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 안녕."
담장을 지날 때 그를 보았다. 세 명뿐인 나의 동급생 중 한 명이자 앞으로 같은 교실을 쓰게 될 아이. 그 중에서도 이타도리라는 성을 가진 남자애와 친하게 지내라는 당부가 있었다. 가볍게 얘기나 나눌까 하고 먼저 인사했다. 이타도리가 밝은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디 가?" "아무 데도 안 가. 그냥 계속 걷고 있어." "산책이구나. 안 그래도 좀 궁금했어. 이 시간에 항상 근처를 걷고 있는 것 같아서. 산책하는 거 좋아해?" "좋아해! 걸으면 기분이 상쾌하잖아. 조금은 운동도 되고. 가벼운 활동부터 시작하라는 조언을 들었거든." "그렇네. 응원할게. 보는 사람에게도 힘이 되는 얼굴이라고 생각해. 뭐라 해야 하나. 빨갛고 반짝거리는 게." 나는 활짝 웃었다. 나도 이타도리를 봤을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데 그의 활기찬 모습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알 것 같아. 운동하고 난 뒤에 후아 하는 느낌!" "표현이 엉터리지만 그런 부분도 나랑 비슷하다." 이타도리는 내가 틀린 대답을 해도 웃으며 맞다고 해 줄 것 같다. 되는 대로 말해 놓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물었다. "어떻게 지내?" "잘 지내! 어라, 수업 시간에 이타도리 군도 있었지? 분명히 있었어. 펜 돌리다가 꾸벅꾸벅 조는 거 봤어." "나도 너를 봤어. 계속 두리번거리면서 싱글벙글 웃었잖아. 혼자일 때 어떤지 묻는 거야. 기숙사에서는?" 몸이 약할 때 안부인사는 짧을수록 좋다. 어차피 나도 상대방에게 즐거운 얘기 같은 건 들려 줄 수 없으니까. 그렇다 보니 누군가 이처럼 세심하게 물어봐 줄 때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사소한 일이라도 알리는 것이 예의일까. 기숙사를 배정받았던 날 짐을 정리하는 것은 큰일이었지만 그 후로는 이렇다 할 일이 없었고 줄곧 한가했다. 남아 있던 긴장감은 첫 수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완전히 녹아 버렸다. 고죠 쌤, 이타도리, 다른 두 명도 유쾌한 사람들이다. "기숙사에서도 괜찮아. 오히려 다 좋아서 문제려나. 내가 전학생이라서 신경 써 주는 거구나. 고마워." "고죠 쌤이 부탁하셨잖아. 부탁이랄까, '울리면 때린다'던데. 쌤 성격은 나빠 보이고 진짜 아플 거 같아."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겠네. 이타도리 군은 혼나지 않을 거야. 네가 나한테 못되게 굴 리 없으니까." "응⋯⋯."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지라도 까마득한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평안 속 깊은 안도를 느낀다. 자신에게 든든한 아군이 생김으로써 해이해지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때로는 거리낌없이 기대고 싶고 한편으로는 쑥스럽기도 하다. 낯을 가리는 나에 비해 이타도리의 친근하고 털털한 성격은 유쾌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스즈카 씨가 이타도리 군을 칭찬했어! 남자답고 자상하다고. 그래서 고죠 쌤도 너한테 부탁하신 거 아닐까."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만. 스즈카 쌤한테 칭찬받을 때 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거나 다름없어서 좀 묘한 기분이야." "나도 스쿠나 씨한테 쓰담쓰담 받고 싶다!" "푸핫! 쓰담쓰담은 받을 수 없지 않을까?" 문득 이타도리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그 전에 위험하니까 도망쳐." "도망쳐? 왜?" "왜냐니⋯⋯ 화낼지도 모르고." "화내지 않으실 거야. 가끔이라도 인사하게 해 줘. 스쿠나 씨도 예의바른 여자애는 싫어하지 않으셔." "스쿠나는 사람을 안 좋아해. 특히 여자랑 아이⋯⋯ 엄청 싫어하거든. 이런 얘기 들어도 무섭지 않아?" "안 무서워! 그쵸?" "스즈카 쌤⋯⋯ 뭐라고 얘기하신 거예요? 저기요?" 스쿠나 씨에게 첫 인사를 깔끔히 무시당하고 두 번 세 번으로는 안 되겠다 짐작했으므로 각오를 다지고 더욱 밝게 웃으며 인사하기로 했다. "나는 포기 안 할 거야. 일단은 인사 나누기를 첫 목표로 정했어. 안녕하세요, 스쿠나 씨. 날씨가 좋아요. 저랑 바람이라도 쐬시는 게 어때요?" "엉뚱한 부분에 근성이 있네. 젠장, 좀 재밌어 보인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