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은 고맙지만 난 선생의 것이 될 수 없어."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라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고, 예상 그대로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내 것이 될 수 없는 건 알겠는데. 어째서 귀여운 얼굴이 되는 거야. 내 눈이 이상한 건가? 사쿠라가 말했던 천사 필터라는 게 작동해서 언제나와 같은 무표정을 귀여워보이게 만든 건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 남자가 내 기분을 조금도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괜히 더 속이 쓰린다. 어차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의 쓸데없이 철벽 같은 마음도, 나른한 웃음처럼 꾸며진 말투도, 이제 와서 미워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 그래도 마침 한가했으니까, 가만히 있는 것이 괴로웠으니까, 그냥 말을 꺼내보았다. 농담처럼 가벼운 느낌으로. 따지고 보면 그는 농담에 농담으로 맞받아쳤을 뿐이지만─. 말하자면 이것은 새것의 스카치 테이프와 같다. 첫머리의 미끄러운 포장지가 농담이라면, 나머지 테이프 부분이 진심이다. 포장지를 떼어내면 그 다음부터 나올 것은 진심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테이프를 당겨 버리면 안 된다. 이쯤에서 그만두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다. 그저 감겨 있을 뿐이라면 적어도 망가질 일은 없지 않은가. 이따금씩 답답하다못해 괴로울 때도 있지만 참아야 한다. 누가 뭐래도 이 관계는 나 스스로가 선택한 것이니까. "난 선생 뿐만 아니라 누구의 것도 되지 않을 거야." "그것 참 위로가 되네요." 명실상부한 나쁜 남자. 그래도, 적어도 나는 그가 양다리를 걸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 처음 그와 관계를 가졌던 날, 술에 잔뜩 취해 있었기 때문에 잘 기억나지는 않아도 그가 먼저 나를 유혹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완전히 바람둥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었지만 그는 딱히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여자에게 똑같이 철벽 같다. 잘생긴 얼굴을 구태여 마스크로 꽁꽁 싸매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꼭 누군가의 것이 될 필요는 없잖아."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사람 마다 원하는 것이 다르죠.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어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 정착해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해요. 아시다시피 저는 후자고요." "이런 말 억울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있는 이상 선생에게 그런 일은 없어." '그러니까 포기해'라고, 그의 웃는 얼굴이 말하고 있다. 정말이지 흠 잡을 데가 없는 깔끔한 웃음이다. 마스크로 싸매고 있어도 가려지지 않는 그의 외모가 새삼스레 얄밉기 그지없다. 어쩌면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사귀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다른 남자 만나면 안 돼?'. 물론 나도 그러고 싶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굿바이하고 미련없이 이 남자를 떠날 것이다. 그러나 하타케 카카시, 그는 나뭇잎 마을의 영예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라고 칭송받은 것은 물론 암부의 후배들을 비롯해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있다. 그런 사람의 여자에게 집적거리면 그 순간부터 적들이 마구 불어날 텐데, 그 정도의 담력을 가진 남자가 이 좁은 마을에 과연 몇이나 될까. 설령 있다고 해도 나를 그렇게까지 갈망할지는 미지수다. 크윽, 내가 바보지. 내가 미쳤지. 어떻게 골라도 이런 사람을 골라서 불미스런 관계를 시작했을까. 처음에는 그저 하룻밤 술기운을 빌어 몸을 섞은 것 뿐이었는데, 깨닫고보면 나는 그러한 관계가 주는 쾌락과 편리함에 완전히 길들여져 있었다. 차라리 나도 그때 이 남자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탈피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심지어 진심이 되어 버리다니, 최악이다. "하타케 상닌께선 제가 불행하든 말든 상관없습니까?" "지금은 그렇다고 볼 수 있겠네." 내 갑작스런 질문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태연하게 웃는 그의 얼굴을,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바라본다. "말했잖아, 난 기다리고 있다고. 때가 되면 더는 이런 일들로 고민하지 않게 될 거야." "당신은… 내가 당신의 마음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는 걸 기다리시는 거예요?" "썩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그래, 맞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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