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라이야 님의 사망으로 나뭇잎 마을이 아카츠키에 대한 대대적인 수배를 강화한 이후, 어느날 불의 나라 영지의 한 원수로부터 의뢰가 들어왔다. 그가 아카츠키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 그렇게 되어 나는 츠나데 님의 지시에 따라 마키와 유마를 데리고 영지로 떠났다.
원수가 있는 관사로 이동할 때 우리는 마차를 이용했다. 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의 왕래가 적은 곳이라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임무지에 가까워지자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의 까망이와 하양이. 애교쟁이 마키는 말할 것도 없고 일일이 츳코미 걸면서 화내는 유마도 대장으로서는 그저 귀여워 보일 따름이다. 긴장해도 모자랄 판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전열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임무를 잊지 않았겠지. 현재 아카츠키가 원수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우리는 원수를 보호하고 불의 나라 법률에 따라 테러리스트를 체포할 것이다. 마을을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지라이야 님을 생각해서라도 실수하지 마라." "대장, 그건 아십니까? 제가 이 근처로 좀 다녀봐서 아는데, 여기 원수, 완전 탐관오리가 따로 없거든요." "그래?" "사실입니다. 그런 녀석들까지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게 저희 입장이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나는 잠시 마키와 유마에게 원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원수는 탐관오리의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일거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여자를 불러다 노닥거리기까지 한다는 목격담이 있었다. "그런 녀석인데도 영주 일가와 연줄이 닿아 있어서 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겁니다. 솔직히 테러리스트에게 노려져도 이상할 게 없죠." "지금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거냐, 마키." "뭐, 질서를 어지럽히는 무법자들이긴 하지만 덕분에 법의 힘으로 처리할 수 없는 각종 쓰레기들을 녀석들이 속 시원하게 치워 주니까요. 이번만큼은 차라리 잘됐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유마까지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다혈질이긴 해도 임무 수행중에는 언제나 이성적인 녀석인데. 도리어 테러리스트를 응원할 만큼 질이 나쁜 인간이라는 뜻이다. 딱히 생소한 경우는 아니다. 나도 닌자로 살면서 그동안 벼나별 꼴 다 봤다. 임무니까,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가끔은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도 있다. 닌자도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좋든 싫든 임무는 임무다. 해이해지지 않게 주의하도록." "들었지, 유마. 앞으로 우리와 조우하게 될 상대는 지금까지의 적들과는 달라. 이미 나라 몇 개를 말아먹은 아카츠키라고. 꽥 하고 죽지 않으려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다." "조금 전까지 대장의 어깨에 기대서 태평하게 잤던 주제에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너나 잘해." 심심하면 투닥거리더니 마키는 지루한 듯이 창밖을 보고, 유마는 퉁명스런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다. 이럴 때는 수업이 듣기 싫은 아카데미의 제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힘내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두 사람은 이제 어엿한 닌자이고, 내 부하이기도 하다. 3인 1조로 움직이는 건 오랜만이구나. 하급 닌자 시절 생각이 난다. 두 남자의 머리카락이 공교롭게도 블랙 앤 화이트라서, 사이에 앉아 있으니 예전에 카카시 팀의 센터였던 린이 된 것 같다. 곧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키는 여유로웠지만 유마는 조금 초조해 보였다. 긴장하고 있는 걸까. 살짝 흘러내린 서클렛이 신경 쓰여서 손을 뻗었다. 나뭇잎 모양이 똑바로 세워짐과 동시에 눈부신 햇빛이 금속에 반사되었다. 그리고 마차가 멈추었다. "도착했나 봅니다." "그래, 내리자." "잠시만요." 이번에는 유마가 내게 손을 뻗어 옷매무새를 만져 주었다. 조끼 한쪽의 깃이 안쪽으로 접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임자 있는 여자에게 작업 걸지 말라는 마키와 뭔 소리냐며 또 투닥거렸다. 마키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유마를 질투하는 거다. 이런 부분까지 닮았다니. 때아닌 추억을 상기시켜서 대장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 주는 기특한 녀석들이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원수를 만나러 갔다. 원수의 방으로 향하는 길에는 우리 외에도 그를 경호하기 위해 배치된 인원이 제법 많았다. 모두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의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달까. 상사가 죽든 말든 상관 없나 싶을 정도였다. 그것만으로 상황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자네들이 나뭇잎에서 보낸 닌자인가?" "이번에 원수님의 호위를 맡은 라고 합니다. 이쪽은 부하인 마키, 유마…" "지루한 자기소개는 생략하지. 나는 아주 바쁜 몸이야. 아…아카자키라고 했던가? 그런 무뢰배들을 상대할 시간이 없단 말일세. 나 참… 다시는 이곳에 얼씬 못하도록 확실하게 처리해 주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신이 동네 건달쯤으로 여기는 그 아카자키가 지금까지 해온 짓들을 여기서 전부 얘기하면 아마도 놀라서 뒤로 자빠질 거다. 예의상 대답은 했지만 하도 어이가 없어서 콧방귀가 나올 뻔했다. 지라이야 님의 일로 나뭇잎에서도 S급 수배가 떨어졌고 요즘은 호카게 님마저 녀석들 때문에 골치아파하고 계신다. 말처럼 간단한 일이었다면 진작에 처리되었겠지. 실제로 만난 원수는 예상 그대로였다. 얼핏 봐도 중요한 공문서들을 구석에 죄다 밀어넣고 자기 발을 책상 위에 떡 하니 올려 놓고 있었다. 바쁘긴커녕 아주 한가해 보였다. 거기까지는 그렇다쳐도, 닌자들을 깔보는 게 노골적으로 느껴져서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미워도 의뢰인이다. 어쩌랴, 저쪽이 갑이고 이쪽이 을인 것을. 나야말로 의욕이 뚝 떨어져서 부하들을 다그칠 입장이 아니었다. 해이해지지 않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마키, 유마, 밖으로 나가서 출입자들을 감시해라. 나는 여기에 남아서 의뢰인의 주변을 경계하겠다." "보아하니 저희 말고도 한가한 녀석들이 많은 것 같은데, 대장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최대한 주의 깊게 살피겠습니다만, 부디 몸 조심하십시오." "그래, 내 걱정은 마라." 솔직히 말하면 나도 걱정이 태산이다. 이쪽의 협력을 고려해서 두 명만 데리고 온 것이었는데 이 모양 이 꼴이니. 여기저기 빈틈투성이다. 이게 다 자기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원수 놈 때문이겠지. 어쨌든 해보는 수밖에 없다. (…) 관사 앞 마키 : 코딱지 만한 마을에다 건물 한 번 크게 지어 놨네. 게다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유마 : 관사 주변이 숨을 곳 천지야. 어디로부터 침입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아. 마키 : 무슨 관사를 경치 구경하려고 만들었나. 터벅터벅─. 유마 : 이봐, 문지기들. 아무리 뭐래도 너무 풀어진 거 아냐? 입구를 지키는 녀석들이 농땡이치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문지기1 : 나뭇잎에서 온 닌자들인가. 그렇다면 알만 하네. 우리도 예전 같았음 이러지 않았을 거야. 문지기2 : 우리 입장이 되어 보면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걸. 너무 야단치지 말아 달라고. 마키 : 원수가 죽으면 너희 밥줄도 끊기는 거 아니야? 그건 곤란할 텐데? 문지기1 : 될 대로 되라지. 믿을 만한 동료들은 이미 다 떠나고 남은 건 아첨꾼과 우리 같은 하수들 뿐이야. 문지기2 : 다음에 부임할 원수는 조금이라도 상식이 박혀 있는 인간이었음 좋겠네. 유마 : 적을 반기는 말투구만. 문지기1 : 아니, 누가 그렇대. 아카츠키라고 하니 무섭긴 하지. 문지기2 : 설마하니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어? 마키 : 너희 같은 문지기라면 해볼만 한데. 문지기1 : 아, 그럴지도. 하하하. 문지기2 : 경계하는 척만이라도 하고 있을까. 아아, 귀찮아. 집에 가서 술이나 한 잔 하고 싶다. 아카츠키 녀석들 빨리 안 오려나. 유마 : 예상은 했지만 가관이로군. 마키 : 대장에게 가서 작전을 다시 세워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우리 힘만으로… 유마 : 일단 지켜보자. 거기 형씨들, 조금이라도 수상한 녀석이 보이면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고 우리에게도 꼭 알려. 알겠지. 문지기1 : 예, 예-. 문지기2 : 얼굴은 곱상한데 입이 거칠구만-. 알았으니 걱정 말라구-. (…) 문지기1 : 따뜻하구만. 죽기 딱 좋은 날이라는 건가? 문지기2 :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데 너무하네. 하하하. 문지기1 : 지금 원수가 부임한 이후로 제대로 굴러가는 게 없잖아. 이 나이 될 때까지 내가 연애 한 번 못해본 것도 다 그 놈 때문이야. 문지기2 : 전임 때만 해도 살기 좋았다는데 우리는 운이 없었지. 고생은 다 하면서 보수가 따박따박 나오길 하나, 무슨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고. 이런 빈털터리, 어느 여자가 좋다고 하겠어. 네 말이 맞다 그래. 문지기1 : 내 이상형의 여자를 찾아서 멀리 떠나고 싶다. 문지기2 : 네 이상형은 어떤 여자인데? 문지기1 : 북쪽의 여자들… 흙의 나라 여자들처럼 얼굴이 오목조목 작고 예쁘면서, 번개의 나라 여자들처럼 금발에 파란 눈이었으면 좋겠어. 그쪽 국경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던데. 문지기2 : 예를 들면 저런 여자? 문지기1 : 어어, 그래! 딱 저런 여자… 잉? ??? : 듣자하니 가엾은 남자네. 내가 조금 놀아줄까? 문지기1 : 누, 누구지… 예쁘다……. 문지기2 : 정말 예쁘네… 아, 아니, 정신차려, 자식아! ??? : 원수 님께 볼일이 있어서 왔는데. 지나가게 해 줄 거지? 문지기1 : 원수님은 지금 누구와도 만날 수 없어. 문지기2 : 무슨 볼일인지 몰라도 오늘은 안 돼. 내일 다시 와. ??? : 나는 원수 님의 초대를 받아서 온 거야. 손님을 이렇게 문전박대해도 돼? 내가 늦으면 당신들이 혼날 텐데? 문지기1 : 망할, 음탕한 노인네가 이런 때까지… 어떡하지? 사실인지 물어볼까? 문지기2 : 일단 그래야겠… 으헉!!! 쾅─. ??? : 무얼 너희가 노닥거리고 있는 거냐? 둘 다 모가지 잘리고 싶어? 빨리 들여보내라고! 문지기1 : 아이고 내 등… 죄, 죄송합니다. 손님이 오실 거라는 얘기는 듣지 못해서 말입니다. 다음부턴 미리 얘기 좀 해주세… 으허억!!! ??? : 비켜!!! 아가씨, 서둘러. 요즘 아카자키인지 아카젝키인지 하는 놈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원수님께서 고단하시단 말이야. 문지기1 : 지나가시죠… 쿨럭. 문지기2 : 이 자식… 두고보자…(중얼) (…) 아무리 아카츠키라 해도 정면으로 당당히 돌파해 들어올 리는 없다. 원수의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에서 순찰하는 중이다. 따스한 햇살이 어깨 위로 떨어진다. 날씨 한 번 좋다. 창 밖을 내다보면 그저 평화로운 시골마을일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꺄아아아아─!!!" 맑은 하늘에 날벼락. 황급히 원수의 방으로 달려왔지만 이미 늦었다. 경호하고 있던 놈들은 어찌 된 건지 한 명도 보이지 않고 겁에 질린 여자 한 명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 "아가씨, 누가 이 방에 들어왔습니까?" "에……." "아가씨?" 너무 놀라서 말문이 막혀 버렸나. 나를 멍하니 쳐다보더니 그녀가 대답했다. "…네, 네애! 저, 분명히 봤어요! 검은 배경에 붉은 구름! 갑자기 쳐들어와서… 저는 정말… 정말 무서워서…" "일단 진정하시고…" "꺄아아아!" 나도 모르게 가녀린 여자에게 수리검을 들이밀었다가 다급히 등 뒤로 감추었다. "어디로 갔는지 보셨습니까?" "저기… 저쪽으로 도망쳤어요… 지금이라면 아직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니까… 어서 가보세요…!" 어떻게 된 거지. 원수의 방은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 있었는데. 아무리 뭐래도 너무 쉽게 들어갔잖아. 복도를 내달리며 생각하다 '잠깐' 하고 멈추어 섰다. 아까 만났던 금발의 아가씨… 어떻게 생각해도 수상하지 않은가! 속았다! "기다려!!!" 빛의 속도로 U턴해서 금발의 미녀와 마주쳤다. 아까처럼 당황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가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는다. 상당히 여유구나. 아카츠키의 일원이니까 당연하겠지. 막상 싸우려니 쬐끔 무섭지만 상대가 같은 여자라면 적어도 힘으로 밀리지는 않을 거다. "네가 아카츠키의 홍일점 코난이냐! 지난날에 저지른 만행을 잊지 않았겠지! 지라이야 님의 원수! 절대 도망 못 간다!" 그녀가 수리검을 꺼내든다. 기꺼이 싸우겠다는 뜻이다. "재밌구만… 와라." 나를 얕잡아 본 걸 후회하게 해주마. 일자형 복도에서는 정면으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원수를 지키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테러리스트를 체포하는 것 또한 임무. 수리검이 부딪히는 순간 아까 목이 베였던 원수의 피가 흩뿌려졌다. 끼기기긱─. 나도 힘을 많이 길렀다고 생각했는데,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이리 세…! 너 여자 맞아…?" "글쎄?" 나를 확 밀쳐내더니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질 뻔했다. 예전의 나였다면 자빠졌을 것이다. "거기 서!!! 네 녀석 정체가 뭐냐!!! 코인이냐!!! 페난이냐!!! 젠장 헷갈렸다!!! 코난이냐!!! 페인이냐!!!" "옛다, 힌트!" 도망치던 녀석이 뒤를 돌아보며 뭔가를 던졌다. 하얀 벌레 같이 생긴 것들이 날아오길래 일단 피하고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퍼어어어어엉─!!! 간신히 폭발의 여파를 피했다. 코난과 페인을 제외한 나머지 중에 폭둔을 가진 녀석은 한 명뿐. 처음부터 어쩐지 눈에 익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말하자면 녀석은 지라이야 님의 원수가 아니라 가아라의 원수다. 내게 있어서도 여러 가지로 골치아픈 녀석. 하지만, 이럴 때를 대비해서 기폭찰을 곳곳에 붙여 놨지! 퍼어엉─!!! 퍼엉─!!! 펑─!!! 이전의 폭발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래도 바로 앞에서, 옆에서, 연달아 터졌으니 체감하는 충격은 비슷할 터. 폭발로 인해 시야가 흐릿해지고 잠시후 연기 속에서 녀석이 빠르게 굴러 나왔다.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으로. "제법 예술적인 트랩인걸. 근데 말야, 나 정도 되면 화약 냄새만 맡아도 알아." 젠장!!! 그래 너 잘났다!!! 이쪽도 하필이면 네가 나타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고!!! "이건 어떠냐!"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와 공격해 오는 나를 아슬하게 막아낸 뒤 녀석이 뒷쪽으로 도약했다. 틈을 주지 않고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거리가 벌어질수록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기 때문에 이판사판이었다. "케헥, 케헥! 대장!" "대장! 어디십니까!" 마키와 유마다. 큰소리로 위치를 알리자 그들이 곧장 달려와서 나를 지원하려 했다. 하지만 연기 때문에 시야확보가 되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가능하다면 내 선에서 끝내야 했다. 나는 비장한 각오로 테러범에게 돌진했다. 정면으로 달려오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녀석이 또 한 번 씩 웃었다. 그러더니 무슨 생각인 건지 변신술을 풀고 손에 쥐고 있던 무기도 버렸다. 뜻밖의 행동에 당황해서 도리어 내가 위기에 처했다. 녀석에게 덥석 팔을 붙잡혀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놔!!! 젠장!!!" "젠장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 나야. 나뭇잎 나부랭이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풉, 어이가 없어서.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도저히 그 얼굴을 보면서 무기는 못 휘두르겠… 으음?" 조금 움직였다고 이렇게 얼굴이 뜨거워지다니. 분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다. 나이를 먹으면 원래 다 그런 거다. 언제나 흐릿한 윤곽만 봤다가 가까이서 제대로 보니까 생각보다 미남이라서 부끄러워하고 있는 게 절대 아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보지 말라고! 그, 그런 눈빛은… 적이 아니라 애인한테 향하는 거잖아! "내 예상이 맞다면… 넌 나를 잘 알고 있을 거야." 잘 안다고 해야 할지, 틈만 나면 꿈에 나와서 내 체감으로는 이미 9년째 연애중이었다. 말하자면 제2의 남친, 꿈남친. 적이라면 베어야 마땅하건만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무심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나한테 사랑을 느끼는 거구나? 하하하핫!"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속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비치는 여자라는 거. 마치 내 약점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녀석이 나를 놀렸다. "용용 죽겠지-." 젠자아아아앙, 힘이 딸린다! 뭐야, 어린 놈의 자식이, 이런 상황에 나한테 작업이라도 거는 거냐! 놔! 놔놔! 놔놔놔! 필사적으로 발버둥쳐서 벗어났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발이 미끄러졌다. 중심을 잃고 넘어져서 우습게도 녀석에게 와락 안긴 꼴이 되었다. "우리끼리 이럼 안 되잖아."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매가 얇아지며 묘하게 관능적으로 변했다. 설마하니, 키, 키스… 나도 모르게 빨간 입술로 시선이 향했다. 어디라도 좋으니 다른 곳을 봐야 한다고 자신을 다그쳤지만 듣지 않았다. "뭔가 다른 걸 원해…?" 비밀스러운 속삭임 뒤에 정말 하려는 것처럼 녀석의 입술이 살며시 벌어졌다. 그런데 혓바닥 위에 뭔가 있었다. 하얀 점토로 만든 그의 미니멀한 작품이. 젠장!!! 폭발한다!!! 퍼어어어어어엉─!!! "대, 대장!!!"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파란 하늘에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아카츠키는 2인 1조가 원칙이라더니 그 말대로 혼자가 아니었다. 애당초 협력자 없이 잠입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 금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멀어져가는 녀석과 조금 떨어진 곳에 붉은 구름의 코트를 걸친 또 한 명의 사내가 아득히 보였다. 어째선지 얼굴이 오렌지색이었다. 이쪽을 잠깐 돌아보는 듯하더니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 으으으, 약올라 죽겠네. 데이다라 놈, 오늘은 운이 좋았던 거다. 다음에 두고 보자. 이 치욕을 반드시 되갚아 주마. 꿈속에서라도! 어쨌든 폭발로부터 목숨은 건졌다. 분신이 마지막 승부수였는데 설마하니 저쪽도 가짜였을 줄이야. 하다못해 무승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의뢰인은 죽고 테러범은 놓쳤다.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다. "마을로 돌아가면 호카게 님께 된통 깨지게 생겼네. 덧붙여 하타케 상닌한테도…" "내빼는 것까지 기가 막히구만. 뭐야, 방금 그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였는데." 기폭점토라고, 바위마을의 폭파부대에서 사용한다. 때로는 건물을 부순다든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어디까지나 살상용 무기다. 데이다라의 점토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바가 없지만 아마도 폭발 반경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아카츠키라는 이름이 알려진 이후 멤버들에 대해 여러 가지 썰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는데 그중 하나가 이거다. 지하 어딘가에 데이다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언젠가 그것들이 한꺼번에 터져서 종말급 폭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전설. 마키와 유마에게도 들려 주고 싶지만 오늘은 그만두기로 하자. "이런 날도 있는 거다. 수습할 것이 남아 있으니 따라들 와라." 대장의 면이 서질 않는다. 민망해서 자리를 뜨려는데 마키와 유마가 어쩐지 익살스런 표정을 하고 있다. 그냥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아까 아주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대장…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테러범과 키스하셨습니까." 발끝에서부터 부정하며 목끝까지 비명이 차올랐지만 차마 내지를 수 없었다. "할 리가 없잖아!!! 너, 너, 너희, 집사람한테 이상한 소리 했담 봐!!! 가만 안 있는다!!! 어?!! 알겠냐?!! 입 조심해!!!" 분하지만 된통 깨지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을로 돌아가면 부하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거하게 한 턱 내야 할 것 같다. 절대 입막음이 아니다. 오늘은 나도 술이 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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