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 이렇게 보면 교원이 전보다 굉장히 환해졌지. 이제 전지 작업도 다 끝난 걸까. 오래 걸렸네."

 "그러네. 부지가 넓어서 관리하기 쉽지 않겠다. 내가 처음 왔을 때도 몇몇 사람이 가지를 치고 있었어."

 "시작은 내가 오기 전부터 했을걸. 여기는 진짜 어디까지가 산이고 인가인지 모를 정도로 엄청 크잖아."

 "맞다, 이것도 스즈카한테 들은 얘기인데. 주술사들은 지대나 지형 같은 커다란 부분부터 나무의 크기, 나뭇잎의 무성함 같은 작은 부분까지 영향을 받는대. 애초에 주력이란 힘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변하는 거라고 하더라."

 "내가 오컬트 부였을 때 들었던 얘기랑 비슷한 거 같아. 어떤 곳에는 악독한 기운 같은 게 흐르고 있다던가. 왜, 있잖아. 귀신이 나타나고 물건이 혼자 움직이고 그런 거. 뭐, 이런 데서 전지도 안 하면 캄캄하고 무서울 거 같긴 해."

 "근데, 장소만이 아냐. 그 환경 안에 사람과 주령도 들어가. 특히 주력이 강한 주술사나 주령 말이야. 스쿠나 씨처럼 강력한 주령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 어떤 자극제가 돼. 그리고 주술사는 신체나 심리적 상태도 중요해."

 "왠지 좀 어렵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이해는 되는데, 그래서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스즈카도 딱히 정해진 답은 없다고 했어. 그냥 고사성어를 하나 말해 줬는데 그게 허실생백(虛室生白)이야. 방을 비우면 그 틈으로 빛이 들어와 환해진다는 뜻이래. 그리고 이기지 못하는 술은 취하기 전에 쏟아 버린다 했던가."

 "결국 스즈카 쌤은 모든 게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말씀하신 것 같은데. 나무를 전지하는 거랑 비슷하구나. 웃자란 가지를 잘라 빛이나 바람이 통하게 하는 것처럼. 그래, 왠지 '통하게 한다'는 게 제일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

 "맞아, 맞아. 주령은 뭔가에 얽매여 있는⋯⋯ 속박된 거니까, 그걸 통하게 하는 일을 불제라 하는 거 아닐까. 그런데 어째서 주술사가 저주 때문에 주령이 되어 버리는 거지. 왜 스즈카가 주술사를 보고 미쳤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어."

 "으음. 주술사와 주령이 다르다 해도 어쨌든 주력은 주력이잖아. 주령을 이기려면 그것보다 더 강한 주력이 필요한 거잖아. 부정적인 감정이든 뭐든 동력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그만큼 마음에 빈자리를 둬야 하는 거야. 어때."

 "알 것도 같아. 헤헤헤."

 이타도리와 둘이서 얘기하니 혼자 생각할 때보다 상쾌한 것 같다. 말하면서도 아직은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래서 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보면 오히려 알기 쉬워서 모든 게 단순하고 명쾌해진다.

 "."

 "응?"

 "혹시, 기억나? 처음 산책하다가 마주쳤을 때. 내가 너한테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고 했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게도 아직 선명한 기억이다. 우연히 마주쳤던 것이 그 후에 그와 자주 산책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어쩐지 중요한 얘기인 듯해서 다소곳이 경청했다. 이타도리가 그런 나를 보고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건 산책할 때 네 볼이 빨갛고 눈이 반짝거려서 그렇기도 하지만 덕분에 나도 쉽게 만족할 수 있는 거 같아. 숨쉬고, 걷고, 두리번거리다 그냥 기분이 좋아지거든. 당연한 것에 행복해하는 너한테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돼."

 "그런 걸⋯⋯ '물들었다'고 하는 거야?"

 어림짐작했으면서도 잠깐 멍해졌다. 이타도리가 내게 뒤통수를 보인 채 저쪽으로 시름겨운 웃음을 터뜨렸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 익숙하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필요했던. 그러나 내 괴로움을 덜어 주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웃으며 물었다.

 "이타도리 군은 나한테만 그런 기분이 들어?"

 "응? 으응."

 이타도리는 어리둥절하더니 침착하게 대답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마음은 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에 둔해져야 당연한 것들에 만족할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비로소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낀다. 나는 자신의 마음 대신 둔해지는 것을 택했다. 그랬더니 어느 때보다 깨끗한 눈물이 났다. 후련해지고 나면 다시 웃음이 났다. 그 결과는 웃기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는 것이다.

 "실은 내 눈에도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특별해 보이지는 않아. 단지, 스즈카와 만나기 전의 나였다면 말이야. 방금 네 말을 듣고 슬픈 생각이 들었을 거야. 머릿속이 복잡해서. 아, 사실은 나를 동정하는구나라고 받아들였겠지."

 "왜? 내가 너를 보고 기분이 좋아져서?"

 "괜찮아. 헤헤헤. 나, 결심했어. 이타도리 군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지금밖에 못하는 일을 할 거야. 내일 죽는다고 해도, 뭐,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숨쉬고, 걷고, 두리번거리고, 무엇보다 마음껏 울고 웃을래."

 시도 때도 없이 웃으며 똑똑해 보이길 바라지는 않았다. 스즈카처럼 멋지게 말하지 못해서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도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는다. 그리고 입가에 옅은 미소만을 남겨 둔 채 긴 머리카락을 모아 만지작거린다. 이렇게 만지다 보면 가끔 이타도리가 내 머리카락을 빗어 주었던 일이 떠오른다. 어렴풋이 되살아나는 손길을 느낀다.

 "응. 그러니까. 그런 점이 귀엽다는 거야. 나는."

 생각치도 못한 이타도리의 말이 더 불을 지폈다.

 "이타도리 군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니까!"

 "맞아. 진심일 때는 거의 항상 아무렇지 않게 말해."

 이제 익숙하니까 안심해도 된다 생각했는데. 이건 뭐지. 어쩐지 다르다. 많이, 전혀 다르다. 이유를 모르겠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문득 가슴에 새겨 둔 지난날 스즈카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재생됐다.

 '잘 들어, 꼬맹이. 네 마음속에 어둠이 있음을 안다. 어둠을 잘 다스려야 해. 분노, 슬픔, 집착, 미련. 당연한 얘기지만 전부 버릴 수는 없어. 그렇다고 빛을 가릴 때까지 가만히 두어서도 안 된다. 천천히 조금씩 비워 나가거라.'

 스즈카의 말대로 할 수 있다. 어둠을 품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재앙이 되리란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천천히 비워 나가다 보면 언젠가 편안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강해져서 모두에게 힘이 되고 싶다.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 너는 딱히 다른 애들한테 필요없는 고민을 하는 게 아니야. 네 문제는 대부분 우리도 가지고 있거든. 나는 지금처럼 너랑 같이 걷고 얘기하면서 앞으로 그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싶어. 그리고 네가 앞으로도 계속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 줬으면 좋겠어. 대신 나도 함부로 얕보거나, 계산하거나, 속이려고 하지 않을게. 괜한 걱정은 하지 마. 너라면 무리 없이 머잖아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