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먹장구름이 흘렀다. 곧 빗방울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오늘 훈련은 조기종료. 여름이 짙어지면 이런 날도 있는 것이다.

 "하여간 별나."

 "응?"

 계단에서 쉬고 있노라면, 문득 내 옆에 앉은 노바라가 말했다.

 "남자 놈들 말이야. 날씨가 이런데도 농구를 하겠다고 설치니."

 "왜, 나는 멋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땀 흘리면서 운동하는 거."

 "멋있는 게 아니라 철이 없는 거야. 천둥벌거숭이도 아니고 진짜."

 "후후후. 덕분에 우리도 재밌는 구경 하잖아. 누가 이길지 궁금해."

 남자애들은 농구를 하러 갔다. 이쪽에서도 두 사람이 잘 보인다. 이타도리는 못하는 운동이 없는 것 같다. 심지어 그가 처음 해 본다고 말하는 종목까지. 선수라 해도 믿을 정도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뛰어나다. 후시구로 군도 썩 평범하지는 않다. 오랫동안 단련해 온 만큼 신체능력은 이미 또래 평균을 넘어선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사심을 보태지 않아도 솔직히 멋있는 남자애들이다.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는 인기가 많지 않았을까.

 이타도리는 수업 중에 '죄송합니다'라면서 뒷문을 열고 태연하게 걸어갔을 것 같다. 그리고 책상에 엎드려 푹 자는 거다. 후시구로는 무뚝뚝한 남자애지만 짝꿍인 여자애가 교과서를 두고 와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말없이 자기 교과서를 가운데로 옮겨 줄 것 같다. 꺄아. 잠깐 머릿속에 그려 봤을 뿐인데 두근거린다. 더 빠져들면 금세 인터넷 소설 한 편이 완성될 것 같으니 오늘은 이쯤 해야겠다. 그래도 이런 류의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쿠기사키, 잠깐 비켜 봐. 거기 내 물⋯⋯."

 "가까이 오지 마, 이 땀 냄새 테러범아! 자!"

 솜사탕 같은 상상의 구름을 후 불어 날려 보냈다. 어느새 남자애들이 있었다. 물을 마시러 온 모양이다.

 "그렇게 많이 안 흘렸는데⋯⋯ 알았어. 외투는 벗어 놔야겠다. 야, 후시구로. 너도 구박받기 싫으면 벗어."

 "아니, 이타도리. 일본은 냄새의 자유가 있는 나라야. 구박을 피하기 위해서라 해도 굽신거리지는 않겠어."

 이타도리는 저항해 봤자 더 혼날 뿐이라는 걸 알고서 평소에도 웬만하면 노바라에게 많이 져 주는 편이다. 그리고 후시구로는 갈수록 귀여워진다. 별것 아닌 일에도 저항하고 싶어하는 것 같달까. 귀엽고, 유치하고, 왠지 재미있다.

 "콜록콜록."

 "노바라, 괜찮아? 우린 그만 안에 들어갈까?"

 "괜찮아. 비가 와서 그런지 좀 으슬으슬하네."

 "환절기에는 감기를 조심해야지. 몸이 차가워."

 어째서 진작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노바라도 평소 같으면 흐린날 농구하는 것 정도로는 불평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신경이 날카로웠던 거구나. 걱정스런 마음에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후시구로가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뭐야, 쿠기사키. 감기 걸렸냐.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어디, 이 땀 냄새 나는 옷이라도 입어 볼래? 풉."

 "으으. 어쩔 수 없지. 모양 빠지게 퇴장하긴 싫으니까. 킁킁. 뭐, 생각했던 것보다 최악은 아니군. 내놔!"

 노바라는 후시구로가 능청스레 내민 검은색 맨투맨을 낚아챘다. 두 팔을 넣고 만세하자 옷이 훌렁훌렁 들어갔다. 흐뭇함을 감추고 노바라의 매무새를 만져 주고 나니 이타도리가 머쓱하게 들고 있는 후드 집업이 눈에 띄었다.

 "그럼 이타도리 씨의 옷은 내가 맡을까요?"

 "네, 부탁할게요. 씨도 감기 조심해요."

 이타도리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으며 내게 옷을 건네주었다.

 "저기⋯⋯ 잠깐 입고 있어도 돼요?"

 "돼요, 돼요, 그런 거, 가져도 돼요!"

 농담이겠지. 아니면 정말 받아도 괜찮은 걸까. 몹시 쑥스러웠다.

 "근데 이것들 왜 자꾸 존댓말로 얘기하는 거야? 오글거리게."

 "사실 나도 진작부터 꼬집고 싶었어. 진짜 뭐 하는 거냐, 너네."

 노바라에 이어 후시구로가 그렇게 말하자, 이타도리가 대꾸했다.

 "기분 나쁠 때라든지, 존댓말을 쓰면 다투는 걸 피할 수 있잖아."

 그 말을 들은 노바라는 오히려 더 황당하고 질색하는 얼굴이 됐다.

 "그러니까 너네가 무슨 부부냐고! 애초에 그런 생각이 왜 드냐고!"

 그 와중에 잘 보면 후시구로는 맨투맨 안에 새하얀 반팔티를 입었다. 비를 맞으면 더러워질 텐데. 그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걸까. 간질간질하다. 덩달아 자꾸 입 꼬리가 올라가서 곤란하다. 후시구로가 팔짱끼며 능청을 떨었다.

 "대마왕과의 전투를 피할 수 있단 말이지? 흐음. 어때요, 쿠기사키 씨."

 "으으으, 소오름. 후시구로 씨, 내 사람이 해도 좋게 들릴까 말까야. 확!"

 나처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둘을 지켜보고 있던 이타도리가 내게 물었다.

 ", 내 옷에서 냄새 나?"

 음, 어디 보자. 아직 손에 들고 있는 하늘색 후드 집업을 말아 올려 코에 댔다.

 "킁킁. 응, 비에 젖은 풀 냄새랑 흙 냄새. 그리고 활력의 냄새가 나. 헤헤헤."

 "쿠기사키, 들었어? 마음씨가 고우니까 땀 냄새도 활력의 냄새로 변하잖아."

 "가 너에 대해 무슨 말을 하든 이제는 놀랍지도 않아. 적당히 해라, 너."

 이타도리는 노바라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일어나서 후시구로에게 말했다.

 "남자가 시작했으면 결착을 봐야지. 비 오니까 빨리 끝내자. 뭔가 걸고 내기할래?"

 문득 이타도리와 노바라가 조금 서름해 보였다. 둘 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어쨌거나 입고 봅시다. 헤헤헤. 예쁜 파스텔 톤의 하늘색 옷이다. 몸을 쏙 집어넣고 지퍼를 올려 닫았다. 내 옷과는 느낌도 냄새도 다르다. 제법 그럴싸한 보이프렌드 룩이 되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보이 프렌드 룩이지만. 그건 그것대로.

 "."

 "응?"

 노바라의 부름에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내게 한쪽 팔을 내밀었다.

 "이건 무슨 냄새야? 놀리는 건 아니고, 좀 재미있어져서."

 나는 후시구로의 검은색 옷소매에 살며시 코를 대고서 냄새를 맡아 봤다.

 "킁킁. 으음⋯⋯ 이건 절제와 근면! 그리고 지혜의 냄새!"

 "절제와 근면? 지혜? 모르겠네. 킁. 이것도. 킁킁. 그리고 이것도. 그냥 바보들 냄새인데?"

 노바라는 의아해했다. 그게 당연한 거지만 그녀가 바보들의 냄새라고 하면 그것도 정답이다.

 "설마하니 이타도리의 말대로⋯⋯ 진짜 깨끗한 영혼을 가진 사람만 알 수 있는, 뭐, 그런 건가?"

 나는 후후후 웃었다. 물론 나만 아는 냄새 같은 건 없다. 본래의 냄새에 상상력을 더한 것일 뿐.

 "그건 그렇다 치고 오버 사이즈구만. 아무리 남자 옷이라도 너무 크잖아. 바람이 숭숭 드나드네."

 "그러네애. 이타도리 군이랑 후시구로 군 옷을 헐렁하게 입지. 그래도 나는 편해서 좋아.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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