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다."
이타도리가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창가로 향했다. 오전만 해도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는데 주척주척 내리며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그다지 비를 반기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고죠 쌤은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손뼉을 치셨다. "어쩌지, 얘들아. 놀러 나가긴 글렀네. 너희가 비 맞고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선생님이 숙제를 잔뜩 내 줄게." "아!" "어디 보자. 다섯 장 정도는 거뜬하지." "감기 걸려도 괜찮으니까 놀고 싶어요." "누구 속을 썩이려고. 안 되겠네. 열 장." "아아!" 우리는 입을 모아 탄식했다. 눈물로 호소하고 까무러치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은 요즘 임무가 너무 많다며 도리어 울기 시작하셨고 제자들이 위로를 해 드렸다. 스승이나 제자나 가뜩이나 우울한 날씨에 맥이 빠질 만도 하다. 방과후에는 교실에 남아서 수다를 떨다가 가방을 들고 내려왔다. 처마 밑에서 선명한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교실에서 봤을 때와는 다가오는 기세가 달랐다. 툭 툭 떨어져서 또르르 굴러내리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노바라도 안 가져온 모양이다. 이타도리가 그녀를 돌아보며 놀리듯이 웃더니 내게 우산을 내밀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후시구로랑 들어가면 되니까 내 거 써." 나는 별 수 없이 하루만 빌려 쓰기로 하고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때, 뒤쪽에서 노바라가 소리쳤다. "야, 후시구로! 거기 서! 어딜 도망가려고. 나 숙제 도와줘야지." 후시구로는 기가 찬다는 듯 눈썹을 찌푸리다 덤덤하게 대꾸했다. "도망 안 갈 테니까 하다가 모르는 거 있으면 전화해. 이거 놓고." "시끄러워! 잔말 말고 따라와라! 다음에 맛있는 거 사 줄 테니까!" "잠깐만. 너무 강압적이잖아. 내 생각도 좀⋯⋯ 아, 알았어! 아파!" 후시구로는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노바라의 막무가내에 체념한 듯 순순히 그녀에게 끌려갔다. "뭐냐, 그 주름까지 반듯하게 펴서 접은 우산은. 너는 그런 부분이 꼭 잘난체하는 것 같단 말이야." "또 괜히 트집잡는다. 반듯하게 접지 않았으면 칠칠맞다 욕했을 거잖아. 대체 날더러 어쩌라는 거야." 하늘이 지난 계절 동안 갈증을 견뎌낸 나무를 위로하듯 비를 쏟아붓는다. 풀벌레들은 풀숲에 숨어서 운다. 우산을 같이 쓰긴 처음이다. 그래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에 익숙하니 조금 더 가까이서 걷는 것쯤은 개의치 않았다. "이타도리 군. 돌아가서 교복 아무렇게나 벗어 놓지 마." "응. 어떻게 알았어. 네가 말 안 했음 분명 그랬을 거야." "그러면 안 돼. 제대로 말려야지. 교복에서 냄새 나잖아." "네. 내일 꿉꿉한 냄새가 나면 쿠기사키한테 혼날 테니까." 이렇게 대답하고는 옷에 코를 대어 보는 그에게 내가 말했다. "지금은 좋은 냄새만 나. 평소랑 똑같아. 이타도리 군 냄새야." "그렇구나아. 잘 모르겠네. 아무도 몰라 그런 건. 만 알지." "가르쳐 줄게애. 고죠 쌤은 달달한 과자 냄새, 노바라는 은은한 화장품 냄새, 후시구로은 깨끗한 세제 냄새. 다른 사람들은 그런 냄새가 나. 이타도리 군도 아침에는 그런데 금방 없어져. 이타도리 군의 냄새는 좀 더 바깥에서 나는 거. 문을 열어 두어야만 맡을 수 있는 냄새야. 바람, 햇빛, 비, 나무, 풀, 흙. 가끔은 과일 냄새도 나. 헤헤헤." "요즘에는 창문을 닫으면 답답해서 열어 놔. 내 방은 침대랑 책상이 창문이랑 맞닿아 있어서 앉거나 눕기만 하면 바람이든 햇빛이든 오는 대로 맞게 되고. 나무야 당연히 있고. 아, 일전에 먹고 남은 레몬 껍질 방향제로 썼어. 우와." 내가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후각을 가진 것은 물론 아니다. 그저 조금 더 냄새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할 수 있겠다. 덧붙여 누군가의 성격이나 특징과 어울리는 냄새를 찾으면 그게 머리에 깊이 각인되어 그 사람의 냄새로 기억하는 것 같다. "또 없어?"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단련하니까 뜨겁고 축축한 냄새도 나." "매일 씻어도 땀 냄새는 나는구나. 하긴 그렇지. 으응. 미안해애." "자꾸 따라하네애. 그냥 남자애들한테 나는 냄새야. 그것도 좋아." 당연한 것이지만 기숙사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 비 오는 날에도 산책 해?" "응! 평소보다 일찍 끝내긴 하지만. 이타도리 군은 어떡할래?" "음⋯⋯ 할래. 어차피 숙제하다 보면 머리 아파질 거 같으니까." "헤헤헤. 그럼 이따 보자." 뒤돌아서니 새삼 쑥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후다닥 기숙사로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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