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과후 아이들이 모두 빠져나간 교실. 그동안 아카데미 안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교실의 풍경은 거의 변함이 없다. 낡은 캐비넷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했다.
태양을 닮은 남자아이, 오비토에게 한눈에 반했던 그날부터 나는 매년 그의 캐비넷 안에 과자를 몰래 넣어 두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오비토가 죽은 이후에도… 이렇게 찾아와서, 때아닌 우울증을 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캐비넷 문에 생긴 작은 흠집마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마치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 같다. 미안, 카카시. 네가 있어서 행복하지만 오비토를 좋아했던 내 마음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어. 지금도 생각하면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아. 내게 있어서 오비토는 눈을 뜨자마자 처음 보았던 '빛'이었다. 새끼에게는 '어미새'와 같은 것.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첫사랑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더니, 말 그대로다. 무슨 짓을 해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다시 말하면 완전히 잊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별 수 없이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의 안식이 찾아온다. 그와 동시에 묵직한 자괴감 또한 가차없이 나를 내리 찧고, 내게 잔인한 질문을 던진다.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뭐냐고. 이제 와서 전부 후회하는 거냐고. 어째서 나는 이다지도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누군가 들으면 나를 비웃겠지만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이러한 아픔을 반복해온 기분이 든다. 연인을 잃고 그 사람을 잊지 못해 계속 방황하는… 가슴 한구석에 커다란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하다. 마음에도 치료인술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스갯소리지만 초대 호카게이신 하시라마 님이라면 그런 일까지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을 맺지도 않고 치료인술을 자유자재로 쓰실 정도니까. 흔한 창조 신화처럼 믿기 어렵지만 재밌는 이야기다. 현대 의학은 대부분 츠나데 님에 의해 정립되었지만, 역시 고전적인 '신'을 말하자면 하시라마 님이다. 어느날, 츠나데 님께서 뜻밖에 내게 하신 말씀이 있다. '너는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를 닮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굉장히 흐뭇했다. 이론적인 의학에 있어서는 2대 호카게이신 토비라마 님의 업적도 빼놓을 수 없겠지. 몸과 마음을 다 치료할 수 있는 의료닌자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밸런타인을 기념해서, 두 분께 제라도 올려야 할 성 싶다. 초콜릿 같은 거 좋아하시려나. (…) 농담이 아니다. 오비토를 만나러 와서 두 분 위령비 앞에도 초콜릿을 놓았다. 최대한 정성스럽게 포장했지만 막상 청소하시는 분께서 빈상자로 오해하시면 낭패다. 누가 감히 마을 창립자 분들의 위령비 앞에 이런 것을? 하면서… 에헤헷…;; 그래도 나름 노력했으니까 정성만은 알아 주시겠지. 에라, 모르겠다. 하시라마 님, 토비라마 님, 저 갈게요. 내년에 또 올 거예요. 쌔앵. 아직 메인 이벤트가 남아 있다. 내 남자에게 밸런타인 데이 선물을 전하는 것이다. 단맛을 최대한 배제하느라 초콜릿보단 어르신들께서 즐겨 드시는 쌀과자에 가까운 것이 되었지만… 어쨌든 나름 건강도 생각해서 만들었다. 이래 봬도 영양역학 전문의 아닌가. 맛은 몰라도 진심은 충분히 담았다고 생각한다. 카카시라면 분명히 알아줄 것이다. 때마침 현관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재밌는 생각이 떠올라서 망설임 없이 다다다 달려갔다. "하타케 군! 좋아해! 사귀자! 아니, 이미 사귀고 있으니까 결혼해줘!" "아… 응, 고마워. 그치만 너무 갑작스러우니까 천천히 계획부터 세우자." 하타케 군은 예전부터 정말 당황하는 법이 없다. 내가 내민 상자를 받아들고는 나직이 미소짓는다. 뭐, 어렸을 때 여자애들의 선물을 휩쓸어 버리고도 무덤덤했던 것에 비해 이 정도면 기뻐하는 거라고 봐야 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소파로 가져가더니, 포장지를 뜯자마자 바로 입에 하나 넣는다. 바삭바삭. 그동안 밥 먹기 전에 군것질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하나 더, 하나 더 들어간다. 바삭바삭. 바삭바삭.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귀여워서 뺨에 뽀뽀해 주었다. 그가 이쪽을 돌아보며 입술에 한 번 더 키스한다. 오늘은 카카시도 응석이 부리고 싶은가 보다. '으응…' 피곤한 듯 신음하면서도 그의 두 팔이 내 허리를 감아온다. 나를 자기 무릎에 앉히고 꼬옥 끌어안더니, 또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먹는다. 달지 않아서 맛있나보다. "배고팠어요?" "뭐, 조금… 허전한 느낌이랄까." 정말 무슨 일이지. 오늘의 카스테라는 평소보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부비적부비적. 하얀 머리카락이 뺨을 간질인다. 후후후. 삐딱한 서클렛을 벗겨 근처에 두고는 머리에 쓰담쓰담 해주었다. 위쪽으로 뻗쳐 있던 머리가 차분히 내려앉자 외모가 더욱 돋보인다. 잘생겨서 멋있기도 하지만 지금은 예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과자는 나중에 먹어요. 식사 준비해 놨으니까." "올해도 오비토의 위령비 앞에 누군가 예쁜 상자를 두고 갔더라." "봤어요…?" "글쎄, 봐버렸네요. 딱 봐도 우리 와이프 솜씨라서 내가 홀랑 다 먹어버렸지." "어, 얼마나 열심히 만든 초콜릿인데… 너무해……." 단 거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어쩜 그럴 수 있어. 이런 심술쟁이 같으니. 퍽퍽. 분한 마음에 마구 때리다가 팔을 덥석 붙잡혔다. 그대로 나를 넘어뜨리고는 뻔뻔하게 덮치려 한다. 발버둥치며 저항해보지만 그다지 소용없다. "너무한 건 당신이지. 꼭 그래야겠어?" 이 사람이 작정하고 덤비면 나는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츠나데 님 밑에서 수행한 내가 가만히 당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예전의 나에게는 없었던 힘! 그래, 여자의 파워를 보여주지! "…이제 내꺼잖아, 너. 더는 안 봐줘." 꾸우우욱. 무언가 가슴을 강하게 짓눌러온다. 숨이 막혀서 아찔하다. 뭐지, 이 느낌은. 묘하게 짜릿하다. 내 남자가 이렇게 박력 있었던가. 그러고 보니 카카시도 질투할 때는 장난아니게 무서운데 잊고 있었다. 이쯤에서 기브업해야 하나. 힘이라면 남아 있지만… 갑자기 덮쳐지는 것도… 시, 싫지만은 않다. 내 남잔데 뭐 어때. 질투하는 모습도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 게다가 이, 이쁘… 멋있다. 응, 터프한 카스테라도 좋아. 헤헤헷. //// "얼씨구, 웃음이 나와? 뭘 잘했다고 헤실거려?" "짓궂게 묻지 말아요……." 작은 목소리로 앙탈부리자 어쩔 수 없었는지 결국에는 카카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봐주는 거 아니야. 앞으로 더 어두워지면 일어나게 될 일들을 암시하며 내게서 물러난다. 식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걸까. 그러면서도 남아 있는 과자를 하나 더 집어 먹는다. 바삭바삭. 초콜릿이고 과자고 식사까지 다 먹어치울 셈인가보다. 쳇, 욕심쟁이. 그렇지만 오늘은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헤어날 수 없다고 해야 맞으려나. "맛있다, 당신." "뭐, 뭐예요… 변태 아저씨……." "왜 이래, 새삼스레 고맙다는 말은 지루하잖아. 이제부터 조금 더럽게 놀아보자구." "…네." 오늘 밤은 길겠구나. 그리고 내일부터는 밸런타인 데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만으로 씁쓸할 정도의 달달함이 느껴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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