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끝난 뒤 화장실에 다녀왔더니 세 사람이 한곳에 둘러앉아 있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재밌는 일이라도 시작된 걸까. 그런 광경을 보자마자 흥미를 느끼고 다가갔다. 나는 이타도리의 옆에 다소곳이 앉아서 그에게 물었다.

 "뭐 해?"

 "그게⋯⋯."

 노바라가 대신 대답했다.

 "이타도리의 어린시절 사진을 보고 있어. 이 자식 갓난아기 적 사진까지 가지고 다니잖아. 완전 웃겨. 푸하하!"

 "할아버지가 찍어 준 거야. 야, 쿠기사키. 내 전화기 그만 내 놔. 그렇게 막 넘기면⋯⋯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이타도리가 자신의 휴대전화기를 돌려받기 위해 손을 뻗었다. 노바라는 그를 무시하고 후시구로에게 넘겼다. 후시구로는 제 것이 아닌 전화기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고서 사진을 넘기는 것인지 손끝으로 액정을 만지며 말했다.

 "야박하게 굴지 마.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기록해 두기 위해서잖아. 이제껏 살아 오면서 너한테 어떤 흥미진진한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할 뿐이야. 우리끼리 공유 좀 하자고. 봐, 이 사진은 고추가 나와 있다."

 "야, 야. 후시구로. 맘대로 보여 주지 마. 쿠기사키 너도 왜 거기서 빵 터지는데. 다음, 다음. 너넨 사진 없어?"

 후시구로가 내게도 보여 주려 하기에 얼른 눈을 가렸다. 그 틈에 이타도리가 잽싸게 전화기를 낚아챘다. 노바라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기 사진일 뿐이고 나도 딱히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민망했다.

 노바라가 내 뺨에 손을 대어 보더니 키득키득 웃었다. 내 얼굴이 뜨거운 것일까 그녀의 손이 차가운 것일까. 어쩌면 빨갛게 물든 것을 그녀가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스레 더욱 겸연쩍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지금 보여줄 수 있는 건 없어. 얼라 때 사진을 뭐 하러 가지고 다녀. 후시구로, 너는. 숨겨 봤자 소용없다."

 "나도 없⋯⋯ 하아. 고죠 쌤이 멋대로 찍은 게 짜증나게 많아. 누구처럼 벌거벗은 사진은 없으니까 걱정 마."

 말은 저렇게 해도 전화기를 바꾼 뒤 저장되어 있던 사진을 가져 왔다면 그 사진들을 나름대로 아끼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속웃음을 지었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자마자 노바라에게 빼앗긴 후시구로가 뚱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도 무언가 재밌는 것이 나오길 기대하며 노바라가 분주히 사진을 넘겨 보더니 시시하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뭐야, 귀엽잖아. 근데 왜 이렇게 어두워. 다 똑같은 표정⋯⋯ 계속 이런 반응인데 쌤도 끈질기게 찍으셨네."

 나도 슬쩍 끼어들었다. 계속 다음 사진, 다음 사진으로 바뀌는데 노바라의 말대로 전부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이 여자는 누구야. 엄마는 아닐 테고. 이모? 같이 찍은 사진 되게 많네?"

 "여자친구⋯⋯."

 "푸하핫! 말도 안 돼! 적게 잡아도 20대 후반인데? 너 이런 취향이냐? 우웩!"

 "누가 내 여자친구래! 내가 아니라, 고죠 쌤의 여자친구⋯⋯였던 사람이라고!"

 같은 여성과 찍은 수많은 사진들. 앨범을 따로 만들어 저장한 걸 보고 노바라와 내가 능청을 떨었다. 여성은 유쾌한 웃음을 짓고 있는데 후시구로는 반창고 덕지덕지 붙은 얼굴에 불만 어린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어쩐지 낯설지 않다. 확실히 만난 적은 없지만 비슷한 사진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기분 탓이려나. 어쨌든 후시구로는 어렸을 때도 잘 웃는 편은 아니었나 보다. 그래도 노바라가 한눈 파는 사이 발견했다.

 "웃는 사진도 있네. 다른 사진보다 어려 보여. 같이 찍은 여자애 귀엽다. 이 사람이야말로 여자친구 아닐까."

 스즈카처럼 긴 머리를 하나로 올려 묶은 여자아이. 어리지만 한눈에 봐도 미인이었다. 노바라에게 보여 주려 하자 후시구로가 다급히 전화기를 낚아챘다.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모두 의아한 얼굴이 됐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제 됐지. 내 얼굴은 질렸을 테니까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 네 차례야. 가지고 있어? 어릴 적 사진."

 "전화기에 저장된 건 없어. 숨기려는 게 아니라 내 사진은 대부분 아날로그거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보여 줄게."

 아무래도 실수한 것 같다. 왠지 모르게 내가 후시구로에게 나쁜 인상을 남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아이만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싫었던 걸까. 머쓱하게 뒷덜미를 긁적이고 있을 때 마침 고죠 쌤이 들어오셨다.

 "즐거워 보이네. 모여서 사고칠 궁리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안녕하세요. 저희 어릴 적 사진 보고 있었어요. 쌤도 보실래요?"

 "아니, 괜찮아. 선생님한테 너희는 지금도 충분히 어려 보이거든."

 "에이, 그럼 쌤 사진 보여 주세요. 고죠 쌤의 리즈 시절! 궁금해요!"

 "무례하긴! 쌤은 지금도 리즈야! 뭐, 그래. 딱히 못 보여줄 것도 없지."

 주머니에서 꺼내들기 무섭게 교죠 쌤도 노바라에게 전화기를 빼앗겼다.

 "어때, 쌤의 학생 시절이야. 멋있지."

 "그 옆에 검은 머리가 더 멋있는데요."

 "뭐어? 어딜 봐서? 이상한 앞머리잖아!"

 "앞머리는 이상해도 상냥했을 것 같아요. 사진만으로 짐작할 수 있잖아요. 머릿속에 그려진달까. 뒤에서 도망 못 가게 잡고 있네. 찍기 전에 혼자서 딴청피우고 있는 쌤한테 잔소리했겠죠. '고죠 군, 카메라를 봐야지'. 이런 느낌으로."

 "예리하구나, 노바라. 조금 무서울 정도로. 부르는 방법이 다른 것 빼고는 뭐, 다 맞았어. 하하하."

 노바라는 고죠 쌤을 돌아보더니 어쩐지 조금 맥쩍은 얼굴이 됐다. 그녀가 더욱 유쾌하게 재잘댔다.

 "그보다 피쳐폰 화질 실화냐. 대박 구려. 뭐, 쌤도 그럭저럭 봐 줄 만하네요. 우와, 고등학생인데도 떡대 장난 아냐. 도대체 뭘 먹으면 이렇게 크는 거야. 일본에서는 너무 독보적이잖아. 안 그래도 튀는데 좀 줄여도 되지 않나."

 후시구로가 덧붙였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게 좋을걸. 주술사 가문은 사람으로 작품을 만들잖아. 고죠 쌤의 훌륭한 신장도 고죠 가문에서 수백 년 동안 유구한 작업을 거쳐 만들어낸 거야. 우월한 유전자만 고르고 고른 거지. 안 그런가요, 당주님."

 "신랄해라. 메구미가 그걸 말하는 거야? ⋯⋯그래, 넘어가자. 다음부터 그런 말 하지 말고. 혼난다."

 이타도리와 후시구로도 어느새 사진을 보고 있었다. 노바라의 맞은편에 앉은 내게는 보이지 않았다.

 "이때는 배추머리가 아니었네. 쌤이 우리랑 똑같이 교복을 입고 있으니까 신기하다. 그치, 후시구로."

 "글쎄, 나한테는 별로 신기하달 것도 없지만. 이 땡땡이 선글라스, 지금 보면 은근히 촌스럽네요. 풉."

 "그때는 나름 신상이었어요, 메구미 군. 알지도 못하면서. 흥. 는 미남이라고 말해 줄 거지?"

 이타도리가 친절하게 전화기를 내 앞으로 가져와 줘서 나도 고죠 쌤의 어릴 적 사진을 볼 수 있게 됐다.

 ", 쌤이 물어보셔."

 "응? 아, 그, 그게, 저, 미남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 저도 모르게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잠깐, 왜 빨개지는 거야. 그런 반응 보여 주지 마. 안 그래도 왕자병 말기인데 더 우쭐해질 거라고! 아얏!"

 "노바라는 예의를 좀 배워야겠네. 쌤이 모처럼 우쭐해하고 있을 때는 아부라도 잘생겨떠요 하고 대답한다!"

 "뭐야, 완전 억지잖아! 누가 이의 좀 제기해!"

 노바라가 꿀밤 맞은 머리를 부여잡고 외치자 그녀 옆에 앉은 후시구로가 대수롭지 않은 듯 손사래를 쳤다.

 "뭘 새삼스레. 적당히 비위 맞춰드리면 되잖아."

 "그렇게 말하는 메구미가 더 나빠. 선생님 상처받았어. 얄미운 녀석들, 오늘 수업은 쉬는 시간까지 연장이야."

 쉬는 시간이 금세 지나가고 모두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타도리와 노바라가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쿠기사키, 너 때문이잖아."

 "우이씨."

 그리고 고죠 쌤은 언제나와 같이 제자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시작할 거야. 너희도 그만 자리로 돌아가서 책 펴."

 "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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