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제처럼 혼자 저녁을 먹겠구나. 그럴 바에야 밖에서 간단히 먹고 오는 편이 나으려나. 잠깐 망설이다 그냥 집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뜻밖에 카카시가 주방에서 자고 있다.

 어째서 방으로 가지 않고 싱크대에 기대서 자는 거지. 보아하니 물을 마시러 왔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잠든 것 같다. 뭐, 예전부터 이런 모습을 종종 보긴 했다.

 이번에는 츠나데 님께서 직접 지시하신 암부의 일이었다. 게다가 장기임무였으니 고단해질 만도 하다.

 코앞까지 다가왔는데도 깨지 않는다니.

 암부의 두꺼운 회색 조끼에 코를 묻자 땀, 피, 풀잎의 익숙한 냄새가 난다. 아마도 타국인에게 감출 수 없는 나뭇잎 닌자들 고유의 체취일 것이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은신할 때는 십중팔구 풀속으로 들어가니까.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덕분에 카카시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냄새를 찾은 것 같다.

 이렇듯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을 때는 그에 대한 자신의 애정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좋아하니까 때로는 얄미워 보이고 짓궂은 장난도 치고 싶은 것이다.

 크크크.

 얼마 전 카카시를 졸라 특별히 장만한 캠코더가 있다. 내 장난감일 뿐이었다면 졸라봤자 소용없었겠지만 그에게 사진 찍는 취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마음대로 돈을 쓰지 못하다보니 사소한 일에도 '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카카시 님, 남편 님… 집에서는 이미 호카게를 뛰어넘는 권력자다.

 4년이란 시간을 함께 지냈는데도, 문득 깨닫고 보니 마땅히 추억할 물건이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무언가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캠코더를 떠올렸다.

 또 한편으로는 내 남자의 외모를 순간의 미로 지게 놔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얼굴은 제대로 찍어 두었다가 후대까지 오래오래 남겨 두고 감상해야 한다.

 미남 하면 모래마을이라고 누가 말하던가. 나뭇잎의 후손들은 조상님을 찬양하라. 이 마스크가 벗겨지는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얼굴바위에서도 확인할 수 없는 6대 호카게 님의 맨얼굴이다!"

 아무리 깊이 잠들었어도 이런 장난에는 깨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카카시가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하더니 천천히 깨어난다. 원래 예쁘장한 얼굴이라 찌푸리면 남성미가 돋보여서 오히려 더 멋있다. 미세한 표정변화까지 그대로 녹화되는 중이다.

 "자, 여기 보세요. 호카게 님-."

 "뭘 찍는 거야… 하타케 카카시입니다."

 자는 걸 깨워서 짜증낼 것 같더니 카카시답게 금세 분위기를 탄다. 가볍게 미소를 지었을 뿐인데 갑자기 화면이 환해졌다. 이런 내가 너무 팔불출 같지만 비디오로 만들어서 내놓으면 꽤 인기 많을 것 같다.

 "카카시(허수아비), 독특한 이름이네요. 애인 있습니까? 좋아하는 색은?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작년부터 정식으로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애인의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을 좋아합니다. 같이 살고 있으니 이미 부부 같은 느낌이랄까요… 매일 러브러브한답니다."

 "어떤 식으로 러브러브합니까? 구체적으로!"

 "…전부 말해버려도 돼? 나는 상관없지만."

 지난번에 당신도 영상 속 나를 보면서 즐겼잖아. 그녀는 나와 똑같이 생긴 배우였지만 어쨌든 민망한 건 마찬가지거든. 참고 넘어가줬으니까 당신도 내게 성의를 보이라고.

 "러브러브중에는 역시 정상위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저는 뒤에서 안는 걸 좋아합니다. 그 편이 좀 더…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내꺼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거든요."

 생각에서부터 강한 소유욕이 드러난다. 정말 호카게가 되면 그런 마음이 나뉘어져서 소원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 정도의 각오는 하고 있다.

 지금이라면 아직 내가 독차지할 수 있으니까,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무슨 일 있었어? 왜 예전처럼 외로운 눈빛을 하는 거야."

 "외롭긴 누가요."

 카카시의 손이 내게 다가올 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속으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겨우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예전으로 돌아가버릴 수는 없다.

 담담하게, 초연하게, 이제는 웃어넘길 때도 되지 않았는가.

 "조끼가 답답해 보이시네요. 벗겨도 됩니까?"

 카메라 앵글을 밑으로 내리면 실제로 답답한 느낌은 아니지만 피 묻은 조끼가 화면에 비친다. 우울한 생각을 날려버리기 위해서라도 과감하게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조끼와 그 안쪽의 검은 옷을 한꺼번에 들춰버렸더니 카카시가 반사적으로 맨살을 가리려고 한다. 제대로 근육이 잡혀 있고, 딱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시… 닌자치고는 말랐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자, 여러분. 보시다시피 6대 호카게께서는 사실 아카데미 동기들 중에서 제일 마른 몸을 가지고 계셨답니다. 카카시 님, 솔직히 말해보세요. 가이나 아스마가 부러울 때 많죠? 만약 오비토 군이 살아 있었다면… 이건 의료닌자이자 여자로서의 감입니다만, 당신보다 10배는 더 훌륭했을 거예요."

 "보기 좋게 마수에 걸려들어서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 주제에, 잘도 떠들어대는군. 밸런타인 데이 때도 그렇고… 자꾸 이런 식으로 나를 도발하는 이유가 뭐야? 아니, 지금은 전부 녹화되고 있으니까 나중에 얘기하자."

 옷과 함께 자신의 약점이 들추어져서 민망했던지 그가 드물게 얼굴을 붉히며 투덜거린다. 비디오를 따라하듯이 옷 속으로 무심코 손이 들어갔다.

 이러고 있으니 몹시 변태처럼 느껴지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안에 남아 있는… 좋아하는 녀석, 특히 예쁜 녀석은 괜시리 더 괴롭히고 싶다는 어린아이의 흔한 심리일 거다. 아마도. 흠흠.

 "뭐, 이로써 닌자의 체형은 강함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주셨네요. 카카시 님 덕분에 앞으로는 마른 사람들도 희망을 잃지 않을 겁니다. 그 와중에 키가 크다는 점은 반칙이지만요."

 "나도 네 취향… '안기고 싶은' 몸이 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다고. 근데 노력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 한 번만 더 오비토랑 비교하면 가만 있지 않을 거야. 애당초 그 녀석은 혈통부터 사기잖아. 우치하의 DNA에는 뭔가 비밀이 있을 거야. 사륜안을 개안시키는 피가 몸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라고. 아니고서야 오비토 따위가 나보다 잘났을 리… 젠장, 그래도 친구인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하여간 미워, 당신. 내 몸에 손대지 마."

 딱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으면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거든. 어차피 씻으려면 옷을 벗어야 되잖아. 다행히 다친 곳은 없나보구나. 확인할 것은 했으니 이쯤에서 봐주기로 할까.

 팔의 보호구를 떼어 내자 검은색의 긴 장갑은 알아서 벗는다. 지금까지 암부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내가 해주었지만 캠코더를 들고 있어서 어렵다.

 결국 토라졌는지 카카시가 슬그머니 다가오는 내 손을 짝 때린다. 뒤에 달린 주머니를 떼어 주려고 했을 뿐 엉덩이를 만지려던 게 아니었는데… 어쨌든, 29의 아저씨 치고는 나름 귀여운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어디까지 찍으려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욕실로 향하는 그를 따라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쾅! 문을 닫아 버렸다. 키득키득 웃다가 캠코더에서 테이프를 꺼냈다. 다른 비디오들과 헷갈리지 않게 라벨 스티커를 붙여놔야 할 것 같다.

 제목은 '6대 호카게 님의 은밀한 사생활' 정도면 되려나. 정말 다른 사람이 손에 넣기라도 했다간 곤란하니까 잊어버리지 않게 잘 기억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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