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시 :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츠나데 : 얼마 전 외국으로부터 불의 나라로 도망쳐온 탈주닌자 집단을 색출해내는 데 협력을 부탁받아 새로이 수색반을 편성해 보냈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일어나는 바람에 상당히 고전을 겪고 있다. 방금 녀석들에게 우리쪽 의료닌자 하나가 인질로 붙잡혔다는 보고가 들어와서 급히 지원을 보내려던 참이다.

 카카시 : …….

 츠나데 : 너는 예정되어 있던 일정대로 움직인다. 너에게라면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만 이런 경우 생존률은 극히 적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임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해라.

 카카시 : 그렇군요. 일부러 이렇게 나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터벅터벅─.

 츠나데 : 너는 언제나 단 한 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는군.

 멈칫─.

 카카시 : 불평하면 무언가 달라집니까?

 츠나데 : 어쩌면. 이래 봬도 난 부하의 어리광에 약하거든.

 카카시 : 저는 동료들이 무사히 구출해낼 거라 믿습니다.

 츠나데 : 만에 하나라도 해내지 못한다면?

 카카시 : …….

 츠나데 : 그땐 어떡할 거지?

 카카시 : 저도 모르겠습니다.

 츠나데 : 모르겠다는 대답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만.

 카카시 : 동료들을 두고서 허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츠나데 : 중급 닌자 1명과 하급 닌자 2명을 더 붙여주지. 임무가 끝나는대로 지원을 가도 좋다.

 카카시 : …….

 츠나데 : 어이, 괜찮은 거냐?

 카카시 : 모르겠습니다…….

 츠나데 : ?

 카카시 : 저는… 동료들을 믿듯이… 저 자신을 믿어도… 되는 걸까요…? 저는 과거에… 이미… 소중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츠나데 : 네가 왜 암부에서 도망치듯 나왔는지 이제 이해가 되는군. 이렇게 겁이 많아져서야. 마을의 영예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가.

 카카시 : 그런 말은 듣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언제나 저를 더 힘들게 만들 뿐이라고요…….

 츠나데 : 그래, 그래. 이제 네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니까 어서 가봐라.

 카카시 : …예, 츠나데 님.

 (…)

 츠나데 : (''라고…? 하하하핫…! 이것 참 재밌구만…….)

 시즈네 : 츠나데 님! 이런 곳에 계셨습니까! 오후까지는 집무실에 꼭 붙어 계시겠다고 저랑 약속하셔놓고! 너무하십니다!

 츠나데 : 지라이야 놈의 연애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해… 큭큭…….

 시즈네 : 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츠나데 : 시즈네 넌 새드엔딩 파냐, 해피엔딩 파냐?

 시즈네 : 에, 엣? 저는 새드엔딩 파입니다. 그 편이 좀 더 애틋하고 여운이 길게 남지 않습니까. 그보다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가…….

 츠나데 : 나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좋아한다만, 어째선지 로맨스물이라면 주인공들이 역경을 딛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되는군.

 시즈네 : 츠나데 님께서도 아직 소녀시군요.

 츠나데 : 그건 아니지. 감히 누굴 놀리는 거냐.

 콩─!

 시즈네 : 아야야얏… 조금 전에는 분명 내가 화내고 있었는데 어째서 반대로 내가 혼나고 있는 거지…….

 톤톤 : 부우~. 부우우~.

 (…)

 비릿한 피맛에 정신이 들어 눈을 떠보니 어둠으로 뒤덮인 공간속에 흐릿한 조명 하나가 나를 비추고 있다. 의자에 앉혀진 채 속박된 몸. 나는 여전히 이곳에 있는 건가.

 처음부터 쉽게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시 한 번 두려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니 눈앞이 캄캄하다.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던져보았지만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적들은 모두 중급 닌자 이상이고, 지금까지 내게 해왔던 것 이상의 고통스런 고문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녀석들이다.

 탁 탁 탁 규칙적인 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려온다. 탁자를 두드리는 것 뿐이지만 이 소리가 지금 내게는 지옥으로부터의 북소리와도 같다. 이 리듬이 끝나고 나면 내가 정신을 잃기 전 겪었던 것과 같은 일이 또 다시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계의 작동이 멈추듯 갑자기 소리가 끊기고, 남자가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는다.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강한 압박감이 밀려와, 차라리 머리털을 쥐고 잡아당기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나뭇잎의 의료반 중급 닌자, 그리고 선생님, 이었던가?"

 "너희들도 참 바쁘네… 도망다니랴… 인질 조사하랴… 잠들 수 없는 게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아서 위로가 되는걸… 하하하……."

 며칠 전 접수대의 업무가 없던 날, 학교에 남아 잔업을 처리하던 중 갑자기 지원요청을 받고 수색반에 편성되어 임무를 떠나게 되었다. 수색반의 기본 업무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것은 보통 부상자들을 가리키지만, 가끔 다른 반과 합쳐서 범죄자들을 찾아내는 데 파견되기도 한다.

 파견 후 1일째에는 미리 계획해두었던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흘러갔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는 법. 갑작스런 적들의 증원은 우리들을 당혹시켰고, 추이를 지켜보던 중 갑자기 적이 나타나 나를 이곳으로 납치해왔다. 전투 중에 인질을 붙잡는 것은 적을 혼란시키기 위해 흔하게 쓰이는 수단이다.

 그런데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왜 하필 나였을까. 의료 닌자를 먼저 노리는 것이 정석이긴 하지만 인질로 삼는다면 좀 더 그럴싸한 인물을 생각했어야 한다. 나 같은 걸 붙잡아놔봤자 말 그대로 '인질'의 의미밖에는 없다. 고작 인질 하나를 납치하기 위해 적진에 침투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일이다.

 "처음 너에 대한 신상 정보를 받았을 땐 반신반의 했지. 넌 조금 한심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닌자였거든."

 그가 몸을 일으켜 의자 주위를 천천히 맴돈다. 이따금씩 그의 손끝이 살갗에 스칠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차가움과 날카로움에 소름이 쫙 끼친다.

 "그런데 계속 조사를 하다 알아냈어. 너에 대한 일부 정보가 나뭇잎에 무려 1급 기밀로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말야."

 "잘못 안 거겠지… 조사하는 데 다른 녀석을 보내는 게 좋겠어……."

 갈라진 목소리만으로도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이 상태로는 아마 나흘 정도가 한계겠지. 지금까지 나로부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어쩌면 나를 더 심하게 고문할지도 모르고 그냥 죽일지도 모른다. 그런 가능성까지 따지면 아무리 길게 잡아도 이틀이다.

 "죽는 마당에 괜한 오기 부릴 것 없잖아. 그냥 말해봐, 너는 3대 호카게 히루젠으로부터 극비 임무를 받았었지? 그렇지?"

 "네가 호카게였으면 나 같이 얼빵한 여자한테 그런 중요한 일을 맡겼겠냐… 가서 찬물로 세수하고 잠깨……."

 내 말이 정말 웃겼던 건지, 내게 겁을 주려는 것인지, 그가 너털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와 선다. 그리고 살며시 내 양쪽 어깨를 붙잡는다.

 "내가 재밌는 전설 하나 들려줄까?"

 "그래… 나 옛날 이야기 무지 좋아해……."

 의미를 모르겠지만 일단 듣고 보자. 고문당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윽고 남자가 근처에 있던 간이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우치하 일족 전설의 동술로 불리는 만화경 사륜안과 그것의 최초 개안자인 우치하 마다라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

 "만화경인지 만원경인지는 잘 모르겠고… 우치하 마다라는 알아… 종말의 계곡에 서 있는 장발의 꽃미남이잖아……."

 처음 봤을 때 생각했지. 이 사람은 내 궁극의 이상형이라고. 내가 한 6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어떻게 해보는 건데. -라고 덧붙이려는 찰나, 남자가 말을 잇는다.

 "우치하 마다라가 만화경 사륜안을 개안했을 당시엔 아직 우치하와 센쥬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시대가 변해도 일족을 위해 이 눈의 힘을 보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 설령 파국에 치닫을지라도 언제든 다시 부활시킬 수 있도록 말야."

 "……."

 "여기서부터가 재밌는 부분이니까 그렇게 지루한 얼굴 하지 말라고."

 나는 또 우치하 마다라가 실은 호모였다든가 하는 얘기라도 할 줄 알았지. 초대 호카게 님과의 가슴 아픈 첫사랑 얘기라든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실소를 터뜨리고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다.

 "그는 만화경 사륜안을 비롯한 자신이 가진 힘의 일부를 어느 특수한 장치에 봉인해서 가장 신뢰하던 사람에게 맡겼다. 센쥬 하시라마와의 결전이 있기 직전이니 일부라고 해도 아마 엄청난 힘이었겠지."

 "마다라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이었잖아… 그런 사람이 신뢰했다면… 거참… 누군지 궁금하네……."

 "자세한 건 알려져 있지 않고 단지 여자였다는 것만 알 수 있어. 그녀는 동생 이즈나의 약혼자였거든."

 "그럼… 제수가 될 사람이었던 거네…?"

 "아니, 끝까지 잘 들어봐. 이 얘기가 뒤로 가면 갈 수록 참 이상야릇해지거든."

 "뭐야… 또……."

 "그녀는 후에 우치하의 아이를 뱄어. 이즈나는 한참 전에 죽었으니, 과연 누구의 아이였을까?"

 "설마… 아니겠지……."

 "생각해봐, 일족에 계승시키기 위한 중요한 물건을 맡겼다면 상대방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았겠어? 예를 들어 자기 아이를 가진 여자였다든지."

 "하이구야… 아침 드라마 뺨치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남자의 시선을 피하자, 갑자기 팍! 하고 그의 손이 내 턱을 붙잡아 다시 자신을 향하도록 만든다. 두 말 할 것 없이 거친 손길이다.

 "히루젠이 그걸 너한테 맡긴 거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아무도 의심하지 못할 곳에 숨기라고 한 거잖아. 그렇지? 아픈 꼴을 당하기 전에 순순히 털어놔."

 "그래… 뭘 받긴 받았지… 근데 이젠 없어… 내가 그렇게 중요한 물건인지 모르고 막 굴리다가 잃어버렸거든……."

 "뭐가 어째?"

 "설마하니 그것 때문에 탈주한 거야…? 미안… 본의 아니게… 나 때문에 헛수고하게 됐네……."

 "난 아직 너에게 내가 가진 고문 기술의 절반도 채 보여주지 않았어, 아가씨. 허튼 수작 부릴 생각은 접어."

 "수작이 아니라… 정말 없어… 나뭇잎 마을을 다 뒤져봐라… 그런 게 나오나……."

 "마을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남자가 자신의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는가 하면 날카롭게 번쩍이는 수리검을 꺼내 내 목에 겨눈다. 그리고 언제라도 찌를 수 있을 듯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다. 그저 심기가 불편한 건지,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건지, 그가 고개를 옆으로 천천히 기울인다. 그 느릿한 움직임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물건이 아니구나…?"

 "……."

 내가 말실수를 해버린 것인가. 어떻게든 둘러대려고 했는데 도리어 녀석에게 결정적인 힌트를 주고 말았다. 일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지만 꽤나 확신에 찬 얼굴이다.

 "혹시… 네 몸 어딘가에 있는 거냐…? 응…?"

 살갗을 파고드는 수리검. 뜨거운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린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한다. 이제 숨기는 것은 무리인가. 그렇다고 해도 이 남자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좋아… 솔직하게 말할게… 그러니까… 동료들에게 돌려보내줘……."

 "말해봐라."

 "내가 갓난 아기 때… 히루젠 님께서 내 몸에… 어떠한 강력한 힘을 이식해주셨어… 그런데 어느 날…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가 겨우 살아난 뒤… 그 힘의 표식이 사라졌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나도 몰라…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보지 못했어……."

 "그 말을 날 더러 믿으라고?"

 "믿든 안 믿든 내가 아는 건 그게 다야… 더 이상 말해줄 게 없다고……."

 이 남자는 사람의 눈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판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무조건 진실만을 말하지 않으면. 다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어야 한다. 어쩌면 내 몸안에 아직 그 힘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아무래도 너를 죽이는 것은 좀 더 미뤄두어야겠군."

 "……."

 수리검이 천천히 내게서 멀어진다. 어휴, 십년감수했네. 처음 봉인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도 이게 뭐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 때문에 죽을쏘냐.

 나는 그 힘에 대해서 히루젠 님께 그저 '잘 지켜야 한다'라고만 들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고, 우치하 마다라와 관계가 있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다.

 그래서 남자의 얘기는 제법 놀랍고 흥미로웠지만 그것이 전부다. 지금 내가 관심 있는 것은 그저 여기서 살아나갈 궁리를 하는 것 뿐.

 표식이 사라진 뒤 히루젠 님께 혼날까봐 말씀도 못 드렸는데, 내 몸에 아직 남아 있는지 어떤지 따위를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으로서는 있길 빌어야 하나. 그러면 적어도 남자가 내 몸을 죄다 들춰내기 전까지는 살 수 있을 테니.

 아니, 동료들을 믿자. 어쩌면 그 사람이─. 가능성은 낮지만 구하러 와줄지도 모르니까──.

 (…)

 카카시 : 상황이 어떤가?

 닌자 : 현재 위치 파악은 되었습니다. 하지만 길목 마다 트랩이 설치되어 있고, 적의 역량도 만만치 않은지라 침투가 쉽지 않을 겁니다.

 카카시 : 트랩 쪽은 걱정 마라. 내가 앞장서지.

 닌자 : 대, 대장께서 말입니까? 너무 위험합니다.

 카카시 : 언제 위험하지 않은 적도 있었나.

 닌자 : 평범한 트랩이 아닙니다. 한 번이라도 발을 잘못 디뎠다간 그것으로 끝입니다.

 카카시 : 난 죽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 그리고 우리는 딱히 트랩을 피해가지 않을 거다.

 닌자 : 피해가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카카시 : 팀원들에게 확실하게 일러둬. 절대 내 앞으로 나서지 말라고.

 닌자 : 예, 예. 알겠습니다.

 (…)

 누군가 다급히 달려오는 소리. 덕분에 남자의 잔인한 고문으로부터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조금 전에는 정말 죽는 거 아닐까 생각했는데.

 "리더, 아무래도 이곳을 떠야겠습니다."

 "아까부터 바깥이 소란스럽군. 무슨 일이냐?"

 "동맹국의 녀석들이, 빌어먹을 나뭇잎 녀석들이 아지트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뭐?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거냐?"

 "그게…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트랩을 설치해놨잖아. 제대로 작동한 것이냐? 설마하니 불발이 섞여 있었다든가…"

 "아니요…! 우리의 트랩은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것들이 전부 사라졌습니다…!"

 "사라지다니,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야!"

 "적들 가운데… 강력한 시공간 인술을 사용하는 녀석이 있습니다… 마치 소용돌이처럼 전부 빨아들여서 어딘가로… 정말 무시무시한 술법이었습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일단 알았으니까 가봐, 인질은 내가 직접 데리고 나간다."

 "예, 알겠습니다…!"

 (…)

 동료들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안심했던 걸까. 아니면 고문의 통증을 견디지 못해 의식의 건녀편으로 도망치려 했던 걸까.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눈을 떠보니 높은 천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기가 어디지. 낯선 장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찰나, 누군가의 손길을 느낀다. 그리고 따뜻한 체온도. 시야가 뒤죽박죽 엉켜서 곧바로 깨닫지 못했다. 하얀 머리카락에 매력적인 오드 아이.

 "하타케 상닌… 사륜안이 왜 그래요…?"

 동공 주변으로 3개의 곡옥 모양 반점, 그것이 원래 사륜안의 형태이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풍차 수리검 같은 모양이 되어 있다. 기이한 듯하면서도 묘하게 예쁘다.

 "눈 뜨자 마자 묻는 게 그거야? 그것보다 좀 더 궁금해야 할 게 잔뜩 있잖아. 이곳이 어딜까라든지,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든지, 가장 중요한 내 몸상태라든지."

 "제가 궁금한 건 못참는다는 거 아시잖아요… 얼른 가르쳐주세요… 당신의 사륜안에 대체 무슨 일이… 어…?"

 사라졌다. 아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윽……."

 그가 괴로운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한손으로 왼쪽 눈을 가린다. 혹시 아픈 걸까.

 "괜찮으세요…?"

 "아아, 괜찮아…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것들을 빨아들인 건 처음이라……."

 아프면 그냥 아프다고 할 것이지. 그가 언제나와 같이 나른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의 웃는 얼굴에는 정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남자는요…?"

 "간신히 붙잡았어. 불의 나라 영토 안에서 체포됐으니 협정상 당분간은 우리 측에서 관리할 거야. 마을로 돌아가면 아마도 암부들에게 온갖 고문을 당하며 심문받게 되겠지."

 "나뭇잎의 암부들은 고문에 능숙한가요…?"

 "의지가 약한 녀석이라면 반나절,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나흘 정도 버티는 게 한계일걸. 녀석들이 했던 어설픈 고문과는 차원이 달라. 전문가들이니까."

 "후후후……."

 "왜 웃어?"

 "그 놈이 고문당하게 될 거라고 하니 고소해서요… 후후후… 후후후후……."

 "지금 선생의 상태도 정상은 아니야. 웃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솔직히 웃을 때 마다 상처가 벌어지는 듯해서 아파 죽을 것 같지만 그 아픔 때문에 도리어 속에서 참깨가 터진다. 나뭇잎의 닌자를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겠지.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서… 난……."

 웬만하면 이비키 씨를 만나서 나뭇잎 궁극의 고문 기술을 겪게 되었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그런─.

 뚝─.

 뜨거운 것이 손등 위로 떨어지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뛴다.

 "숨이 막혀서……."

 눈을 뜨는 순간 깨달았어야 했는데. 이 사람이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이 뭔지 잘 알면서, 또 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될까봐 두려움에 떨었을 그를 바로 안심시켜주지 못했다.

 내가 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그는 어떤 기분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그 대신 뜨거운 눈물이 답을 돌려주는 듯하다.

 "미안해요… 걱정하게 만들어서……."

 "미안한 건 알아…?"

 "……."

 (…)

 그 후 나는 고문을 통해 입은 상처가 나을 때까지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고, 오늘에야 비로소 퇴원을 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있으니, 그날 남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치하 마다라가 남긴 힘은 그 여자와 그녀의 자손만이 가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이 아주 틀어져버렸지. 뱃속의 아이는 죽고, 여자는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와 그의 아이를 거의 동시에 잃은 충격으로 병에 걸렸거든.'

 왠지 낯설지 않은 전개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머릿속에 떠올려냈다. 꿈속에서 또 다른 내가 겪었던 일들을.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우치하 일족의 녀석들은 그녀로부터 힘을 회수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봉인을 풀려면 열쇠가 필요한데, 그 열쇠가 뭔지 몰랐던 거야.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아직 모르겠어. 앞으로 알아내야겠지.'

 '하지만 힘은 후세까지 이어졌으니까… 여자가 결국엔 살았나보네…?'

 '아니, 그녀는 죽었어. 좀 더 정확하게는 살해당했다고 해야 맞겠지.'

 '누… 누가… 어째서…?'

 '일족의 녀석들이 그녀의 육체로부터 혼을 꺼내서 저승으로 갈 수 없도록 가두어놓는 금술을 사용했어. 물론 그녀가 아직 죽기 전에.'

 '그럴 수가…….'

 '그렇게 수십 년동안 그녀의 혼은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엄청난 힘과 함께 우치하의 사당에 보관되어 있었어. 언젠가 열쇠를 찾게 되면 부활시키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거겠지. 무고한 여자를 죽이면서까지 지켜낸 힘이잖아.'

 여러가지로 충격이었다. 우치하 마다라의 힘이 얼마나 강한 것이였는지는 마을 어르신들의 옛날 이야기부터 시작해 학교의 수업에서까지 하도 들어서 대충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동족을 희생시키다니.

 그야 전쟁이 끝난 직후라서 당시에는 불의 나라 전체가 불안정했고 센쥬와의 갈등이 여전하던 시대이기 때문에, 우치하 일족은 자기들의 세력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잔인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전쟁 중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여자 하나 더 죽는 것 쯤은 그리 큰 대수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 또한 전쟁의 피해자로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너에게도 꽤나 익숙한 얘기일 거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우치하 일족 내의 불온한 움직임을 감지한 3대 호카게 히루젠은 그들의 사당에 보관되어 있던 그것을 더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겼어. 그게 바로──.'

 문득 두통이 일어 손을 이마로 가져간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딱히 남자의 정보력을 완전히 신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나는, 나는 대체 뭐란 말인가.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