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참아줘, 무단으로 마을을 나가는 순간 탈주 닌자라는 낙인이 찍혀 버린다고."

 "그치만 저는 중급 닌자에다가 의료반이라서 임무로라도 마을 밖에 나가는 일이 극히 드물단 말예요. 세상은 이렇게나 넓은데 마을에 평생 갇혀 살아야 한다니 너무 답답해요."

 "여행이 목적이라면 허가증을 발급받아서 당당히 나가. 괜히 소리 없이 몰래 나갔다가 무서운 암부들한테 쫓기지 말고."

 "좀처럼 장기 휴가를 낼 수가 없어요. 요즘엔 휴일에도 병원으로부터 지원요청을 받아서 일하러 나가고 있다고요."

 "지금은 마을이 불안정한 상태니까 어쩔 수 없지. 조금만 참고 견뎌, 내가 있잖아. 응?"

 그가 두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방긋 웃는다. 이 나이에 귀여운 척을 하는 그도 그이지만… 그걸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는 나도 참…….

 "언제쯤 되면 마을이 다시 안정될까요? 설마 내가 아줌마 할머니가 되어서야 되는 건 아니겠죠? 그러면 잘생긴 외국인과 만나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산다는 내 꿈이……."

 아, 그냥 생각없이 말을 이어나갔을 뿐인데 어쩌다보니 그의 애교를 무시해 버렸다.

 "얼마 전에 잡지에서 읽었는데 바람의 나라 뿐만 아니라 흙의 나라 남자들도 꽤 괜찮더라구요. 모래 마을 남자가 무거운 분위기라면 바위 마을은 샤프한 느낌이랄까 이름과는 정반대로 말예요. 하하핫."

 아, 안 된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조금 전까지 답답함에 잔뜩 구겨져 있던 얼굴이 상상속의 꽃미남들 덕분에 반질반질하게 펴진다.

 "물의 나라 남자는 실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안개 마을의 이미지 상 뭔가 엄청 나쁜 남자일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팔토시는 의외로 귀여운 아이템이랄까, 내 남자라면 한 번쯤은 직접 벗겨보고 싶어요.(부끄)"

 "……."

 아, 이제 정말 그만두지 않으면. 아까부터 아무 말 없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역시 나뭇잎 마을의 남자가 최고죠. 막상 다 같이 세워놓고 보면 하타케 상닌만한 미남이 없을 거예요."

 "선생은 잘생기기만 하면 누구라도 OK인 거야?"

 "아무리 저라도 '누구라도 OK!' 라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솔직히 미인을 마다할 사람은 없지요."

 "(잘근잘근)"

 지금 입술을 잘근거리고 있는 건가? 오호라, 이거 의외로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는 걸.

 "제가 외국으로 시집가는 꼴을 보기 싫으시다면 그 전에 하타케 상닌이 저를…"

 "나 오늘 저녁부터 외국으로 장기 임무를 떠나게 되어 있으니까, 먼저 갈게."

 퐁-. 연기가 피어올랐다가 사라진 뒤, 그가 떠난 자리에 차가운 바람만이 남아 있다.

 그럼 그렇지… 괜한 기대는 하는 게 아닌데…….

 어휴, 내 팔자야. 저런 미남과 노닥거리고 있으면 뭐하나. 그래봤자 손에 잡히지 않는 바람 같은 것인데.

 바람은 언제든 떠나 버리면 그만. 따지고보면 그도 내 상상속 남자들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그러한 사실이 새삼 나를 허무하고 쓸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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