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부터 요란법석을 피웠다. 지각은 면했지만 머리카락을 제대로 말리지 못해서 부스스해졌다.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마조마하다가 마침내 쉬는 시간이 되어 빗을 꺼내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분명히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빗이 없다. 노바라가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빌렸겠지만 그녀와 후시구로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그것은 즉 어쩌면 다음 쉬는 시간까지 부스스한 모습으로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 이타도리가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어떤 모습을 하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고 그의 웃는 얼굴도 평소와 같지 않을까라는 청승궂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도 태연하게 마주보고 웃을 수 있었다. "이거, 네 거지." 이타도리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동그란 모양에 방울꽃 그림. 내 빗이었다. 꽃말이 마음에 들어 꽤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손에 있으니 새삼 어색하고 귀여웠다. 아침에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면서 떨어뜨렸던 모양이다. "고마워. 다행이다." 이것으로 부스스함은 면했다. 나는 머리카락을 한쪽 어깨로 끌어모아 빗어내렸다. 이타도리는 바로 옆 책상에 걸터앉았다. 쉬는 시간이고 다른 애들도 없으니 그러느니 했다. 그런데 그가 빗질하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더니 말했다. "내가 해 봐도 돼?" "뭘? 아, 빌려 줄까?"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나도 빗어 보고 싶어. 내 거 말고. 너처럼 긴 머리카락 말이야." 나는 잠깐 멍해졌다. 남자애에게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물론 내 머리카락을 빗게 한 적도 없었으므로. "으음. 역시 이상한가.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해서 미안. 신경 쓰지 마. 그렇지. 인형놀이도 아니고." "나도 가끔 노바라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생각해. 남자애도 그럴 수 있다니 신기하네. 괜찮아. 빗어 줘." 내가 노바라에게 같은 말을 했다면 아마도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말해 주었을 것이다. 여자애 대신 남자애를 대입하면 어색한 기분이 들긴 하지만 이타도리도 친구이고 굳이 안 된다고 말할 이유는 없었다. 이타도리는 보기 보다 세심한 구석이 있었다. 내 머리카락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에도 빗질을 계속했다. 조금 쑥스럽기도 했지만 시중을 받는 입장에서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그냥 머리카락을 빗는 것뿐이고 그런대로 기분 좋았다. 그랬는데 어쩐지 시간이 지날수록 침착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두 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렸다. 어깨에 내려앉은 온광이 슬슬 덥다.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엉킨 부분에 빗이 걸려서 머리카락이 뒤로 당겨졌다. "아야. 아파라. 이타도리 군, 살살 해." "긴 머리카락은 처음이라. 미안합니다." "아니야. 다음에는 내가 빗어 줄게. 헤헤헤." "마음대로 해. 쌤이 자주 쓰다듬으셔서 익숙해." 스즈카와 교대했다고 해도 얼굴은 여전히 나다. 어떤 기분일까. 이타도리는 묘한 기분이라고만 했기 때문에 줄곧 신경쓰였다. 나도 스쿠나 씨에게 쓰담쓰담 받고 싶다. 이런 방법으로 조금은 대리만족까지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이 정도면 되려나. 비단실처럼 부드러워. 뭐랄까, 위에서부터 보면 폭포수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뿌듯하네." 정성스럽게 빗고 나니 전체적으로 풍성해졌다. 막힘 없이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부드러운 스침도 덕분에 비단결을 만지는 것 같았다. 이타도리는 내게 빗을 돌려주고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대로 잠시 나를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예쁘다." 그에게 있어서 나는 다른 아이들만큼 격없이 지내는 편은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누군가를 편하게 대하는 것을 우정이라 말하지는 않고 그가 내게 언제나 상냥하다고 해서 그것과 다르다고도 할 수 없다. "이타도리 군이 빗어 줘서 그렇지!" 그와의 대화, 산책. 최근에는 거의 모든 일들에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낀다. 그리고 이따금씩 이렇게 서근서근 웃다가도 조금씩 얼굴에 열이 번진다. 나는 내 나름대로 숨기는 것 없이 그에게 자신의 솔직한 면을 내비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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