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 왔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정말 크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크냐면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발을 들일 일이 없는 건물도 있어서 가뜩이나 새내기인 나는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 더 많다. 웬만한 캠퍼스 저리가라 하는 수준이라 지나가는 길에 우연히 보게 된다면 고등학교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다같이 외출을 했다. 아이들과 시내에서 밥을 먹고, 쇼핑을 하고, 스즈카가 추천하는 게임 센터에도 다녀왔다. 기숙사로 돌아가기 전 고전 안에서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어떤 곳에는 해바라기 꽃이 잔뜩 피어 있었다.

 "해바라기."

 이타도리의 목소리에 모두가 멈추어 서서 그를 돌아봤다.

 "뭐?"

 "해바라기. 아까부터 보고 있던 거. 이건가 해서."

 넷이나 모이면 아무래도 떠들썩하지만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은 이타도리와 노바라이기 때문에 둘이 떨어져 있거나 입을 열지 않을 때는 수업 시간처럼 조용하다. 후시구로는 말수가 적고 나도 그다지 먼저 나서는 편은 아니다.

 "너는 왜 맨날 그런 걸 생각하고 있냐. 무섭게."

 " 신경 안 쓰거든. 안 무서워 해. 그치."

 "아, 그래. 그럼 내가 뭘 보는지도 맞춰 보든가."

 "네가 뭘 보는지는 안 궁금한데? 쿠기사키 아냐?"

 "나를 왜 봐?"

 "너 안 봤거든!"

 후시구로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이따금 시적거린다. 나나 노바라와는 데면데면해도 이타도리와 티격대는 것은 일상이다. 서로를 허물없이 대함은 물론 여자애들이 듣지 않을 때 남자들만의 거친 말버릇이 자연스레 나온다.

 "헤헤헤. 해바라기 예쁘다."

 학장 님의 취향일까. 누가 심었는지는 몰라도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봐, 이 해맑은 표정. 너랑 내가 옆에서 뭐라고 떠들어대든 자기만의 세상에 푹 빠져 있잖아. 같이 걷고 있으면 궁금해질 만도 하잖아. 이렇게 행복해 보이는데. 솔직히 말해. 너도 말하기 전에는 해바라기 같은 거 쳐다도 안 봤지."

 후시구로는 말없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러자 노바라가 어깨를 으쓱하며 끼어들었다.

 "뭘 새삼스레. 감수성도 세심함도 결핍된 남자들에게는 그 정도 부주의함이 딱이지."

 이타도리가 투덜거렸다.

 "쿠기사키 너는 왜 언제나 그렇게 사소한 이유로 남자들을 가혹하게 평가하는 거야."

 이번에는 후시구로가 이타도리를 거들었다.

 "나는 누구처럼 부주의하지 않지만 방금 그 말에는 공감해. 쿠기사키가 매정하다는 거."

 "너무 잘난 나머지 내 큰 뜻을 이해 못하겠다면 그냥 닥쳐. 해바라기로 목을 매달기 전에."

 "애초에, 네 말을 들으면 진짜 괜찮은 남자가 될 수 있는 거야? 찐 머슴이 되는 게 아니고?"

 "너무 허를 찔렀어, 이타도리. 나한테 상의도 없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것까지는 없었잖아."

 "오케이! 그만! 내 관대함은 여기까지야. 너네 둘 다, 이 쿠기사키 님의 머슴으로 삼아 주마."

 남자애들은 훈련을 하루만 쉬어도 찌뿌드드한지 짬짬이 기지개를 펴고 어깨를 돌린다. 지루해한다기 보다는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다. 에너지를 쏟을 데가 필요해 보인달까. 두 남자가 나른한 얼굴로 해바라기 꽃을 보며 이죽거렸다.

 "똑같은 풍경을 보면서도 어떤 여자애는 예쁘단 생각을 하고 어떤 여자애 같은 애는 남의 목을 조를 생각을 하는구나."

 "심지어 무고한 남자 둘을 노예로 만들려고 했어. 어떤 풍경도 그녀 앞에서는 의미가 없네. 해바라기 씨한테 정말 미안해."

 ". 너의 감상을 깨뜨려서 미안한데 내가 여기 있는 해바라기를 하나 뽑아도 될까? 달리 끈으로 쓸 만한 게 없어서."

 노바라의 말에 웃음이 터진 나는 유쾌한 기분으로 그녀에게 제안했다.

 "노바라랑 해바라기 앞에서 같이 사진 찍고 싶어."

 "들었지, 남자들아. 배경 칙칙하게 만들지 말고 비켜."

 "네, 더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찍어 드릴 수도 있는데요."

 "됐어, 그런 건 후시구로가 쬐끔 나을 거 같아. 어이, 이상하게 나오면 알지?"

 "꼭 찍는 사람만 탓할 건⋯⋯ 아무것도 아냐. 별로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 볼게."

 노냥노냥. 건뜻건뜻. 그러면서도 노바라한테는 꼼짝 못 한달까 그래도 남자애들인데 노바라가 주먹만 쥐어도 기겁하며 도망가기 일쑤다. 그러한 까닭에는 고죠 쌤이 남자애들한테 좀 더 엄하고 여자에게 상냥해야 한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타도리에게 울리면 때린다 엄포를 놓지 않았던가. 후시구로도 노바라가 전학 왔을 때 비슷한 말을 들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적어도 그의 관심이 노바라에게 주로 향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찰칵

 이타도리가 두 여자 뒤에서 장난꾸러기처럼 웃고 있다. 찍기 전에 둘이서 쑥덕이더니 과연 그랬다.

 "노바라 너무 예쁘게 나왔다. 이타도리 군도⋯⋯ 풉! 웃기긴 한데 나름 귀여운 것 같아. 그치?"

 "어디, 확실히 쿠기사키는 실물보다 훨 낫⋯⋯ 흠흠. 너도 잘 나왔어. 배경이랑 어울려."

 "후시구로 군도 봐 봐."

 "여름 느낌 나고 좋네. 가을이 더 어울릴 것 같은 한 명만 빼면⋯⋯ 흠흠. 괜찮은 사진이야."

 "헛기침하다 목구멍 막히고 싶다는 소리로 들리지만 가 마음에 들어하니까 넘어간다."

 어쩌다 보니 후시구로가 구박을 막아 주게 되어서 그 틈에 이타도리는 느긋하게 사진을 감상했다.

 "해바라기 진짜 크다. 네 얼굴 만해."

 그 말을 듣고 다른 두 사람이 타박을 주었다.

 "하아. 이렇다니까. 저세상 감성 저세상 멘트."

 "미안한데 이번에는 너랑 못 엮이겠다 이타도리."

 이타도리는 들리는 말에 관심이 없어 보였고 나도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고마워! 헤헤헤. 진짜 내 얼굴 만해! 안에 해바라기 씨가 몇 개나 들어 있을까?"

 해바라기는 다른 들꽃처럼 연약하지 않다. 게다가 예쁘다. 나는 해바라기를 닮았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기분 좋은 웃음은 감출 수도 없고 솔직하게 기뻐하고 싶었다. 반면 이타도리는 기뻐하는 나를 보고 은근히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노바라와 후시구로도 나름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긍정의 힘은 저세상 멘트로도 사람을 웃게 만드는구나."

 "원래 닮은 녀석들이라 뭔가 잘못됐다는 걸 못 느끼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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