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정말, 긴장 풀라니까요."

  털썩─. 무심코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깨닫고 보면 나를 쓰러뜨리고 내 위에 올라타 있다. 어안이 벙벙해져 있으니 남자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으며 내게 말한다.

  "이로코의 역습이랄까, 이런 것도 가끔은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하하하."

  웃는 얼굴도 참으로 아름다우십니다. 그런데 이런 장난은 좀 거시기합니다. 바로 근처에 남자친구가 있는데 행여 보기라도 했다간… 으아, 생각하기도 싫다. 그 질투 많고 독점욕 강한 인간이 그냥 넘어갈 리 없잖은가. 임무고 뭐고 다 엎어버릴지도.

  "누나… 키스 정도는 하게 해줘요."

  어어, 어어엇, 어어어엇, 자, 자, 자, 잠까아아안. 나도 딱히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든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미소년이라면 오히려 기쁘지만, 그래도 나름 지조가 있는 몸인데, 이대로 괜찮은 거냐. 정말 괜찮은 거냐고.

  장밋빛 카오스에 빠져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다 두 눈을 질끈 감으니 갑자기 모든 게 일시정지 되어 버린 것처럼 조용해졌다. 닿는 줄 알았는데 닿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떠 본다.

  "이거야 원. 정말 위험했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손. 아니나 다를까 카카시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온다. 상당히 심기가 불편해 보일 뿐만 아니라 이쪽을 향해 매서운 눈빛을 쏘아대고 있다. 보아하니 나를 덮치려고 한 이로코 보다 나에게 더 화가 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가 남자라고 해도 닌자로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데, 조금 전의 나는 당황해서 가만히 있었질 않은가. 마치 속으로 기뻐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라, 또 다른 손님인 걸까요?"

  "아니, 나는 남자에게 전혀 흥미 없어."

  이로코의 이마에 손을 얹어 그를 저지하고 있던 카카시가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내 팔을 강하게 잡아끈다. 거의 반 억지로 일으켜져서 '아구구' 하며 아픔을 호소하면서도 차마 불평을 내뱉을 수는 없다.

  "내가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여자 뿐이야. 내 거니까."

  그렇게 말하곤 뒤에서부터 두 팔로 나를 끌어안는다. 상대방에게 보란 듯이 '내 것'임을 어필하고 있다. 마치 곰인형을 안고 있는 자세 같다. 후폭풍이 두렵긴 하지만 어쨌든 질투해 주는 것은 기쁘다. 그가 나를 아끼고 있다는 증거니까.

  "대, 대장… 그보다… 타겟은요…?"

  지금은 임무 중이니까, '카카시 선생님'이 아니라 '대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우리가 애인 사이임을 증명하고 있는 이 순간에 그렇게 불린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문득 카카시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가 하면 달콤살벌한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서 들려온다.

  "자기가 한눈 파는 사이 다 끝났어요."

  뜨헉. 난 이제 죽었구나. 속으로 좌절할 틈도 없이 무언가 짜릿한 감각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뜨거운 숨결과 매끄러운 혀가 내 귀를 자극했다. 심지어 깨물기까지. 아까 보았던 반장갑의 손은 조끼를 비집고 들어와 가슴을 움켜쥔다.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당황해서 저지해 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음에도 부끄러움 따윈 없다. 오히려 냉정하고 뻔뻔하다.

  "리히토, 다른 팀원들한테 가서 수습하는 것 좀 도와줘."

  "네, 매번 하는 일이니까 걱정 마세요. 하타케 상닌. 후훗."

  여전히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리히토라 불린 이로코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무래도 그는 전부터 화류가에서 카카시의 임무를 도왔던 것 같다. 서로 잘 아는 사이라면 딱히 문제없겠지. 하지만, 잠깐, 나만 두고 가면 어떡해.

  "이번에도 너의 정보 덕분에 임무가 일찍 끝났어. 타겟은 바로 의뢰인에게 넘기고 남은 시간 동안 모두 편하게 쉬라고 해."

  "네, 네. 하타케 상닌도 여자친구 분과 푹- 쉬세요."

  너어어어, 아까 나한테는 타겟이 평소보다 늦게 올 거라고 했잖아. 설마하니 나를 이런 상황에 빠지게 하려고 일부러 그랬던 거냐. 방금 그 의미심장한 말은 뭐야. 이런 곳에서… 둘이서… 대, 대체, 뭘 하라고. 애인이니까 안기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지금은 그런 배려 필요없거든! 이 사람 지금 화났잖아! 질투하면 완전히 막나간단 말야! 여기저기 물어뜯기고 너덜너덜해져 버린다고오오!

  "봐, . 이제 '우리' 방이 됐어-."

  그렇게 살벌한 대사를 평소처럼 웃으며 달달한 목소리로 속삭이지 마. 이미 충분히 무서우니까 굳이 둘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과 도망칠 구멍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분명하게 인식시키지 말라고. 누가 암부에 있던 사람 아니랄까봐 매번 아주 교묘하게 심리적으로 압박을 해온다. 이러니 무서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금부터는 나만 볼 거지?"

  절대적으로 당신만 보겠습니다. 애당초 이 방에서는 당신밖에 안 보여요.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하라는대로 다 할 테니까 너무 거칠게 다루지 말아요. 애인의 관계란 이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어째서 팔을 묶는 거죠. 잠깐만요. 적어도 움직임의 자유를 주세요. 아플 때는 하다못해 발버둥이라도 쳐야… 무서워요. 무섭다니까요.

  "사랑해."

  ─그리고 여러 가지 의미로 뜨거운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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