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카카시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짝짝짝.

 마을의 복원작업은 여전히 진행중. 근래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에 집안일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물론 어렵게 얻어낸 휴가를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곰팡이 군단과의 전투에 소요되는 시간만 반나절 이상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 만하지 않을까.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저도 모르게 우쭐해져서는 허리에 팔짱을 꼈다.

 "기분이 어때?"

 "아직도 현관에 들어서던 순간의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어. 도착하기 전까지 뭐부터 손대야 할까 고민하고 있었거든."

 "방금 퇴원한 사람을 부려먹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다시 한 번 실감했어. 청소도 빨래도 결국 내 손길이 닿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하?"

 "나는 네 '노력'에 감동한 거야. 봐, 이 먼지. 이 얼룩. 혼자일 때도 둘일 때만큼 깨끗해야지."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그럼 된 거 아닌가. 하지만 머쓱함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흠흠. 저녁 준비할까?"

 "그래, 재료는 사다 놨지?"

 "아, 내가 할게. 앉아 있어."

 "괜찮아. 요리 정도는 해."

 아무리 뛰어난 살림꾼이라도 가끔은 보살핌이 필요하달까, 카카시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입원해 있는 동안 혼자 있는 내가 어지간히 걱정이었나 보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에 진절머리난다는 듯 손사래치며 주방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나도 할 수 있는데……."

 혼낼 거 같으면 내가 자립심을 키울 수 있게 협조해달라구요. 직접 하지 않으면 만족 못하는 저 극성맞은 성격도 문제라고 본다. 굳이 내 보호자가 되려 하지 않아도… 아니, 카카시가 저렇게 된 데에는 내 책임이 큰가.

 (…)

 "아, 배불러. 잘 먹었습니다-."

 "소박한 차림상이었는데 다행이다."

 "사실 너 없는 동안 밥은 거의 안 해 먹었어. 대부분 컵라면으로 떼웠지. 덕분에 나루토의 헝그리 정신이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느꼈달까… 그런대로 뜻깊은 시간이었지만, 집밥이 얼마나 그리웠다구. 역시 네 요리가 제일 든든해."

 "후후후. 좋아, 좋아. 그럼 얼른 설겆이하고, 또…"

"잠ㄲ, 이번에야말로 내가 할게!!! 가만히 앉아 있어!!!"

 내 예상을 뛰어넘어, 식사가 끝난 뒤 카카시는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와 신이 난 듯 보였다. '청소부터 할까? 빨래부터 할까?'라고 얼굴에 쓰여 있는 그를 강제로 소파에 앉히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 나 엉덩이에 쥐날 것 같아."

 "다시 입원하게 될 바엔 쥐나는 게 낫지."

 "일하고 싶어. 뭐라도 좋으니까 일거리를 줘."

 "이제 약 먹고 들어가서 코 자는 게 네 일이야!"

 "안 돼, 먹으면 졸리잖아! 안 먹을래! 자기 싫어!"

 처절하구나. 거기서 알게 됐다. 카카시는 카카시대로 일이 절실한 상태였다. 뭐랄까, 일이라기 보다는 '활동'에 대한 강한 집념이 느껴졌다.

 아무리 말려도 막무가내여서 반대로 내가 아이를 다루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야, 병원에 있을 때 일이라고는 자는 것밖에 없으니. 지겹기도 하겠지.

 "이럴 거야?"

 카카시는 쿠션을 끌어안은 채 내가 약을 먹일라치면 제 입을 가려서 완강히 거부의사를 보였다. 그의 불안한 시선이 내 손 안의 약을 향해 있었다.

 소염제, 진통제, 그리고 몸이 회복되는 시간… '숙면'을 방해받지 않기 위한 수면제 등등. 강한 것은 아니지만 당연히 먹으면 졸린다.

 "아."

 때아닌 공방전을 펼치느라 깜빡 잊고 있었다.

 "거기 그대로 있어."

 나는 주섬주섬 선물을 챙겨들고 나와서 반대쪽을 향해 앉아 있는 카카시에게 불쑥 내밀었다.

 "자."

 "환자에게 약을 강요하지 마시죠."

 "그래, 억지로 안 먹일게. 이거 받아."

 남자에게 먹힐 만한 선물을 제대로 골랐는가,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자신 없었다. 단지 내가 꽃을 떠올렸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기억 저편에 아련한 추억 하나가 있다.

 "아침에 병원으로 보내려다 그만뒀어. 나는 직접 받는 게 더 기쁘거든."

"직접……."

 "너도 그렇지? 하타케 군."

 "……."

 17살 때, 자신의 퇴원 날이었다. 누군가 내게 예쁜 꽃다발을 보냈다. 내 주변 사람들 모두 가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크, 아련하다. 이러한 감정 변화를 알아차린 듯 카카시의 색깔 없는 표정도 여릿하게나마 그리운 빛을 띠었다.

 "민망한걸. 하지만 내 진정성을 판단하기 전에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 줘. 기껏 선물해도 욕만 얻어먹을 게 뻔하다면 제3자의 힘을 빌려도 이상할 게 없잖아."

 이제 와서는 웃음을 자아내는 얘기지만 당시에는 그런 하타케 군이 정말 미웠다. 하다못해 카드에 이름이라도 적어 놨으면… 아니, 그래 봤자 어차피 고맙다는 말 따위를 할 기회는 없었던가.

 "그치만 이렇게 '퇴원 축하해'라는 기분 좋은 말도 본인에게 들려줄 수 있잖아. 혹시 알아, 두근두근할지? 시기가 시기였던 만큼 어차피 잃을 것도 없으니 시도 정도는 해 볼 수 있지. 하타케 군은 겁쟁이야!"

 "거기까지만 해. 네 입에서 그런 말들이 나오면 무지 괴로우니까. 그래, 기회라면 얼마든지 있었는데 바보처럼 흘려보낸 건 나야. 인정할게. 나한테 용기가 부족했어."

 잠깐, 잠깐, '기회라면 얼마든지'? 카카시의 그 말에 여러 가지 의미로 심쿵했다. 당신… 그때… 혹시… 병문안 왔었어…? 나 몰래? 몇 번이나?!

 인기척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물론 암부에 있을 때니까 임무 중에 마주친 사람에게 정체를 밝히면 안 된다는 룰은 알고 있었지만.

 병원에서 깨어나던 그날부터 기다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급해졌다. '나타나서 무슨 변명이라도 해봐'라고… 벼르기만 하다가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퇴원하는 날이 되었으니까.

 내가 두려웠던 만큼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꽃다발이 가진 의미는 '허무'의 끝자락에 따라온 작은 희망이었다. 맞아, 그 녀석도 나를…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카카시의 팔뚝을 짝 때렸다.

 "대체 어디서 훔쳐보고 있었어?"

 "창문 밖의 나무 위에서… 그리고……."

 "그리고?"

 "가끔 의료반 사람으로 변신… 아얏! 아, 아파! 아파!"

 알고 있다. 담당의인 내가 모를 리 없다. 그러니까 보자기스매싱 정도로 봐주는 거다.

 어린 내가 겪었던 아픔, 실망, 불안,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끝까지 했으면서! 심지어 안에다! 으으으으!

 "나는… 아기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하고… 흑……."

 "미안… 나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뭐?!"

 "아니… 나중에… 저기… 네가 아무 조치도 안 하길래……."

 죽어라 인간아. 이번에야말로 가감 없이 때렸다. 꽃다발이 망가지지 않게 필사적으로 지키고 있는 꼴을 보니 더 얄미웠다.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제 풀에 지쳐 쓰러지는 나를 으윽 신음하면서도 받아냈다.

 부둥켜 안고 누워 있으니 등 위로 내려앉은 꽃다발에서 짙은 향기가 풍겨왔다. 오호라, 내 아픈 과거를 이런 식으로 덮어 버리겠단 거지. 도리어 울컥해서 멈추지 않고 계속 응징을 가했다.

 "겨우 17살이었잖아! 나 혼자 그런… 어떻게 해! 난 너랑 다르단 말야… 무서웠다고……."

 "그렇구나… 맞네… 그렇네… 혼자서 되게 무서웠겠다… 앞으로 옆에 있어 줄게……."

 "(킁)"

 "그러니까… 저기… 다음에는 의료반 선배가 아니라… 내 진짜 모습으로……."

 퍽! 퍽! 때려도 아랑곳 하지 않고, 카카시는 내 몸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분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안심되어서, 기분 좋아서, 그것만으로 다 잊은 듯 기대어 버렸다.

 쓰담쓰담. 머리를 만져 주는 손이 따뜻했다.

 "좋은 냄새."

 그가 내 머리카락에 코를 가까이 대며 말했다.

 "내가 아니라 꽃에서 나는 냄새야. 멍청아."

 "당신을 통해 떠올리는 중이니까 그냥 넘어가."

 "그러고 보니… 그때도 똑같은… 정말이지……."

 어째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의료반 새내기 시절부터 믿고 따랐던 쿠노이치였다.

 그녀만은 비밀을 지켜 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덧붙여 말하자면, 나는 얘기하는 내내 선물받은 꽃다발을 꼭 쥐고 있었다.

 '좋은 냄새네. 누구한테 받았는지 물어도 돼?'

 '그게… 저도 잘… 아니… 알 것 같기도 한데요… 저… 그러니까… 보, 보나마나 가이일 거예요! 지금 임무중이긴 하지만, 그렇잖아요, 남자친구 외에는… 새, 새, 생각할 수 없고… 그리고… 그 녀석… 굉장히 상냥하니까요… 에헤헷…….'

 그녀는 불안해하는 나를 달래고, 위로하고, 괜찮다고 말하며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 그런 다음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망설임 없는 그 행동에 도리어 그녀가 경직되었다. 침묵이 흐르는 짧은 시간 동안 셀 수 없이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아… 우리 … 마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내가 보낸 꽃이라는 거… 그렇지…? 분명히 기뻐하고 있었는데… 웃고 있었는데……."

 "……."

 "그때도 이렇게 가까이서… 그런데도 알아보지 못했어… 응… 맞아…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질투에 눈이 멀었던 거지… 미안… 정말 미안해……."

 "……."

 그때의 원한은 두고두고 갚아 주겠노라 다짐했으니 지금도 원망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단지 사과는 받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후회된다는 뜻으로 들릴 것 같아서.

 차라리 아기가 생기길 바랐다고 말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됐어, 그만하고 약 먹어."

 "내가 빨리 잤으면 좋겠어…?"

 "쓸데없는 소리는… 슬슬 반감기가 됐는데. 안 아파?"

 "아래가… 좀……."

 아저씨의 농염한 말투에 담긴 의미는 그가 내게 의도적으로 하반신을 밀착시킴과 동시에 분명해졌다. 내게 사과할 때만 해도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있었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그렇다 해도 부정할 수 없다. 피부로 느껴지고 있으니까. 내 다리 사이에서 명백히 강제나 다름없는 제안을 해 왔다. 도대체 어느 쪽에 미안했던 거냐.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냐 아니면 지금 닿아 있는 이거냐.

 "네가 내 품에 뛰어들었잖아……."

 "하아……."

 어쨌든 거기부터는 익숙한 전개였기에 심호흡 한 번으로 마음을 다잡은 뒤 일어나 앉았다. 무게중심이 아래로 향하며 카카시가 괴로운 듯 작게 신음했다. 묵직한 압박감을 즐기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디까지 원해?"

 "끝까지는 무리겠지?"

 말하면 뭐해. 알면서 묻지 마. 어차피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거든. 내 앞에서 불쌍한 표정 지어 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이 말이야.

 누구나 약은 먹기 싫겠지. 그래도 처방해 준 건 다 먹어. 잔소리도 그만 듣고 싶겠지. 그래도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제발 부탁이니까.

 "진심으로 화내기 전 얼굴이네. 하하하핫."

 퇴원은 완치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당연한 얘기다. 조금 덜 아프게 되었다고 방심했다간… 이런 생각은 하면 안 되지만, 어마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번에는, 뭐, 그래, 솔직히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약해졌다. 딱 거기까지여야 한다. 이번에도 내가 양보하나 봐라.

 "내일부터 말 잘 들을게. 응?"

 진작 그럴 것이지. -라고 생각하자 마자, 내 마음을 읽은 카카시가 웃으며 다가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걸 애교라 말하기도 뭐하지만 카카시에게는 나름 귀여운 짓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보통 반대니까.

 아랫쪽은 사양 없으면서 일반적인 스킨십에는 이상하게 소극적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애가 탄다.

 "끝까지라는 건 농담이었다고 믿겠어."

 "농담? 그랬다면 키스도 하지 않았을걸."

 거기서 나는 깨달았다. 말 그대로 스킨십에 소극적인 카카시가 먼저 키스할 때는 거의 90% 이상, '끝까지'라는 전개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이를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나, 진지해. ."

 그래서 기어코 하겠다는 거지. 내가 화내든 때리든 개의치 않는다면 이쪽도 그만한 각오는 되어 있다.

 다만 카카시가 의도했든 안 했든 이미 내게 불리한 싸움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입발린 소리일 게 뻔한 말이라 해도 믿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그래…

 '단 한 순간도 너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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