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해서 나른하고 푸근하다. 정신차리고 보니 어째서인지 나 홀로 조용한 복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스즈카가 대신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아직도 조금 멍한 느낌에 얼떨떨하다. 머잖아 상황 파악이 됐다.

 "스즈카."

 답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어 말했다.

 "아침에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무리한 부탁을 한 거지만 다음부터 졸려서 참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나를 불러 주세요."

 그러자 스즈카가 마지못해 뺨에 나왔다.

 "미안하다."

 이렇게 대답하더니 냉큼 다시 들어가 버렸다. 결국 청소는 내 몫이다. 솔직히 나로서는 평소에 그녀가 좀 더 청소와 같은 집안일을 도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애초에 나 때문에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으니 그저 싱거울 뿐이다.

 "사과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내가 미안해요."

 빗자루와 걸레를 꺼내들고 청소를 시작하려 할 때였다. 아직 수업이 한창인데 갑자기 교실 문이 열렸다.

 이타도리가 태연하게 걸어나오더니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어. 하여간 둘 다 내빼는 데 선수라니까."

 "그런 것보다⋯⋯ 이타도리 군은 왜 교실에서 나온 거야?"

 이타도리에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히물히물 웃었다. 나도 그렇고 수업 중에 쫓겨나는 이유야 빤하니까. 누구나 졸음을 이길 수 없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도 민망한 듯 웃기만 할 뿐 말없이 내가 가져다 놓은 걸레를 집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역할이 분담됐다. 내 일이 아무래도 힘이 덜 드는 것이므로 조금 분발해서 서둘러 마무리했다.

 "이타도리 군! 그거 줘."

 "그거?"

 "내가 닦을 거야. 나 줘."

 "도대체 왜⋯⋯ 시, 싫은데."

 "⋯⋯."

 "그러니까 왜 실망하냐고. 안 도와 줘도 돼. 고마워! 상냥하네!"

 "헤헤헤.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걸레 하나 더 가져 올게."

 "기다려 봐. 음⋯⋯ 하하하. 이렇게 하자. 이따 쉬는 시간에 팔씨름 내기를 하는 거야. 여자끼리 남자끼리. 500엔 씩 걸고 하자. 후시구로는 아마 반강제로 쿠기사키한테 걸겠지. 나는 너를 응원할게. 힘 아껴 놨다가 꼭 이겨!"

 "그럼 질 수 없지! 맡겨 줘!"

 나는 두 손을 움켜쥐어 보이며 각오를 내비쳤다. 이타도리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웃더니 내게 물었다.

 " 너는 누구한테 걸래?"

 "나는⋯⋯."

 "거기서 고민하는구나. 하긴."

 내기를 자주 해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팀을 나누어야 할 때는 노바라가 후시구로의 파트너이거나 그를 응원했으므로 나는 반대편에 더 익숙해졌다.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그녀와 다른 쪽을 응원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이타도리 군을 응원할래!"

 "후시구로는 보통 남자애들보다 세. 알아?"

 "알아. 예전에 운동하는 남자애들을 많이 봤으니까. 안 봐도 알 거 같아. 이건 내 생각이지만 후시구로 군은 운동보다 싸움을 많이 한 것처럼 보여. 격투라면 몰라도 팔씨름 같은 건 이타도리 군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몸만 보고도 안다니 부끄럽네애. 스즈카 쌤에 비하면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너라면 알 수도 있겠다. 너는 뭐든지 관찰하는 걸 좋아하잖아. 철저히 전략적인 판단 하에 내린 결정이었구나. 그럼 나도 질 수 없지."

 "화이팅!"

 "응. 이길게."

 스즈카를 만나고 이 학교에 오면서 어떤 의미에서는 나도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은 고등학생이 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나른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가끔은 꿈을 꾸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온할 수 있는 까닭은 내게 한결같이 친절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분명히, 그 상냥함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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