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야? 짓궂은 장난은 싫은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가 읽고 있던 책을 덮으며 순순히 눈을 감는다. 머리카락의 색과 같은 그의 속눈썹을 보니 이렇게 따뜻한 날씨에도 마치 한겨울의 서리가 내려앉은 듯하다. 나뭇잎 마을에는 백발이 더러 있지만 그의 것이 왠지 모르게 특별하게 여겨지는 것은 역시 자신의 마음 때문일까. 자신이 눈을 감아달라고 부탁했으니 이제 줄곧 생각하고 있던 것을 실행에 옮겨야겠는데, 막상 이 사람을 앞에 앉혀두니 머뭇머뭇 망설이게 된다. 정말 괜찮을까. 에라, 모르겠다. 해버리자. "지금부터 제가 몇 가지 질문을 할 텐데, 고민하지 마시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바로 대답하십시오." "오, 뭔지 모르겠지만 나 이런 거 좋아-. 두근두근-." "지금 하타케 상닌께선 과거 어느 시점의 제 모습이 가장 보고 싶으십니까?" "으음……." "고민하지 마시라니까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12살 때인데, 지금은 17살의 가 보고 싶네." "만약 17살의 제게 옷을 입힌다면 어떤 스타일이 좋겠습니까?" "언제나 입던 거. 는 그게 제일 어울려. 가이 녀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었던 것은 완전 어색했어." 굳이 그런 쓸데없는 얘기를 덧붙일 필요는 없는데. 그렇게 이상했나. 자신의 패션 센스가 딱히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당시에 가이는 예쁘다고 말해줬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자. "옷을 입혔다고 가정하고 제게 무언가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듣고 싶은 말, 너무 많은데." "그 중에서 하나만 고른다면요?" "음… 그냥 이름으로 불러줬으면 좋겠어."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눈 떠도 돼?"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자신의 집이니까 두 사람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당연하지만 괜스레 주변을 한 번 슥 둘러본 뒤 조용히 인을 맺는다. 변신술로 모습을 바꾸고 거울을 흘깃 쳐다보니 역시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변신했다고 해도 과거 자신의 모습이니까. 침대 위에 편하게 앉아 있는 하타케 상닌에게 다가가 품에 안기듯 그의 무릎에 앉는다. 지금은 본래의 모습보다 키가 조금 줄어서 이렇게 하고 있어도 내가 그를 올려다 봐야 한다. 그의 어깨 너머로 손을 뻗어 살며시 감싸안으니 은근히 긴장된다. 첫번째 질문에는 '~살 때 쯤'이라든지 '~했을 때' 같은 살짝 애매한 대답이 나오는 것을 예상했는데, 콕 집어서 12살, 17살이라고 대답한다는 것은 그 만큼 이 사람이 과거의 내 모습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에 반해 내 쪽은 어린 시절의 하타케 상닌에 대한 기억을 그다지 갖고 있지 않다. 특히 우리가 17살 때는 그가 암부에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한 번도 마주치지 않으면 살았는지 죽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됐습니다. 저를 봐주십시오." 그가 눈을 떠 나를 바라본다. 놀란 건지 당황한 건지 알 수 없는 표정. 그대로 몇 초간 더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안녕 카카시… 내 모습 어때…?" 혹시 뭔가 잘못 됐나. 속으로 걱정하는 찰나 그가 내 모습을 위 아래로 천천히 훑는다. 그리고 다시 얼굴에 시선 고정. 눈을 마주치기 민망해서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으니 어쩐지 저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지고 움츠러들게 된다. "뭔가 말을 해주세요……." 마치 관찰하는 것처럼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내가 고개를 돌리면 그의 시선도 나를 따라온다. 그러는가 하면 내게 턱을 살짝 들게 하고, 그가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게 한다. 뭔가 이상하다기보다는 그냥 시선을 피하지 말라는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곤란하게 됐네. 난 오늘 선생이랑 야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선생은 그냥 내게 응석이 부리고 싶었던 걸까나."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 가, 아니라…! 기… 기쁘지 않으십니까…?" "글쎄, 가 나를 위해 여러가지로 힘써준다면 기쁠 것 같아-." "……." 이 인간, 다 알면서 능청을 떨고 있다. 그를 위해 변신한 것이지만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응석을 부리고 싶었는데. 원래의 목적에 집중하라는 것인가. 묘하게 얄미운 하타케 상닌을 얄쌍한 눈으로 노려보는 것도 잠시, 그의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맞춘다. 쪽-. 작지만 은근히 야릇한 소리와 함께 그의 손이 허리를 감싸온다. 주저없이 나를 시트 위에 눕히면서도, 부드러운 키스를 계속하며 서두르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한다. 그의 목에 팔을 두르니 뜨거운 혀가 얽혀온다.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손은 이미 내 옷을 벗기고 있다. 완전히 벗기지는 않고 그가 말하는 '야한 일'에 딱 필요한 부분만 드러내도록 한다. 그래도 변태 아저씨라는 말은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두번째 질문을 할 때 어쩌면 여러가지 의미로 부끄러운 복장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사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두근두근 뛰어대는 심장과는 별개로 생각했던 것보다 편안한 기분이 들어서 몸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른다. 하지만 이쯤에서 한 번쯤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나? 입술이 떨어지고나서 바로 뺨에 키스를 하는가 하면 목과 귀 언저리에서 계속 쪽쪽 소리가 들려온다. 손으로는 가슴을 만진다. 아무리 벗은 상태라고 해도 너무 사양없는 손길이라 당혹스럽다. "하타케 상닌… 뭔가… 말을 해주세요… 너무……." "오늘은 날 이름으로 불러주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아직 존댓말로 돌아가지 마."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와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들려오고, 뜨거운 숨결이 떨어진다. 그는 딱 필요한 말만 하고서 키스를 계속한다. 쪽쪽 쪽쪽. 몸이 민감해져 그 소리 마저 내 몸을 음흉하게 더듬거리는 듯하다. "조금 천천히 해도……." "천천히 하고 있잖아." 확실히 부드러운 손길은 평소와 다름없다. 다른 것은 그저 느낌 뿐이다. 평소의 그는 나를 위한 애무를 하지만 지금의 그는 단지 자신의 욕망대로 나를 범하고 있다. 과거의 하타케 군과 같이 그가 나를 좋아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는다. "나… 무서워……." "17살이면 사실 응석부릴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귀 언저리를 핥는 순간 찌릿 하고 강한 쾌감이 밀려온다. 그리고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그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 한순간 가장 안쪽까지 닿았다. ", 느껴져? 지금 네 안에 누가 들어가 있는지 말해봐." 변태 아저씨…! 라고, 이번에는 정말 육성으로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역시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의 그라면 내게 이런 짓궂은 일은 시키지 않는다. 그냥 무시할 수는 없고, 솔직하게 싫다고 대답할까. 말을 듣지 않으면 조금 전처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 "카카시……." 수치심으로 가득 물든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그로부터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아무리 뭐래도 이상하다. 어째서 다른 거지. 그러고보니 내가 17살 때면 아직 가이와 사귀고 있을 때다. 이 사람에게는 친구의 애인을 범한다는 묘하게 짜릿한 상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보니 옆을 향해 누워 있는 내 한쪽 다리를 휘어잡으며 그가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키는대로 하면 상냥하게 해주는 것 아니었나? 처음부터 이런 거친 움직임은 버겁다. 기분 좋지만 그와 비슷한 정도로 아프다. 그리고 무섭다.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 번 말해본다 한들 분명 소용없겠지.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하다못해 이 말만은 하지 않으면. "아파……." "알고 있어." 알고 있다. 설마하니 그게 다인가. 여전히 거친 움직임에, 이번에도 필요한 말만 하고서 그가 내 목과 어깨 등에 키스를 한다. 주체할 수 없이 신음이 입술 밖으로 새어나가는데, 그 소리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싶으면 귀를 핥거나 깨물기도 한다. 한차례 날카롭게 쾌감을 토해내고 나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와 같이 내 가슴을 만지고 있는 그의 손길이 부드러워진다. 마치 내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 같다. 그 뒤로도, 그 뒤로도 계속. ", 한 번 내고나서 다시 해도 될까?" 아직 절정을 느낄 정도로 여유가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칠게 하는 것을 이쯤에서 끝내준다면 오히려 내쪽이 부탁하고 싶다. 그리고 다시 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조금 불쾌할 수도 있으니까 미리 사과할게. 미안." 무슨 말이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가 나를 정면으로 향하게 한 뒤 더 거칠게 움직인다. 절정이 옴과 동시에 두 눈을 질끈 감으니 머지 않아 내 몸 위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쏟아진다. 이 질척이는 느낌,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아서 자괴감이 밀려온다. "하아… 하… 한 번 쯤은 너의 이런 모습이 보고 싶었어. 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그가 나를 천천히 일으킨다. 이제 보는 것은 충분한지, 기껏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놓고는 자신과 반대쪽을 향하게 한다. 조금 전까지 완전히 괴롭혀지고 있던 내 안으로 이번에는 그의 손가락이 들어온다. 이제와서 새삼 부드럽게 만들 필요는 없을 텐데. "이제 이 정도로는 기분 좋지 않아? 하지만 모처럼 변신했으니 난 오늘 너의 여러가지 모습을 전부 보고 싶어. 아까는 그다지 여유가 없어서 바로 시작해버렸지만… 잠깐이면 되니까 참아. 알았지? 착하지-." 이런 변태 XX…! 더는 참아줄 수가 없다.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너무 우쭐해져 있는 것 아닌가. 내 이 인간의 머리털을 확 잡아당겨 버리고 말 테다. 속으로 욕을 씹어 삼키는데 생각과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그의 뜻대로 점점 애가 탄다. "예전 우리의 관계를 생각하면 네가 지금 나한테 엄청난 일을 해주고 있는 거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지만 네가 나를 위해 어떤 일까지 해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졌어. 말해봐, 이제부터 어떻게 해줄 거야?" 그런 것을 물어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지 않았나?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이 이상은 없다. 변태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까보냐. 보나마나 터무니없는 것이겠지. " 네가 모르겠다면 실험해보는 수밖에 없네. 걱정 마, 내 안에는 아직 꺼내지 않은 것이 굉장히 많아. 하하핫-." 나왔다…! 다분히 이중적으로 들려오는 이 인간 특유의 기분 나쁜 시모네타…! 두 눈을 질끈 감아 현실을 외면하고 싶다. 새삼 내가 이런 인간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괴로워졌다. 설마하니 내 이상형 목록 중에 변태가 있을 리는 없고… 생각하기도 싫다. "평소에 그렇게 떠들기 좋아하면서 오늘은 너무 말이 없네. '아'나 '앗'만으로는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잖아. 그냥 편하게 즐기고 싶은 거야? 설마하니 잊어버린 거 아니지? 지금 네가 '나를 위해' 하고 있다는 거." 그가 허리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기 무섭게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온다. 뜬금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그와 이 체위로, 서로 마주보지 않은 채 한 적은 그다지 없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괜히 더 부끄럽고, 아프고, 무엇보다 앞이 허전해서 베개를 꼬옥 끌어안는다. "뭐 하는 거야? 하하하핫-." 스윽, 그의 손가락이 귀를 살짝 어루만지고는 사라진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어도 안쪽은 엄연히 성인 여자인데, 그런 것과 관계없이 그야말로 아이를 다루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움직일 때 마다 흔들리는 내 꽁지머리를 은근히 가지고 논다.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다는 듯이. ", 이런 것을 물으면 내가 좀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말야." 그래도 조금은 다정하게 느껴지던 그의 손이 갑자기 내 꽁지머리를 움켜쥔다. 은근히 거친 손길이다. "왜 그렇게 나를 미워했어?" 당장 대답할 여유가 없어서 일단 숨을 고르려는데, 그럴 틈 조차 주지 않고 그가 말을 잇는다. "오비토가 나를 구하다 죽어서? 린이 내 뇌절에 죽어서? 내가 천재라고 불려서?" 꽈아악─.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고개가 들어진다. "난 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 바보였는데." 아프다는 것을 목소리로 충분히 표현하고 있는데도 전해지지 않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일부러 그렇게 내버려두고 있는 걸까. 마치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 "너도 알다시피 과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전부 틀렸어. 시간이 흐를 수록 너에게 미움만 더 샀지. 그래서 조금은 네게 친근하게 느껴질 법한 인간이 되었는데, 너는 신경도 안 쓰더라?" 꽈아아악─. 이번에야말로 분명하게 아픔을 호소했다. 그러나 그는 도리어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반강제로 나를 일으켜세운다. 그리고 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인다. "그래서 그냥 참는 수밖에 없었어. 네가 내 친구와 붙어먹든, 후배와 붙어먹든."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그의 팔이 감싸온다. 그렇게 쓰러지지 않도록 나를 끌어안고서 그가 내 목을 핥는다. 무언가 찌릿 하고 올라오는데 평범한 쾌감과는 다르다. 살벌함과 오싹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 정도로 참았으면 몸 뿐이라도 좋다고 생각할만하지 않아?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그냥 널 덮치고 싶었어. 그게 다야." "……." "정말 부정할 수 없는 최악이지?" 머리카락을 움켜쥔 손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게 하고는 그대로 목을 핥고, 귀를 핥는다. 그런 다음에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숨결이 떨어진다. "나한테 실망했어? 그래도 아직 내가 좋아?" 실망은 무슨. 그런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딱히 내게 화를 낼 자격은 없다. 겨우 이 정도로 내가 마음을 버릴 거라 생각하는 건가. 어림도 없는 소리. 이제 나도 쉽게 놓아줄 생각은 없다. 그럴 것 같으면 애당초 나는 이 자리에, 그의 곁에 있지도 않았다. "날 미워해도 돼. 나한테 이 이상을 욕심내게 하지 마." 내 몸을 살며시 받치고 있던 손이 그대로 허리선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움켜쥔다. "몸 뿐이라면 '여기까지'라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는데, 이래서야 도무지 끝이 보이질 않잖아." 그는 사소한 움직임에서까지 일일이 내게 쾌감을 느끼게 하는데, 어째서 나는 이와 같이 그를 휘어잡을 수 없는 걸까. "네 달달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됐어." 아까부터 내게는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내 대답은 필요없다는 건가. 뒤돌아서 따지고 싶은데 계속 움직이고 있으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도대체 이 인간은 어떻게 할 일 다 하면서 여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그러고보니 차크라 고자라서 잊고 있었는데 기본적인 스태미나는 나랑 비교도 되지 않았지. 그도 숨이 약간 거칠긴 하지만 이 정도의 여유라면 앞으로 심한 짓을 얼마든지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질식하는 한이 있어도 할 말은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 내 말 듣고 있어?" "듣고 있어…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말하고 있잖아, '네가 너무 좋아서 미칠 거 같아'." "에?"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까, 내 말을 들어. 듣자하니 네가 잘 모르는 모양인데, 난 아직 너한테 내가 가지고 있는 달달함을 반도 보여주지 않았어." "……."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까보냐. 오늘에야말로 나의 진가를 알게해주겠어. 나도 한다면 하는 여자라고. 애당초 내가 당신을 위해 하고 있는 건데 어째서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이 주도하는 거야. 요즘 여자들은 그렇게 수동적이지 않거든.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아픔이 사그라든다. 가슴을 만지고 있던 손을 붙잡고, 뒤에서 나를 감싸안고 있는 그에게 힘겹게 키스를 한다. 내 행동에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젠 아무래도 좋은지 그가 혀를 얽어온다. "음… 음음… 하아… 하아……." " 너, 원래 키스가 이렇게 능숙했던가?" "키스는 상대방을 좋아하는 정도에 따라서 능숙해지기도 하고 서툴러지기도 하는 거야." "그런 거야?" "당연하지. 입을 맞댐으로서 '좋아해'를 몸으로 표현하는 거잖아." "……." "계속 이 체위로 하고 싶어? 아니라면 누워줬으면 하는데." "네가 위에서 움직이려고?" "왜, 못할 것 같아?" 아무리 반말을 써도 되는 상황이라지만 어린 시절 이후로 두 사람이 이토록 편하게 대화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다. 그래선지 그가 약간 당황한 듯한 기색을 보인다. 좋아, 지금이 기회다. 이틈에 주도권을 되찾는 거야. "서두르지 않아도 되니까 천천히 해." 아까 가감도 없이 거칠게 했던 사람이 누구였더라. 나도 나름 견록이 있는 여자이고, 이 정도는 문제 없이─. 문제 없이──. 아아, 어떡하지. 딱히 처음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전의 체위처럼 위로 올라온 건 오랜만이라서 아프다. 이대로는 그다지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움직여야겠지. "괜찮아?" 크윽, 네 눈엔 지금 내가 괜찮아 보이냐. 하지만 허리를 슬쩍 움직여보니 아픔 속에서 은근히 쾌감이 느껴진다. 그 쾌감에 의지해 행위를 계속 이어나간다. 머리가 점점 멍해지면서 몽롱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부끄러워서 입은 꾹 다물고 있었는데, 깨닫고 보면 어느새 내 입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신음이 마구 새어나간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는 '좋아해'라는 말까지 서슴없이 내뱉는다. "하… 하아… 하아……." 한차례 절정이 다가와 숨을 고른다. 좋아하는 남자의 가슴에 기대어 누워 있으니 그밖의 행복은 딱히 필요없다는 느낌이다. 여자에겐 역시 사랑이 제일인 걸까.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솔직히 나는 이 감각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 힘들면 변신술 풀어도 돼." "괜찮아… 아직 버틸 수 있어……." 쓰담쓰담─. 그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안타까운 듯이 내게 뺨을 부비적거린다. "그대로 가만히 있어. 나도 이제 슬슬 한계야." 이 남자, 이렇게 다정한 목소리도 낼 줄 아는구나. 그 동안은 왜 내지 않았던 거지. 그에게 자신의 달달함을 가르쳐주려고 했는데 도리어 내 가슴이 달달함에 젖어든다. 그의 팔이 허리와 등을 감싸오고 어깨에는 뜨거운 숨결이 떨어진다. 이제 더는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니 거짓말처럼 다시 쾌감이 느껴진다. "하아… 하아……." 점점 절정이 다가오면서 한 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한다. 맙소사, 믿을 수가 없다. 아까 바깥에 내어져서 쓸쓸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이번에는 이대로 끝까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따위, 정말 바보 같다. 애당초 이 인간은 어째서 아무런 보호 없이 그냥 해버린 거야. 얄미운 짓도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아까 좋아한다고 했던 말 전부 다 취소해버릴까보다. "하아… 하아… 하……." 아아, 정말… 얄미운데, 얄미워죽겠는데 어째서 좋아하게 되어버린 거지… 목소리는 왜 이렇게 달달해… 젠장… 내가 졌다……. 그렇잖아도 숨이 부족해서 괴로운데, 문득 따뜻한 손이 뺨을 감싸온다. 그리고 서로의 입술이 겹쳐진다. "음… 음음…!"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서 이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절정이 오는 순간에는 정말 죽을 것 같았는데 지나가고나니 더할나위 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하아… 하아… ……." "?" "실은 나도… 너한테 미움받았던 만큼… 네가 미웠거든…?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어… 단지 네가 손에 잡히지 않기 때문에 너를 쫓고 있는 것 아닐까……." "……." "근데… 어쩌다 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더라고…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서……." 그가 숨을 고르다 마른침을 삼키고는 아까처럼 내 머리에 뺨을 부비적거린다. 이런 애정표현에는 익숙해져 있지 않아서 그렇잖아도 심장이 빠르게 뛰어대는 와중에 가슴이 설렌다. "만약 네가 나 때문에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되면 어떡해…? 나… 넘어진 네 손을 한 번도 잡아주지 못했는데……." 그의 목소리 뿐만 아니라 그의 품에서, 그의 손에서, 따뜻한 체온과 함께 전해져온다. 말로는 전부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정까지. 예전에는 몰랐던 것을 적어도 지금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 마저 사라져버리면… 그때부턴 뭘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모르겠어… 무서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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