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가시간을 가지게 된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데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마을 복원작업과 더불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가운데 불만이 하나 있다면 모처럼 쉬게 되어도 좀처럼 카카시와 휴일이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임무를 마쳤으려나. 그래도 대수롭지 않은 일인지 저녁쯤이면 돌아올 수 있을 거라 했다. 오늘은 딱히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집 청소나 하면서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또 뭔가 할일이 없을까─. 괜스레 빙 둘러보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완벽한 청소였다. 과연 더이상 손댈 곳이 없을 만큼. 혼자 생활하던 시절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 멍하니 앉아 있다가 침대 옆 작은 협탁의 서랍을 열었다. 이럴 때 보물상자를 한 번씩 열어보는 것이 내 나름의 시간 떼우기 방법이다. 아끼는 물건들을 꺼내어 추억을 그리는 것으로 한두 시간쯤은 거뜬히 보낸다. 깨끗이 세탁해 상자 안에 보관해 두었던 우치하 일족의 손수건을 조심스레 꺼내든 것은 오랜만이었다. 오비토의 얼굴이나 이름이 새겨진 물건들은 내 남자의 정신건강을 위해 전부 정리했다. 아마도 당분간은 꺼내는 일이 없겠지. 다만 그 작은 손수건은, 집착의 색으로 물들어 버린 다른 어떤 것보다 내게 뜻깊은 물건이었다. "바보 카카시." 제발 부탁이니까, 혹시라도 다치면 집으로 오지 말고 곧장 병원으로 가란 말이야. 몇 번을 더 말해야 알아 줄까.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몇 번 치고 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아, 지금 생각해도 눈물날 것 같다. (…) 과거에 딱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물상자를 바닥에 내팽개쳤던 적이 있다. 자신의 분에 못 이겨 저지른 일이었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온 물건들을 쏘아봤지만 그런다고 잃어버린 손수건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그때의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 것만으로 천만다행이라고. 그 정도로 나는 운이 나빴다. 너덜너덜한 시체가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16살 하급닌자였던 시절, 내게 적합한 임무는 기껏해야 C랭크 정도였다. 처음에는 평소와 같은 호송 임무라고 생각했다. 여러 명이 움직일 필요 없는, 나 혼자서 의뢰인과 목적지까지 동행하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 하지만 마을을 떠났을 때, 내 의뢰인은 이미 살해당한 뒤였다. 의뢰인으로 변신한 암부가 피 묻은 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실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내 실수는 자신에게 부적과 같은 물건을 무심코 꺼내든 것이었다. 퍽!!! "고마워, 나한테 손수건 빌려줘서." "켁! 케헥! 으… 으으… 으으윽… 하아… 하아……." "넘어졌다고 거짓말한 거 미안. 아-, 피 튀었잖아." "하아… 하… 케헥! 케헥! 으… 으으으… 케헥! 케헥!" 암부라니. 게다가 다른 마을의.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다 전력의 차이가 너무나도 극명했다. 그야말로 나는 덫에 걸린 쥐나 다름없었다. 다만 한 가지 아이러니한 일은 같은 이유로 그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은 이거 그 녀석이 죽기 전에 저항해서 다친 거야… 나도 참, 매번 안 그래야지 하면서 방심해 버린다니까." 와작. 부숴진 탈을 즈려밟고 걸어온 암부는 그대로 내 옆에 무릎을 구부려 앉았다. 탈에 감추어져 있던 얼굴은 놀랍게도 여느 마을에나 존재하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심지어 그는 웃으며 부드러운 어조로 내게 물었다. ", 우리 마을로 올래?" "포로가 될 바에는 여기서 죽는 게 나아."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말하고 있는 건데." "……." "야, 누구 생각해? 묻는 말에 대답하라고." "싫어!" "흥. 그러면 손수건이라도 챙겨서 가야겠다-." "어, 어째서?" "너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기 보다는, 전리품. 하하핫!" 살아돌아온 것만으로 다행이다.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임무 실패 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나는 이루카로부터 히루젠 님의 전언을 들었다. 그리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됐다. 아직 불의 나라와 흙의 나라의 분위기가 살벌했던 시절. 당시만 해도 정보를 빼내거나 그밖의 이유로 다른 나라에 닌자를 심어 놓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내가 만났던 암부도 바위마을로부터 침투해 온 '적'이었다. 그런 적이 몇이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이쪽 수색반에 속한 암부들마저 애를 먹는 상대였다. "돌려받고 싶으면 찾으러 와. 남자친구를 대신 보내도 돼. 아니, 그냥 그래라. 더 재밌을 것 같으니까." 상대편에게도 나는 보호받아야 할 여자애가 아닌 엄연한 적이었다. 가감 없이 맞아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만 진작 잊고, 마지막 말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절망했다. 하급닌자인 내가 뭘 할 수 있지. 설령 찾는다 해도… 그렇잖아, 좋아하는 아이에게 부탁할 리 없잖아. 가면 죽을 게 뻔한데. 애당초 나가는 걸 허락받지도 못할 텐데. 차라리 탈주라도 해서, 직접 가서, 혼자 죽는 게 낫지. 거기까지 생각하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놀란 이루카가 괜찮냐고 물었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그저 웃었다. 그로부터 몇 날 며칠 자괴감에 시달렸다. 공황상태에 빠져 임무를 쉬다가, 오랜만에 마당에서 바람을 쐬고 있을 때였다. "하타케 군, 임무 나가는 거야?" "……." "나도 알아. 당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 "……." "혹시… 내 손수건… 아직… 있다면… 나한테… 가져다 줄 수… 윽……." 카카시와 마지막으로 말을 섞은 게 언제였더라. 기억도 못하는 주제에 자존심만 세서 이를 악 물고 말했다. 결국에는 울음을 터뜨릴 거면서. ─킁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옆집 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하타케 카카시!!! 어디 갔어, 재수없는 놈아!!! 휘이잉. 나뭇잎 한 장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때는 진심으로 울컥해서 분노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뻔했다. 하지만 곧, 어쩌면 내가 잘못 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카카시가 거기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으니까. 엎어진 상자 옆에 웅크리고 앉아 생각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가 조금 앞당겨졌으면. 그러면 산타할아버지한테라도 부탁해 볼 텐데. 가로등의 불빛이 캄캄한 거실로 희미하게 새어들어 왔다.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창밖을 보니 제법 쌓여 있었다. 어쩐지 고개를 내밀어 옆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 확인하기가 무서웠다. 무슨 심경의 변화였는지 한참을 망설이다 결심하고는 마당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가로막혔다. "뭐야……." 천천히 무릎을 구부려 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어서면 볼 수 없으니까. 우리 집 앞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암부는 차가운 바닥에 꿇어 앉아 고개를 숙인 상태였다. 하얀 머리카락 위에 똑같은 색의 눈이 쌓여 갔다. "하타케 카카시……." 어깨의 눈을 치우자 선명한 붉은색이 드러났다. 핏자국을 따라가 힘 없이 떨어져 있는 오른손을 봤다. 본래의 색을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빨갛게 물들어 버렸지만 움켜 쥐고 있는 그것은 틀림없는 내 손수건이었다. "너… 진짜… 재수없어… 흑……." (…) 기억의 필름을 끝까지 돌려 본 다음에는 여지없이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때마침 현관으로부터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기에 부랴부랴 상자를 서랍으로 돌려놓고 달려갔다. 밖에서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카카시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별일 없었어?" "응." 암부에서 활동했던 만큼 여전히 카카시의 얼굴에는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가끔, 아주 가끔, 카카시가 지금처럼 다정하게 말해도 그에 비해서 표정은 평소와 똑같달까, 너무 딱딱해서 웃음을 참을 때가 있다. "있잖아, . 가끔은 이런… 와락 끌어안는다든지, 그런 게 좋아?" "그야 싫지는 않… 잠깐, 어째서 머리에 눈이 쌓인 거야?" "들어오면서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문 앞에 15분 정도 서 있었거든." 이런 점도 여전하구나. 뭐… 그때는 내게 미움받고 있었으니 최대한 조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가슴을 치고 싶다. 당장 병원에 실려갈 상태로 문 앞에서 눈을 맞아 가며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었는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어쩐지 '무겁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점점 내 쪽으로 기울어지는 듯한. "카카시, 다쳤지? 내가 병원에 가라고 했어 안 했어!" "수도 없이 말했지… 물론 다 기억해… 그냥 조금만…" "왜 이렇게 무리하는…흐읍!" 화내기 일보직전. 카카시의 손이 내 입을 막았다. "알았으니까… 당신부터 좀 보자, 응?" 그가 웃는 얼굴로 살갑게 부탁했다. 진짜 의미는 본능적으로 이해했고 발끝에서부터 소름이 끼쳤다. 뒷걸음질치다 소파 위로 털썩 쓰러뜨려졌다. 키스하면 90% 이상 확률이라 때려서라도 말리려 했지만 끈질기게 혀를 얽어 왔다. "음… 음음……." 솔직히 하타케 군은 멋있었는데. 아련하고 두근거리는 기억으로만 간직하고 싶어도 카카시의 방부제 외모 때문에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확실히 소년은 언젠가 아저씨가 되는구나, 린. 이럴 거면 고민은 왜 했을까. "하……." 뜨거운 숨결이 입술 위로 떨어졌다. 반대로 옷을 헤치고 들어오는 손은 얼음처럼 차가워서 몸서리가 쳐졌다. 될 수 있으면 이성과 비이성 사이에서 좀 더 갈등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고민은 끝난 듯했다. "다 때렸어?" "다친 사람을 어떻게 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지? 하하하." 스커트가 발랑 뒤집어진 채 속옷이 벗겨져 한쪽 다리에 걸렸다. 아무리 뭐래도 너무 많은 걸 생략했다. 어쨌든 이쯤에서 카카시도 알아 주겠지. 내 몸은 아직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ㄱ… 아아, 그건 순전히 내 바람일 뿐이었다. "아아아앗! …야, 이 재수뿡아! 나는 아파도 상관없다는 거야?" 유치한 별명이니까 웬만하면 마음 속으로만 부르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내뱉고 앗차 했다. 카카시라면 이미 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여전히 이 안에 아이가 있음을 들키는 건 역시 부끄러웠다. "어쩐지 눈이 빨갛더라니, 어렸을 때 생각하고 있었구나. 재수뿡이라는 말 되게 오랜만에 듣는다. 아이고… 그래, 그래." 나한테 파렴치한 짓 하면서 평소랑 똑같이 웃지 말라고. 암부로 돌아갈 생각 없다더니 지금도 표정과 행동이 전혀 매치되지 않는다고. 훌륭한 탈이잖아. 누가 보면 진짜 상냥한 남편인 줄 알겠다. 아래로는 막 다루고! "움직일게." 동거하고 있으니까 매번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도 목욕할 때 '어쩌면…' 정도의 생각은 한다. 덕분이랄지, 처음에는 움찔움찔 떨리던 몸이 알아서 적응하며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너 말이야… 방이 아닌 데서 할 때 더 민감한 거 같아." 당신 말대로, 사실은 내 몸이 거친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아니면-, 계속 방어적인 자세로 있다가는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당신을 기분 좋게 해 주기 위해서, 내가 일부러 모든 걸 내려놓는다거나!!! "기분 좋아……." 그. 러. 니. 까. 나한테 잘하라고. 다음에 할 때는 공주님안기해서 침대까지 에스코트하라고. 또 다른 데서 덮치려고 했다간 이쪽도 이판사판이니까. 다쳐서 돌아와도 키스는커녕 소파 밑으로 확 떨어뜨릴 테니까!!! "천천히 할까?" "괜찮아… 이대로……." "빨리 보내 버리고 싶어?" "장난치지… 윽… 안 돼…!" 이렇게 될 걸 알고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는 능구렁이. 결국에는 그대로 애매하게 절정을 느껴 버렸다. 더 적극적으로 어울려달라는 투정이었다. 욕구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게 해서 오기로라도 덤벼들게 만드려는 거다. "민감하게 반응해 주는 건 기쁜데, 역시 조금은… '마음'도 느끼게 해 줬으면 좋겠어." 그런 주문이라면 기꺼이 받아드리지. 파르르 떨며 두 팔을 뻗자 카카시가 기다렸다는 듯 밀착해 왔다. 목을 끌어안고 매달리니 제법 만족하는 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음…" 겨드랑이 밑에 있던 손이 머리맡으로 올라왔다. 몸이 더 크게 흔들렸다. 사양 없이 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대로 다시 혀가 얽혔다. 숨이 부족해서 떨어뜨리려 해도 옷만 주욱 늘어날 뿐 더 엉켜 올 뿐이었다. "으음…!" 두번째는 입이 막혀서 우는 소리만 냈다. 좀 쉬게 해줄 마음이 생겼는지, 카카시가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었다. 능청스레 웃으며. "빠르구나… 귀여워." 어쩐지 오늘따라 카카시에게서 어린 시절 얼굴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이겠지. 눈 앞의 하타케 군에게 부탁하고 싶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걸어나오지 말아 달라고. 솔직하게 반응한 것뿐인데, 카카시가 팔불출처럼 후후후 웃는다. 누구나 파트너가 행복할 거라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것도 내 기분 탓일 수 있지만, 문득 카카시의 얼굴에 빛이 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에 납득했다. "이렇게 하는 거 좋아하니까. 그치?" 재수없긴 하지만 현재의 카카시에게는 '정말 내 몸을 잘 알고 있구나'라고 느낀다. 의외로 처음에는 머리를 침대에 부딪게 하는 등 실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습관적인 느낌은 딱히 들지 않았다. 반대로 이쪽에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는 듯한… 어쨌든, 4년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도 남을 시간이다. "카카시." "응?" 얼굴에 빛이 인다는 건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화나게 해도, 아프게 해도, 단지 나를 위해 여러가지 시도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거칠게 했냐는 듯 그가 내 뺨에, 귀에, 다정하게 키스했다. 몽롱하니 좋아서 그 기분으로 속삭였다. "사랑해……." 그러자, 카카시가 키스하다 말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이럴 때 아니면 입이 안 떨어지지?" 평범하게 웃으며 말해도 어쩐지 끈적하게 들린달까, 농염하다. 기억 속 하타케 군과는 다른, 이쪽 카카시만의 매력이다. 내게는 말할 틈도 안 주고 귓불 같은 곳을 깨무는 탓에 이상한 소리로밖에 대답하지 못했다. "좋아한다는 말도 그렇게 했으면서… 너무해." 딱히 분위기를 타서 하는 말이 아닌데.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른척하는 건지 일부러 아픈 곳을 건드렸다. 그런 다음에는 핥거나 깨무는 것으로 내 관심을 돌린다. 키스로 정신을 쏙 빼놓더니 움직임이 다시 거칠어졌다. "안에……. 돼?" 숨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지만 굳이 되감기할 필요는 없었다. 안 된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 못내 받아들이고는 카카시에게 안겼다. 거실에서는 불필요하게 소리가 울리는데 목소리를 낮출 수가 없었다. "윽……." 어째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까 의아할 정도로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생략하고 아무렇지 않게 안에 내 버린다. 그다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무언가 엄청난 쾌감과 함께 봇물처럼 터져 나오면서 이성과 감성을 자극했다. 상처를 치료해 줘야 하는데… 위험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대로 숨을 고르다가 잠들 것 같다. "하아… 하아……." 어쨌든 조금 쉬지 않으면. 눈을 감으니 자연스레 필름이 재생되었다. 어렸을 때 살았던 집, 눈 내리는 밤, 엎어진 상자… 나는 문을 열고 나간다. 하타케 군의 몸을 살펴본다. 기절한 게 아니라 잠들었다는 걸 확인하고 안심한 나머지 그를 끌어안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실험실에 혼자 남았을 때 카카시의 꿈을 엿봤다. 지금까지 모인 데이터를 이용해 16살의 겨울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당시의 하타케 군이 되어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결과는 이거다. '어떻게든 살아서 돌아왔다.' '이제 손수건만 돌려주면 되는데.' '그녀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아… 야단났네. 다리에 점점 힘이 풀려.' '잠시만 앉아서 생각한 다음 문을 두드리자.' 우습게도 그게 다였다. 결국에는 그대로 잠들어 다음날 병원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 보니 가 있었다. 아아, 간담이 서늘했지. 하마터면 손수건에 대한 일은 깨끗이 잊어버린 채 '집을 착각했어'라고 둘러댈 뻔했다. "카카시, 자?" 대답이 없다. 완전 녹초가 되어 버렸구나. 보통 한 번 했다고 쓰러지거나 하지는 않는데 돌아오자마자 무리해서 체력이 바닥났나 보다. 이런 상태로 병원에 가는 것은 무리다. 어차피 말해도 듣지 않을 테니 마음을 느긋하게 가질까. "하타케 군, 자는 거야?" 내 위에서 잠들면 곤란하달까, 무거운데… 그래도 싫지만은 않다. 카카시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고는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바보… 그 정도는… 하지 않을 때도 여러번 말했어… 네가 못 들은 거야……." 카카시가 잠에서 깨면 이번에는 제일 먼저 사랑한다는 말부터 들려 줄까. 그럼 더는 딴소리 못하겠지. 후후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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