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실수로?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그래도 얼굴이 이렇게 빨개져? 눈도 풀리고, 완전히 취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어어. 처음에는 뱉었다가아, 왠지 모르게 한 번 더 마시고오, 그리고 또오⋯⋯."

 훈련을 끝내고 평소처럼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었다. 처음 보는 예쁜 캔. 주스가 아닌 술이었다. 스즈카가 잠이 안 올 때 술을 마신다. 알면서도 생각 없이 집어들었다. 도수가 낮다고 하지만 경험이 없는 내게는 치명적이었다.

 이타도리가 나를 부축하며 물었다.

 "그렇다 치고, 왜 밖으로 나온 거야?"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계속 미끄러졌다.

 "취했으니까, 걸으면 깨지 않을까 해서어."

 짙은 쓴맛, 시큼한 냄새, 한마디로 맛없다. 이런 걸 왜 마시지. 처음에는 그랬다. 언제부터였더라. 하늘에 요정이, 달콤한 꿀이⋯⋯ 그런 환상의 뒷편에서 얼굴이 뜨거워지고, 자꾸 웃음이 나오고,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차올랐다.

 "걷긴커녕 서 있지도 못 하잖아. 어, 어어."

 내가 마신 게 술인지 아닌지 내게는 가늠할 방법조차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갑자기 두려워져 스즈카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는 간만에 재밌는 구경을 하게 되어서 신이라도 난 것처럼 낄낄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휴, 어느 쪽으로 넘어져야 하는지 잘 아네."

 으쌰, 이타도리가 나를 업었다. 어부바보다 부축이 평범한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훈련을 끝낸 뒤 업혀 돌아간 적도 있으니 새삼 부끄럽게 여길 일도 아니었다. 기댄 채 어설프게 걸으며 흐느적거리는 게 오히려 시선을 끌 것이다.

 "헤헤헤. 다행이다. 이타도리 유지다."

 "네, 그렇습니다만. 뭐가 다행이었던 건가요?"

 "너랑 만나서. 어부바 해 줘서. 다행입니다아."

 "후시구로도 너 정도는 업을 수 있지 않을까?"

 "그건 너무 창피하잖아! 나는⋯⋯ 유지가 업어!"

 "와⋯⋯ 어떡하지. 정말 잘됐다, 나라서. 웃기네."

 이타도리와 마주치기 전 술을 깨야 한다는 생각에 산책을 나왔다. 깨닫고 보니 그와 자주 다니는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산책길은 그밖에도 얼마든지 있다. 단지 그가 지나다니는 길목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전하게 느껴졌다.

 잠들 뻔했다. 구름 위에 누운 것처럼 편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기숙사 복도. 내 방 앞이었다. 이타도리가 문고리를 잡았다. 문이 덜컥 열렸다. 술을 깨야 하는데. 한편으로는 취한 것이 싫지 않았다. 업히고도 매달리고 싶었다.

 "문도 안 잠갔어⋯⋯ 불안하게. 그래도 무사히 들어왔네. 나 말고는 아무도 못 봤어. 자, 이제 침대야."

 "이타도리 군, 가지 마."

 "이타도리 찬스는 여기까지입니다. 산책도 오늘은 끝. 꼭 방에 있어야 돼. 알았지. 스즈카 쌤, 부탁해요."

 내 침대에 누웠으니 몸은 편했지만 가슴에 열이 가득했다. 답답했다. 숨이 찰수록 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머리도 아팠다. 나는 이타도리에게 매달려 응석을 부렸다. 그도 나를 억지로 떼어낼 수는 없었다.

 "왜 벌써 가. 나랑 놀자."

 "뭐하고 놀게? 게임? 지금 너랑 내기하면 백전백승도 어렵지 않을 거 같아. 그런 건 재미없으니까 안 할래."

 이타도리의 옷에 얼굴을 묻자 낡은 기숙사에 품긴 고목 냄새가 났다. 운동장의 흙바닥 냄새도. 이타도리가 숨쉴 때마다 나도 들썩였다. 숨이 흩어지기 전 내 목을 스치고 귀밑까지 닿았다. 간지러운데 웃음이 나오지는 않았다.

 "놀자아. 같이 있을래애."

 "나도 놀고 싶어. 놀리고 싶지. 네가 평소에 안 하는 말을 하는 건 솔직히 재밌잖아. 풉. 근데 이럴 때는 내가 어떻게 해 줘야 되는 거야. 달라붙는데다 비비적거리고. 안 된다고 생각해. 나 좀 도망가게 해 주라. 부탁합니다아."

 목소리는 다정했다. 그런데 어쩐지 쓸쓸해서 나는 이타도리를 와락 안았다. 얼굴을 묻은 채 울기까지 했다. 비비적비비적. 왜였더라. 그새 잊어버렸다. 멈추려는 듯 이타도리가 한손으로 내 양볼을 그러잡았다. 그런 줄만 알았다.

 ". 야해."

 "뭐가 야한데애."

 그것이 조금 뭣하다. 볼과 입술이 아기처럼 도톰해졌다. 말도 엉성했다. 나는 조금 발버둥치다 포기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타도리가 부스럭거리며 움직였다. 쪽, 쪽. 뺨과 입술에 그가 닿았다. 뭐라고 하더라. 처음인데.

 "이타도리 군?"

 그리고 떨어졌다. 이타도리는 어색한 모습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멀뚱히 섰다. 화난 거 같기도, 조금 울먹이는 거 같기도⋯⋯ 어쩐지 가엾었다. 그 와중에 점점 멍해지면서 졸음이 밀려왔다. 눈꺼풀이 닫힐랑 말랑 했다.

 "너 말이야! 사람의 표정이라든가 분위기를 좀 읽어. 말도 안 듣고. 나만 바보 같잖아. 내, 내일 피해 다니거나 하면⋯⋯ 몰라. 울 거야. 사과는 할게. 듣고 싶다면. 자는 거냐. 자려면 이불 덮어. 감기 걸리잖아. 진짜 귀엽고 귀찮네."

 이타도리가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술은 이런 거구나. 맛없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어쩌다 조금씩 빠져들게 되는지 알 것도 같다. 그 웃지 못할 결과 중 하나로 나, 키스했다. 첫키스인데. 어떡하지. 강하게 조여 오는 가슴을 부여잡고 입을 틀어막았다. 그대로 꾹 눌러참았다. 얼굴이 터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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