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포니테일을 고수해왔잖아. 왜 갑자기 바꿀 생각을 하는 거야? 혹시 누가 뭐라고 했어?"
"아뇨, 오히려 전부 바꾸지 말라고 만류를 하니까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지금까지 계속 포니테일이었던 건 딱히 그 모양이 좋아서가 아니예요. 전 슬슬 변화를 주고싶단 말이죠." "그럼 바꾸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일단 나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의견이야. 선생한테는 심플한 포니테일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러니까 고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겉모습을 바꾸는 건 결국 자기 만족을 위해서잖아. 고민할 필요까지 있어? 그래서, 바꾼다면 어떤 모양으로 바꿀 생각인데?" "딱 어깨에 닿는 정도의 단발이요. 여성스러우면서도 일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니까 그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음……." 그가 입을 다물고는 내 머리 쪽을 지그시 바라본다. 얼굴이 조금 딱딱하게 굳은 것 같다. "왜 그러세요? 안 어울릴 것 같아요?" "그건 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어째서요?"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어서 말이야. 사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이 의견도 고려해주지 않을래?" "하타케 상닌의 의견은 중요해요. 뭐가 어쨌든 지금은 이성으로서 제게 가장 가까운 분이시니까요. 그런데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니, 혹시 그 사람이 린인가요?" "……." 그가 침묵으로 대신 답한다. 실은 알고 있었다. 애당초 나는 그냥 머리 모양을 바꾸고 싶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 친구와 같은 머리 모양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딱히 이제와서 그런 마음이 생긴 게 아니라 줄곧 그래왔다. 그 시절 린은 내가 누구보다 동경했던 여자아이였으니까. "하타케 상닌이 그러시다면 그만둘게요. 변화도 좋지만 뭐라고 한들 저 자신에게 있어서도 가장 편한 것은 포니테일이니까요." "왜 하필이면 린인 거야? 그 밖에도 있잖아. 쿠레나이라던가…" 하타케 상닌의 물음에 잠시 주춤 한다. 쿠레나이라면 확실히 린 만큼이나 동경하고 있지만, 그 화려한 웨이브는 쿠레나이 정도의 외모와 몸매, 그리고 상급 닌자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다. "오비토 군이 좋아했던 여자아이니까요." "……." "하타케 상닌의 말대로 자기만족이예요. 하지만 주변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면서까지 고집할 것은 아닌 것 같네요." 이쯤 되면 저쪽에서도 뭔가 한 마디 해야 하는데… 하타케 상닌은 아무런 말도 없이 이쪽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다. 분위기가 약간 무거워진 것 같달까, 왠지 모를 한기가 느껴지는 것은 기분탓일까. "그때 이후 생각을 접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네?" "예전에도 그랬던 적 있었잖아. 어느 날 린과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나타나서는, 자신의 성격까지도 바꿀 것 같은 위화감을 풍기면서, 오비토에게 무시당해서 실망하고는 다시 묶기 시작했잖아. 기억 안 나?" 확실히 기억 난다. 잊어 버릴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 굳이 그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나. 어째서 이 남자는 사람의 아픈 기억을 아무렇지 않은 듯이 꺼내는 걸까.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눈을 통해 저를 보고 있어요." "……." 어째서 또 침묵으로 이어지는 거지. 평범한 대화를 하고 있을 뿐이건만. 내가 이상해보이는 걸까.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가끔은 내 자신에게 환멸을 느낀다. 이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그 시절 자신의 순수했던 마음을 배반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표정 짓지 마." 어느덧 고개를 숙인 채 우울함에 젖어든 내 모습을 보며 그가 말한다. 꼴보기 싫으면 어딘가로 가버리면 될 것을. 그렇게 습관처럼 또 다시 비뚫어진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렸을 적, 우울한 기분으로 혼자서 평소 자주 다니던 언덕에 갔다. 그곳에서 뜻밖의 두 남자를 발견한 나는 저도 모르게 나무 뒤에 숨고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당시에 하타케 상닌은 이미 학교를 졸업해 이듬해 승급한 중급 닌자였고, 언제나 투닥거리긴 했지만 오비토와도 나름 가까운 사이였다. 두 사람은 나무 그늘에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그다지 특별한 점은 없었다. 오히려 놀라울 정도로 평범. 이야기의 주제는 이상형인 것 같았다. "난 딱 어깨에 닿는 정도의 단발머리가 좋아." "흐응, 누굴 말하는지 뻔히 보이네." "시, 시끄러워. 넌 어떤 스타일이 좋은데?" "나? 난 평범한 포니테일." "포니테일? 진짜 평범하네." "머리모양은 아무래도 좋지만 굳이 선호하는 것을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야."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용기를 내서 머리를 잘랐다. 친구들은 언제나 고무줄로 질끈 묶고 다니던 내가 갑자기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나자 하나같이 놀란 듯한 반응이었다. 그냥 묶는 편이 낫다고 하는 말도 들었고, 나름 어울린다는 말도 들었다. 그저 머리 모양을 바꿨을 뿐인데 예상 이상의 관심을 받게 되자 불안감이 사라진 나는 기대와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오비토가 있는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던 그와 복도에서 마주쳤다. "아, 안녕, 오비토 군." "응? 아아, 누군가 했더니 너구나." "저기… 내 머리…" "그럼." 홱 하고 나를 지나쳐가는 오비토를 멈춰세울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서 있던 나는 같은 날 하교 후 이전의 그 언덕으로 향했다. 그늘 아래 홀로 앉아서 눈앞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참았던 눈물이 흘러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일이었지만 당시엔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한없이 슬픈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그때, 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 하나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나는 나뭇잎을 떼고서 위를 올려다봤다. 그곳에 하타케 상닌이 있었다. "넌 그냥 너답게 있는 게 가장 좋은 거 아니야?" 그 언덕은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임과 동시에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내게 가장 친근한 장소가 될 수 있었다. 하타케 상닌은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었기에 그가 그곳에 있는 것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내게 말을 건넸으면서도 그의 시선은 늘 그랬듯 눈앞의 풍경을 향하고 있었다. "칭찬했었어." "?" "그 녀석은 분명 어깨에 닿는 단발머리가 좋다고 했지만, 네가 간 뒤에…" 그때 나는 하타케 상닌으로부터 말을 전해들은 것뿐이었지만 줄곧 오비토가 말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었기에 그의 목소리와 말투를 머릿속에 그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포니테일인가-. 그러보니 제일 베이직한 머리모양인데 어울리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지? 누가 있었더라? 음… 아, 녀석! 그 녀석이 걸을 때 마다 꽁지가 흔들리는 건 나도 조금 귀엽다고 생각해." 오비토의 웃는 얼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순간, 다시 눈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슬픔이 아닌 안도감과 허탈감이었다.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져서 울음은 곧 그쳤지만 하타케 상닌에게 그런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뒤늦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저기, 하타케 군." "응?" "그때 눈치채고 있었으면서 왜 모른척해줬던 거야?" "…그러게." 그는 내게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멀게 느껴졌다. 지금도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당시에 내 눈에 비친 하타케 상닌은 속을 알 수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그 나른한 시선을 마을의 전경에 던지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보이지 않았기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타케 상닌도 오비토 군과 같은 생각이신가요?" "?" "이 꽁지가 흔들리는 거요. 귀엽다고 생각하세요?" "아……." 분위기를 바꾸어 밝게 웃으며 물으니 그가 조금 당황한 듯 뜸을 들인다. 그리고 이내 평소와 같이 나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응, 포니테일로서는 더할나위 없지 않나 싶은데." "그런가요-.(긁적긁적)" "자기가 물어놓고 뭘 쑥스러워하는 거야?" "생각해보세요, 제가 동경하는 사람은 린! 린이 동경하는 사람은 하타케 상닌! 그 하타케 상닌의 이상형이 바로 나! 유쾌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하하하핫-." "포니테일이 좋은 건 맞지만 사람은 머리 모양이 전부가 아니잖아. 딱히 선생이 내 이상형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어. 자만하지 말도록." "에, 아닌가요? 그런…(실망)" "이젠 내 취향도 조금은 신경쓰게 되었구나, 선생. 이성으로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당연한 걸까나. 으음, 좋아. 기뻐. 이대로 조금만 더 허물을 벗어서 준코와 같이 되어줄까나?" "어지간히 준코는 저리 좀 치워주세요! 허물을 벗다니 무슨 뜻입니까! 분명하게 이중적으로 들려옵니다만! 부하 성희롱이예요!" "이 여자, 뭐든지 그런 쪽으로 생각해 버리네-. 완전히 음란마귀에 씌여 있잖아-. 싫다, 상사 성희롱이야-." 나른한 표정 그대로 그가 두 손을 뺨으로 가져가며 언제나와 같이 능청을 떤다. 옛날의 하타케군은 이런 능글맞은 아이가 아니었는데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든 걸까. 설마 나는 아니겠지. 그런 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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