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시 : (날씨가 따뜻해서 잠깐 벤치에 앉아 있다 갈 생각이었는데… 오랜만에 꺼내든 러브러브 바이올런스에 무심코 빠져들었군. 이제 조금 있으면 노을이 지기 시작하겠는걸. 저녁 식사 준비해야 하니까 그만 돌아가야겠다.)

 ??? : 공원에서 대놓고 야한 소설이라니… 귀여운 아저씨잖아. 20에 어때?

 카카시 : (이 여자애는 뭐지… 마을에서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등에 칼을 메고 있지만 닌자는 아니야. 겨우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데… 이거야 원.)

 카카시 : 얘야, 사정은 모르겠지만 이래 봬도 아저씨는 선량한 시민이란다.

 ??? : 쳇, 그렇게 나오겠단 거지. 좋아, 25.

 카카시 : (어째서 액수가 더 오르는 거야… 설마…)

 ??? : 이봐, 너무 비싸게 굴지 말라고. 30이면 하겠어?

 카카시 : 저기 말이다… 혹시… 네가 대가를 지불하는 거니…?

 ??? : 당연하잖아. 나 말고 누가 하겠어. 아니면 뭐야, 반대로 싸구려취급 받는 걸 즐기는 타입인가? 미안하지만 그 쪽 취향에 맞춰줄 생각은 없어. 할 거야, 말 거야, 빨랑 결정해. 오늘따라 별 더러운 꼴을 많이 봐서 지금 무지하게 지쳐 있다고.

 카카시 : (더러운 꼴이라는 게 옷에 묻은 피를 말하는 건가… 여러 가지로 무서운 여자애 같네… 그냥 조용히 일어나는 편이 좋을까… 마을 안에서 매춘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모른척할 수는… 이럴 때 라면 어떻게 하려나… 역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 : 마스크 좀 내려봐. 미남이라면 더 올려줄 용의가 있으니 말야. 오늘은 수입도 짭잘한데… 에이, 기분이다! 40! 더는 불만 없겠지? 자, 내 숙소로 가자ㄱ…

 카카시 : 사랑을 돈으로 사는 행위는 용서받지 못할 범죄란다. 화류가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허용되고 있지만, 언젠가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야 할 악습 중 하나야.

 ??? : 흥, 이제 보니 샌님이구만. 교과서 같은 소리 집어치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망할 세상에서 돈, 성욕, 살인, 이 3가지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아. 인간은 이렇게 살다 얼마 못 가 전부 뒈져버릴 거고, 난 그보다 일찍 죽겠지. 그러니까 이래라 저래라 내게 강요하지 말라고. 나도 당신에게 강요는 안 해. 하기 싫다면 가겠어.

 카카시 : 잠깐, 기다려. 아직 앞날이 창창한데 이리도 비뚤어져서야.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타협하는 법을 배우는 게 인간이다. 이렇게 된 이상 널 더욱 내버려둘 수 없겠어.

 ??? : 해보자는 거야?!(스르릉)

 카카시 : 워, 워… 그래, 화나게 해서 미안하다. 일단 그 보기만 해도 살벌한 무기는 넣어둬. 으음, 밥 먹었니? 나는 누군가에게 몸을 내어줘야 할 정도로 복잡한 사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서. 미안, 대신 한 턱 낼게.

 ??? : 하아? 거절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하는 일에 다시 쓸데없는 태클을 걸었다간 목을 따버리겠어.

 카카시 : (아이고, 난관이구만… 널 어찌 하면 좋을까… 누군가 믿을 만한 어른이 옆에 있어 준다면 좋겠는데…….)

 (…)

 ??? : …….

 카카시 : 안 먹고 뭐해?

 ??? : 아저씨 같은 미남… TV가 아닌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야…;;

 카카시 :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나 더 올려줄 거니?(후루룩)

 ??? : 이제 됐어… 나는… 너무 잘생겨도… 별로… 부담스러워서…;;;

 카카시 : 완전히 전의를 상실해버렸네. 좋아, 그럼 아저씨가 하는 말 들을래?

 ??? : 들어보나마나 귀찮은 잔소리겠지만 꽃구경하는 셈치고 들어주지.

 카카시 : 너무 뜨거운 시선을 받아도 곤란한데. 아저씨, 임자 있거든.(우물우물)

 ??? : 뭐? 그런 건 빨리 말해. 나도 유부남은 안 건드려. 저기 창녀 같이 생긴 새끼들이라면 모를까, 한 집의 가장이라면 함부로 할 수 없지.

 카카시 : ㅊ…켁! 케헥! 그 전에, 함부로 남에게 삿대질 하지 마! 함부로 말하지도 말고! 다행히 못 들은 것 같네…;; 어휴…;;;

 ??? : 무얼 쫄고 있어? 이쪽에 불만이 있다면 누구든지 목을 따버리면 그만…

 카카시 : 워, 워, 워…;; 무슨 황소도 아니고 껏하면 들이받으려고 그래…?;;;

 ??? : 닌자마을이라 그런지 창녀 새끼들만 득실거리네. 어디 귀여운 아저씨는 없나? 쳇!

 카카시 : (나이든 남자… 그래, 아버지 쪽에 그나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야. 구태여 아저씨를 사려는 것부터… 아저씨인 내가 말하기 뭐하지만, 이상했어. 여기서부터 파고들기 시작하면 되겠군.)

 (…)

 퇴근길에 까페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저녁 식사까지 여유가 있어서 조각 케이크나 먹고 갈까 했는데, 무심코 눌러앉아서 여러 가지로 주문해 버렸다.

 요즘 잘 먹어서 얼굴에 윤기가 흐른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건강해지는 거야 더할나위 없이 기쁜 일이지만 슬슬 몸무게를 걱정해야 할 때다. 안 그래도 일과 학업의 이중고를 겪느라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은데. 에휴.

 까페 근처의 공원은 다른 곳들에 비해 크기가 작지만 산책하다 잠시 앉을 곳을 찾기에 좋은 곳이다. 저녁 식사 전에 소화시켜 둘 겸 한바퀴 빙 돌아서 갈까.

 산책길로 들어서자 기다란 벤치에 앉아 있는 남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왠지 낯익은 남자가 여자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아니나 다를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자의 다리에 못된 손이! 아아, 생각났다! 너, 치한놈!

 "이번에야말로 안 놓친다!"

 "우, 우와앗…! 죄송합니다…!"

 남자가 방금 전 내 외침을 듣고 놀라서 굳어버렸다. 저번처럼 도망가지도 못하고 바로 용서를 구한다. 가까이서 보니 20대 후반 ~ 30대 초반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아저씨다.

 "죄,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뭐야…!"

 여자는 가벼운 따귀로 응수하더니 일어나서 가버렸다. 여자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아저씨는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일단 반성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한테까지 너무 열심히 사과해서 도리어 내 쪽이 당혹스럽다. 피해자는 분명 아까 그 여자였는데, 이제는 아저씨가 더 불쌍해 보인다.

 "저, 저… 그만 가도 될까요…?"

 "잠깐, 아저씨. 거기 앉아 봐요."

 "에… 아… 네… 죄송합니다……."

 "사과는 됐구요. 어째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예요? 만지고 싶으면 제대로 연애를 시작해서 애인에게 허락받으면 되잖아요. 설마 이미 아내가 있다든지, 자식들까지 있다든지, 그런 건 아니죠?"

 "아, 아니에요… 저는… 결혼은커녕 연애라는 것도 해본 적 없는걸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주선을 받았지만… 성숙한 여성 분과 똑바로 마주앉게 되면 너무 부끄러워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그치만 궁금하니까… 알고는 싶고……."

 아까부터 이쪽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긴장돼서였구만. 물론 무서운 것도 있겠지만, 문득 의학적인 호기심이 생겼다. 이것이 기노포비아(여성공포증)라고 하는 것인가.

 그동안 책에서만 봤지 실제 사례는 처음 본다. 아직 진단을 내리기에는 이르니까 좀 더 얘기를 나눠볼까. 문제의 못된 손만 빼고 보면 그리 나쁜 사람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공원에서 여자의 다리를 만질 필요가 있어요?"

 "아까 그 분이 신고 계셨던 물방울 무늬의 스타킹이 어떤 느낌일까 너무 궁금해서… 만지고 싶었다기보단… 사, 살짝… 건드려 보기만 할 생각이었어요… 지난번에 '그 스타킹 제게 팔아 주시겠습니까'라고 용기 내서 물어봤지만… 뺨을 맞아서… 죄송합니다……."

 확실히 그건 그것대로 불쾌할 것 같네. 과연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바보 같은 짓이다.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온다.

 "방금 얘기한 물방울 무늬 스타킹 말인데요, 제가 파는 곳을 알고 있어요. 지난번에 장을 보다가 가게 안에 진열되어 있는 걸 봤거든요. 그렇게 궁금하다면 가서 사오는 게 어때요? 그거라면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 정말 보셨습니까…? 실례지만, 어느 가게인지 가르쳐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장터 같은 곳에 쉽게 나갈 수 없어서… 뭔가 사기 위해서는 일단 하수인을 보내야 하거든요…"

 하수인이라니, 코노하마루네 가정방문을 갔을 때 이후로는 처음 듣는 단어다. 사루토비는 불의 나라에 뿌리가 깊은 일족이라 현재에 이르러서는 휴우가처럼 반귀족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 해도 지금까지 전통을 고수하는 건 성에 사는 귀족들 정도인데, 아저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풀거리는 전통옷을 입고 있었다. 언뜻 봐도 상당히 귀티가 흐르는 게… 설마…?

 "아저씨, 이름이 뭐예요?"

 "비밀이니까 다른 사람에게 말하시면 안 돼요… 저는…"

 그의 대답을 듣고 얼음이 된 상태로 10초간 정지되어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아저씨의 성씨는 분명 영주 일가의 방계다. 말 그대로 귀족… 심지어 '로열 패밀리'다.

 설마가 그 설마일 줄이야. 알았다면 절대 위협적으로 쫓아간다든지, 쇠파이프를 꺼내든다든지, 하여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카게 님조차 반드시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영주님, 그런 분을 등에 업고 계신 분께 나 따위가 감히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그나마 더 큰 실수 하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후덜덜.

 "지금까지 아저씨랑 선봤던 상대는 전부 굉장한 분들이었겠네요.(헛기침)"

 "뭐 그렇죠… 하지만 무서워서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어요… 특히 귀족 여성들은 좀…"

 하나같이 콧대 높은 여자들이니까 더 어렵게 느껴졌겠지.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어떡하지, 이쯤에서 슬슬 일어날까.

 아니,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아저씨의 기노포비아 치료를 도와주면, 영주에게까지 얘기가 전해진다면, 그걸 계기로 우리 마을에도 좋은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아는가.

 보아하니 잠깐 휴양차 놀러온 것 같은데. 놓칠 수 없지.

 "그렇게 틀에 맞춰진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성'이라는 당연한 존재에도 공포심이 생기는 거예요. 오늘부터는 아저씨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경험해보도록 하세요. 정신과는 제 분야가 아니지만, 의사로서 하는 충고예요."

 "의사셨군요… 아, 알겠습니다… 당신을 믿어 보겠어요…! 마침 오늘은 몰래 나왔으니까… 이참에, 실례가 안 된다면 같이 장터에 가주시겠습니까…? 난생 처음이라 혼자서는 길을 잃을지도…"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자, 어서 물방울 무늬 스타킹을 사러 갑시다!"

 "도,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머잖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바로 그거입니다. 저도 딱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자신은 몹시 탐욕적으로 느껴지지만 어차피 더는 순수한 어린애가 아니다. 이럴 때는 속물이 되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어른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정상이라 믿을 테다.

 (…)

 귀족이라면 역시 어려서부터 온실초처럼 자라는 걸까. 나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저씨와 돌아다니며 그가 살면서 배운 것들이 책상 앞에서 보고 들은 고고한 지식들뿐이라는 점만은 분명해졌다.

 하나같이 처음 보는 거, 처음 먹는 거… 그래선지 일일이 신기해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은근히… 뭐랄까, 이러면 안 되지만 '귀엽다'고 생각했다.

 물방울 무늬 스타킹 같은 건 어디에도 쓸모가 없을 텐데 그에겐 단지 손에 넣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나보다. 뭐 대단한 물건이라도 되는 양 꼭 안고 있다. 여자를 무서워하니까 아마 선물도 못하겠지.

 이제 어떡할까.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다. 집사람이 걱정할 테니 일단은 아저씨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덕분에 좋은 구경했네. 그치만 말이 너무 길어. 이제 금방 캄캄해져서 혼자 숙소로 돌아가야 할 판이라고.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내게 필요한 녀석과 창녀놈들을 구분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아무에게나 대고 창녀 같은 말을 쓰면 안 된다고… 뭐가 됐든지 전부 그만두라고 했잖아. '새끼'에서 '놈'으로 나름 변화를 준 건 알겠는데 말야. 아까 내 말 듣긴 한 거니?"

 애당초 녀+놈을 같이 쓰는 게 이상하지. 멀리서부터 대화가 들려와 누구보다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임을 깨달았다. 맞은편에서 카카시가 어떤 여자애와 나란히 걸어 오고 있다.

 처음에는 제자인 줄 알았는데 저런 아이는 마을에서 마주친 기억이 없다. 아저씨의 것과 조금 다르지만 현대식으로 개량된 불의 나라 전통옷을 걸쳤으니 아마도 영지에서 왔을 것이다.

 "카카시, 무슨 일이야?"

 "……."

 어쩐지 피곤한 표정에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우연히 청소년의 매춘 현장을 목격하게 되어서 그냥 지나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고집을 꺾지 않으니 그냥 보낼 수도 없고 한 마디로 곤란한 상황. 카카시도 한때나마 아이들의 선생님이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한 가지, 베테랑 교사인 나로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돈을 내는 사람이 반대쪽… 즉, 입이 거친 '스이'라는 이름의 여자애는 남자를 사려고 했던 거다.

 "저기, 스이는 혼자 여행중인 거지? 괜찮은 거야? 부모님께서 걱정 안 하셔?"

 "우리 아빠는 작년에 죽었어. 그러니까 이제 내게 잔소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어. 여기 당신의 남편이 마지막일 거야. 보통은 목을 따버리니까."

 그럼 엄마는…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마 그녀도 세상을 떠난 거겠지. 카카시에게 권유했다가 깔끔하게 포기한 이유는 아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래도 나름의 원칙은 있는 거구나.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어쨌든 스이도 문제의 못된 버릇만 빼면 그리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그냥 아빠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뿐일지도 모른다.

 어쩐지 누구와 딱 들어맞는 이 느낌… 하지만 아저씨는 아직 여자에게 말도 잘 못 거는데…….

 "아무리 그래도 혼자 여행은 위험해요."

 영지의 외곽은 치안이 안 좋아서 저도 호위를 많이 데리고 왔거든요. -라고 덧붙이며 사람좋게 웃는 아저씨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해 보니 아까부터 아저씨는 '성숙한 여자'가 무섭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직 어린 여자애는 괜찮은 거다. 꼬맹이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째서 진작 그 부분을 물어보지 않았지.

 "아, 아저씨는 뭐야? 무얼 처음 보는 사람에게 헤실헤실 웃고 있어?"

 스이가 방금 살짝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는데. 기분 탓이었나. 아니, 카카시도 느꼈다. 이번에도 아저씨를 돈으로 사려고 하면 어떻게 말려야 하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의외로 두 사람은 평화로운 분위기다. 어느덧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어서 묘하게 로맨틱한 것 같기도 하다.

 "카카시, 잠깐 귀 좀 대봐."

 "응?"

 속닥속닥. 속닥속닥. 역시 천재는 다르다니까. 짧은 시간에 어쩜 그리도 내 마음을 딱 이해하는지. 가출 청소년을 돕는 것은 교사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잘 하면 이참에 귀족을 우리 마을에 묶어둘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고, 이것이 바로 인생의 경륜 아니겠는가.

 "아저씨, 이름은?"

 "나는 '소류'라고 해요. 그리고 성은… 나중에 말해줄게요."

 "옛날 고릿적 왕족 같은 이름이구만… 하지만 뭐, 괜찮아. 그냥 '류'라고 부르면 되지. 부, 불만 없겠지? 있다면 목을… (헛기침)하지는 않겠지만 조심하라고. 아저씨가 귀여워서 봐주는 거야."

 "엣… 고, 고마워요. 그렇지만 나 같은 것보다 스이 양이 훨씬 대단해요. 여성의 몸으로 용병 일을 하다니, 나는 사내인데도 호위들 없인 아무것도 못해요…  선생님과 약속은 했지만 앞으로 혼자서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이쯤에서 슬쩍 끼어들어 볼까.

 "그럼 스이 양이 소류 씨의 친구가 되어주는 건 어때?"

 "친구라니, 난 그런 거 필요없… 아, 아니, 나쁘지않네."

 "와아, 우리 오늘부터 친구인 거예요? 기뻐요. 그도 그럴 것이 성밖의 사람과 우정을 쌓는 건 처음… 아, 아니, 방금 건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하하하…;;;(긁적긁적)"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좋아하긴. 정말 귀여운 아저씨잖아, 젠장.(발그레)"

 살짝 거들었을 뿐인데 알아서 잘 하고 있구만. 남은 문제는─

 "하지만 알다시피 나는 용병이니까, 한곳에 오래 머물 수가…"

 생각하기 무섭게 이번에는 카카시가 유연하게 끼어든다.

 "스이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줄곧 용병 일을 하면서 여기저기 유랑했던 거지? 한곳에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이참에 나뭇잎의 주민이 되어서 닌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건 어때? 수속 밟기는 와이프가 도와줄 거고, 나머지는… 굳이 내 도움을 받지 않아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이미 혼자서 장정 20명을 깔끔하게 해치울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당신들… 진짜 좋은 사람들이구만. 아무 조건 없이 이렇게까지 타인을 도우려 하다니."

 물론 아무 조건 없이도 도우려고 했을 거예요. 다만 굴러들어온 복은 걷어차지 않는다는 진리에 순응하는 거지요.

 "닌자라니, 괜찮겠어요? 스이 양이 원한다면 내 별장에 머무를 수 있게 해줄게요. 방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하지만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기…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친구로서… 걱정되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나는 약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방을 내어준다니 거기에 대한 호의는 고맙게 받지. 그래, 아저씨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몸이나 깨끗이 씻고 기다ㄹ…"

 "워, 워, 워…! 스이야…! 아직 그런 얘기를 꺼내긴 이르단다…!"

 카카시가 서둘러 만류하긴 했지만 걱정이다. 어른과 아이의 분명한 경계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다행히 아저씨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킁킁 자기 옷의 냄새를 맡는 걸 보니 자기랑 같이 살려면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나 보다.

 하기사, 여자애가 그런 뜻으로 말을 꺼냈다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겠지.

 (…)

 세상은 설마의 연속이라더니, 놀라고 당황하기 일쑤였지만 그런대로 의미있는 하루였다. 카카시와 노을진 거리를 걸으며 한껏 기지개를 펴고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온다. 집으로 돌아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갔다가 포근한 이불속에서 푹 자고 싶다.

 "스이가 정말 닌자들의 일을 무리없이 해낼 수 있을까요? 그래도 여자앤데."

 "당신도 아까 느끼지 않았어? 이 바닥에 오래 있다보면 칼 잡는 폼만 봐도 감이 오잖아. 물론 아까 몇 번인가 테스트를 해봤지. 빈틈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반사신경이 상당히 단련되어 있더라고. 어쩌면 당신에게 좋은 부하가 될지도 모르지. 나는 조금 봐줬으면 좋겠어. 아저씨 외에는 전부 창… 같은 것으로 보고 있잖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도무지 답이 안 나와."

 "확실히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교정이 필요할 것 같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싫지 않았어요. 싫어도 참고, 화나도 참고, 평생 그렇게 눈치만 보며 지내왔는데… 적어도 스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잖아요."

 "아서라, 이상한 습관에 물들지 말아줘. 뭐, 소류 씨가 있다면 앞으로 예의범절이라든지… 조금은 얌전해질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 두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당신도 아까 봤잖아, 호흡이 아주 척척 맞던데."

 마을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출신성분 조사가 상당히 까다로우니까. 그것이 앞으로 내가 도와야 할 일이기도 하다.

 카카시는 스이의 능력을 이미 중급 이상… 상급을 노려도 무방할 정도로 보고 있다. 잘 다듬으면 어엿한 닌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딱 만나게 되다니. 나와 카카시가 해낸 일이라지만 처음부터 두 사람에게 인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이는 물방울 무늬 스타킹을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하질 않나(나중에 아마도 훨씬 비싼 것들을 받게 되겠지…), 하여간 러브러브한 분위기가 되어서, 이쪽은 엑스트라 신세가 되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막힌 우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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