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에는 커튼을 치고 있어서 잘 몰랐는데 꽤나 더러워져 있구나. 직접 클리너까지 만들어놓고 어째서 진작 닦지 않았던 거야?"
"요즘 제가 좀 바빴습니다. 의료반에도 여러가지로 일이 많다구요. 주말에는 병원에도 나가봐야 하고… 하여간 오신 김에 좀 도와주십시오." 마을의 중요한 인재인 상급 닌자를 겨우 창문 닦는 일로 부려먹자니 묘하게 떨떠름하기도 하지만, 이 시간 이후로 오늘은 더 이상 임무가 없다고 하니 딱히 상관없겠지. 오른손에는 걸레를 장착, 왼손에는 분무기를 장착한 뒤 각자의 위치에서 유리창을 닦기 시작한다. 나는 방 안에 있고, 하타케 상닌은 바깥의 지붕 위에 올라 있다. 칙- 칙- 클리너를 뿌리고 걸레로 슥 훑고나니 흐릿했던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말 더러워져 있긴 했구나. 그래도 여자 사는 집인데, 문득 민망한 기분이 든다. 하타케 상닌은 혼자 사는 남자치고도 집안일에 상당히 철두철미한 편이랄까, 평소부터 요리는 하물며 청소까지 완벽한 사람이라 그의 앞에서는 민망할 수밖에 없다. 쓱삭쓱삭─. "선생의 만능 클리너라는 거 굉장하네. 나중에 어떻게 만드는지 가르쳐줘." "필요하실 때 마다 제가 만들어드릴 테니 말씀만 하십시오." "아무에게나 비법을 알려줄 수는 없다는 거야?" "……." 오히려 반대다. 만약 이 남자가 아무나였다면 그때야말로 영혼 없는 목소리로 '이걸 넣고 저걸 넣고…' 하며 읊조렸을 것이다.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내게 있다면, 앞으로도 그 일은 내가 직접 하고 싶다. 단지 그 뿐이다. 쓱삭쓱삭─. 그러고보니 왠지 이런 상황이 낯설지 않다. 어렸을 때 같은 일이 있었던가. 아아, 기억났다. 그때. 쓱삭쓱삭-… 쓱삭쓱삭-… '하타케 군, 내 목소리 들려?' '응, 들리는데.' '여기 먼지가 있는데 이쪽에서는 안 닦여. 바깥 쪽에 묻었나봐.' '잠깐 기다려. 으음, 이제 됐다.' 그와 내가 아주 어렸던 시절. 그다지 친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도 있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나.' '이 정도면 깨끗하게 닦인 것 같아.' 뽀득-… 뽀득-… '어이, 기껏 닦아놓고 낙서하면 안 되지.' '방금 내가 뭐라고 썼게-? 그쪽에서는 반대로 보였지-?' '린이랑 놀러가고 싶어라고 적었잖아.' '헛…?' 뽀득-… 뽀득-… '오비토 군은 지금 뭐 하고 있을까.' '헛…?!' 뽀득-… 뽀득-… '하타케 군의 맨얼굴이 궁금해.' '헛…?!!' 어린 나는 신기한 마음에 수학 공식을 적어보았다. 아마도 '이건 좀 어렵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답은 89.' '괴, 굉장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알아볼 수 있어…? 전에 린하고 했을 때 나는 무지 오래 걸렸는데…….' '방향만 달라졌을 뿐 같은 글자잖아.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읽었을 뿐이야.' 당시에 나는 하타케 군이 단지 어른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는 똑똑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가 지니고 있던 천재성에 대해서는 미처 알지 못했다. 평범한 아이였던 내게는 글자나 모형을 뒤집으면 마치 다른 물체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했지만, 하타케 군에게는 그 당연한 것이 오히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쓱삭쓱삭─. "하타케 상닌, 잠깐 저 좀 봐주십시오." "응?" 뽀득-… 뽀득-… "뭐라고 적은 것 같습니까?" "……." 좋 아 한 다 고 말 해 주 …까지 적었을 때는 그냥 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더니만. 지 않 아 도 괜 찮 아 요 …까지 적고서 마침표를 찍으니, 도리어 그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운다. "모르시겠습니까?" "아, 미안. 눈에 뭐가 좀 들어가서." "그럼 됐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기껏 닦아놓고는 지문이 남으면 안 되니까. 조금 전 자신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깨끗하게 닦고서 마무리한다. 내 특제 클리너를 사용했는데도 어째 어린 시절의 그것보다는 깨끗하지 않은 것 같다. "저기, 선생. 여기 먼지가 보이는데 이쪽에서는 안 닦여. 안쪽에 묻은 것 같아." "그렇습니까? 으음, 어디보자……." "아, 아니구나. 됐어. 이건 그냥 긁힌 자국……." 드르륵─. "어엇…!" 칙─. 이럴 수가. 하타케 상닌이 갑자기 문이 여는 바람에 그의 얼굴에 클리너를 정면으로 분사해 버렸다. 클리너 안에 박하가 들어가 있어서 눈에 들어가면 무진장 시릴 텐데. "뭐야, 선생. 조심 좀 하지……." "부비적거리지 마세요…!" "응…?" 위험하다. 여기서 3초 정도가 지나면… 3…2…1……. "아아아아아악-! 내 눈-!" 그나마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어서 피해가 적었지만, 이 사람은 왼쪽의 사륜안을 항상 내놓고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아마도 평상시 사용하는 오른쪽 눈에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더 아플 수밖에 없다. "괘, 괜찮으세요…?" "마치 눈에 치약이 들어간 것 같아…!" "얼른 욕실에 가서 물로 씻으세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는지 그가 삐딱하게 쓴 서클렛을 올린다. 그리고 오른쪽 대신 왼쪽의 사륜안으로 앞을 분간하며 욕실로 향한다. 평상시에는 전투를 하는 도중에나 꺼낼까 말까 하는 사륜안이건만. 미안하기도 하고 좀 우습기도 하다. "아… 뭐지 이 느낌은… 아프지만 그와 동시에 뭐랄까… 지난 수십 년 동안 내 눈에 쌓였던 묵은 떼가 한 번에 씻겨나간 듯한 기분이 들어……." 푸훗,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도 차마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빨갛게 충혈된 눈과 실제로 붉은색인 사륜안에 원망을 내비치며 그가 나를 은근히 노려본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는 그의 왼쪽 눈에 집착 아닌 집착을 했었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잠자리에서나 그밖의 어디에서도 그것을 찾지 않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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