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씩 외지에서 야영하게 될 때를 제외하고, 그러니까 자신의 방에서 평범하게 잠들 때 나는 언제나 인형을 끌어안고 잔다.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보일지 몰라도 내게는 일상적인 일이기 때문에 누가 내 옆에 있든 말든 그러한 습관은 변함이 없다.

 지금 끌어안고 있는 인형은 내가 옛날에 오비토의 모습을 본따서 직접 만든 것인데 그 동안 소중하게 다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낡은 흔적이 보인다.

 딱히 잘 때 뿐만이 아니라 내가 쓸쓸할 때, 슬플 때, 무서울 때, 고민이 있을 때, 이 인형을 늘 품에 안고 있었기 때문에 낡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보다 한참 전에 만들었던 내 첫 작품은 상자 안에 고이 보관해두고 있다. 낡기도 했지만 워낙 서툴게 만든지라 수선을 한다고 해도 망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나의 오비토 인형에는 내 삶에서 나름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만큼 내게는 중요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쉽게 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선생."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형을 끌어안은 채 잠을 청하고 있노라면 밤의 정적 속에서 남자의 작은 목소리가 내 귀를 살며시 간질이고 단단한 팔이 허리를 감싸온다. 고개를 돌려보면 팔뚝에 새겨진 암부의 문양이, 푸른색의 차가운 달빛을 받고 있어 살벌하게 느껴진다.

 "선생-."

 무슨 얘기가 나올지 대충 예상되기도 하고 졸리기도 해서 그냥 자는 척을 하려는데 문득 이상 야릇한 손길이 밑에서부터 천천히 내 몸을 타고 올라온다. 깜짝 놀라 손을 저지하면서도 대답을 하지 않으니 이번에는 바로 귓전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그렇잖아도 예민해져 있던 곳에 뜨거운 숨결이 떨어지며 발끝에서부터 묘하게 소름이 돋는다. 아까 했던 것을 한 번 더 하고 싶다는 건지, 쓸쓸하니 자기를 돌아봐달라는 건지, 이래서는 의미를 모르겠다.

 허리에 머물던 손이 문득 팔을 붙잡는다. 역시 파렴치한 짓인가 싶었더니 조금 전 내 이름을 불렀던 남자가 뜻밖에 나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자길 돌아봐주길 바랐던 것 같다.

 "하타케 상닌, 너무 달라붙는 것 아닙니까."

 "그치만 침대가 좁은걸-."

 "끌어안고 잔다면 저는 사람보다 인형 쪽이 더 편합니다만."

 "어째서?"

 검은 듯하면서도 살짝 회색빛을 띠고 있는 눈동자가 어둠을 타고 다가와 내 의식을 찌른다. 저도 모르게 움찔 하며 시선을 피하고나니 아까 나를 잠재우던 밤의 정적이 문득 불편하게 느껴진다.

 "마, 말이 좋아서 안는 거지 솔직히 그냥 팔다리를 올리고 자는 거잖습니까. 무거워서 주무시기 힘들 겁니다."

 "딱히 상관없어. 선생이 무겁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고 아까도 충분히 느꼈는걸."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을 놀리시든지 성희롱을 하시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하십시오.╬"

 "오늘은 선생도 많이 피곤한 것 같으니 그만둘게. 자, 사양말고 올려."

 "……."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야. 몸의 방향을 돌려 눕자 하타케 상닌과 문득 눈이 마주친다. 그가 나를 보며 방긋 웃는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에 괜스레 속이 들끓는다.

 나의 오비토 인형이 조금 쓸쓸하겠지만 어차피 상대방은 팔다리에 짓눌려 괴로울 뿐이다. 털썩, 사양없이 하타케 상닌의 허리에 다리를 걸치고. 털썩, 그의 목에 팔을 걸치니 조금 전에는 움찔 하는 것으로 그쳤던 그가 이번에는 '컥' 하고 작게 신음을 내뱉는다.

 "무거우십니까?"

 "으응, 이것이 나를 향한 사랑의 무게라고 생각하면 조금도….;;"

 말로는 부정하고 있지만 차마 잠들 수 없는 괴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그가 내 팔을 은근슬쩍 아랫쪽으로 옮긴다. 적어도 숨은 쉴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같다.

 "하타케 상닌께서도 아시다시피 제가 잠꼬대를 좀 심하게 하는 편입니다. 어떨 때는 적과 싸운다든지 여러가지로 긴박한 꿈을 꾸기도 하지요. 행여 제가 자다가 당신에게 주먹을 날리거나 발을 휘두르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도리도리)"

 아무리 얄미워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 팔다리를 걸쳐놓은 채로는 나도 맘 편히 잠들 수 없지만 내쪽이 그를 괴롭히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서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왠지 좀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생각해보면 그냥 인형에 질투를 한 것 뿐이지 않은가.

 심술부리는 것은 그만두고 이쯤에서 하타케 상닌이 원하는대로 해주도록 할까. 아니, 이제는 내가 그를 끌어안고 싶다. 좋아한다는 걸 스스로 인정해버렸으니 예전처럼 부정하느라 지칠 일도 없고, 딱히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약간의 쓸쓸함과 안타까움이 가슴 한 구석에서 아프게 꿈틀거릴 뿐. 하지만 그것 마저 묘한 애틋함이 되어 다가와서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하타케 상닌의 허리에 걸치고 있던 다리를 슬그머니 내리고 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그를 끌어안는다. 이제서야 편안해진 듯 그가 길게 숨을 내뱉으며 내게 기대어온다. 새하얀 눈밭에 달빛이 내린 듯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노라면 그 부드러움에 내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는 듯하다. 다만 한 가지 신경쓰이는 것이 있다면─.

 "하타케 상닌."

 "응?"

 "죄송하지만, 이불을 어깨까지 좀 덮어주시겠어요?"

 "그래."

 뜬금없는 부탁에 언짢은 기분이 들 법도 하건만, 그가 태연하게 이불을 끌어다 자신의 어깨를 덮는다. 내가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는 그가 감기에 걸릴까봐 걱정되어서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자신을 위해서. 나로 하여금 지난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를 보이지 않도록 가려주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침대 위에서 툭하면 다른 남자 생각을 해서."

 "나야말로 미안해. 헤어진 남자와 똑같은 문신을 가지고 있어서."

 "딱히 당신이 원해서 새긴 게 아니고 지울 수도 없는 거잖아요. 앞으로 제가 신경쓰지 않도록 해볼게요."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네가 보고 싶지 않다면 계속 가리고 있을게. 다만 다른 남자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쳐."

 쓴웃음을 지으며 하타케 상닌의 머리를 다시 한 번 쓰다듬고는 은근슬쩍 샴푸의 향기를 맡는다. 닌자들에겐 '자기만의 냄새'를 갖지 않는 것이 어떤 의무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이렇게 가까이 있어야지만 겨우 코끝에 어른거리는 정도의 옅은 향기가 난다.

 이 남자의 샴푸에서 어떤 향기가 나는지 알고 있는 여자는 몇 명이나 될까. 적어도 이 마을에서는 나 하나 뿐이었으면 좋겠는데. 어느덧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워서 실소가 터져나올 것 같다.

 "하타케 상닌께서는 정말 저 외에 만나시는 여자가 없습니까?"

 "없어. 이미 나쁜 남자로 소문나버렸는걸."

 "본의 아니게 제가 당신의 평가를 떨어뜨렸네요."

 "그래봤자 일개 상급 닌자일 뿐인걸 뭐. 멋대로 생각하라지."

 이런 말투, 평소의 하타케 상닌과는 다르다. 어쩐지 낯설지 않은데. 그러고보니 지난 날 언젠가─.

 '보던지 말던지. 전 아무것도 캥기는 것 없고 떳떳해요. 지금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멋대로 생각하라고 해요.'

 혹시 내 말투를 따라한 건가. 푸훗-. 일부러인지 무의식인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귀엽다. 이따금씩 그를 귀엽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인데도, 어째선지 옛날의 무뚝뚝하고 냉정했던 하타케 군보다 이쪽이 더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진다. '좋아'가 '싫어'를 덮어버렸다는 느낌. 이것이 흔히들 말하는 애정의 힘이란 것인가. 우습기도 하지만 조금 두려워진다.

 "아직 이른 생각이긴 하지만 전 당신이 호카게가 될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어요."

 "나 같은 놈이 호카게는 무슨. 츠나데 님이 나보다 오래 사실걸. 근데 염두에 두고 있다니, 무슨 뜻이야?"

 "호카게의 여자면 제 나름대로 출세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당신한테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려고요."

 "……."

 "왜 그러세요?"

 "아니, 왠지 모르게 쌔한 기분이 들어서."

 그가 나를 꼬옥 끌어안고는 이어서 중얼거린다.

 "뭐지… 엄청 기분 나쁘네……."

 마지막 말은 농담이었는데 아무래도 재미없었나보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가 나를 바라보며 농담처럼 말한다.

 "선생이 계속 옆에 있어준다면, 나도 호카게의 자리를 노려볼까."

 그가 내 손을 붙잡는다. 그리고 살살 어루만진다.

 "부디 되어주세요. 그러면 결혼해서 행복해지고 싶다고 더 이상 칭얼거리지 않을게요."

 "정말?"

 "네."

 그에게서는 보기 드문 쓴웃음. 그렇기에 알 수 있다. 농담을 하고 있어도 이 웃는 얼굴 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그러나 좀 더 오래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다. 그리고 깨닫고보면 어느덧 그의 눈동자에 강한 의혹이 비치고 있다.

 "이상하네, 그냥 농담일 뿐인데 왜 이렇게……."

 "?"

 "뭔가… 뭔가……."

 꽈아악-. 갑자기 하타케 상닌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섭다. 어쩌 할 바를 모르고 가만히 있노라면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묻는다.

 "선생, 혹시 나한테 거짓말하고 있어?"

 "거, 거짓말이요?"

 "왠지 모르게 그런 기분이 들어서 말야."

 "할 리가 없잖아요."

 "그렇지?"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더니 그대로 다시 나를 끌어안는다. 그리고는 잠들었는지 어느 순간부터인가 미동이 없다. 그에게 살며시 머리를 기대어보니 평온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호카게의 여자라…….

 그거야말로 내게는 정말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다. 만약 하타케 상닌이 린과 이어졌다면 한폭의 그림이 되었겠지만, 옛날도 지금도 나는 그녀처럼 될 수 없다.

 왜냐면 나는, 이 남자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는, 이 이상 무엇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