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다양한 색채를 가졌다. 맑은 날에는 내 마음까지 환하게 비추는 듯하고 흐린 날에는 어려운 고민을 함께해 주는 듯하다. 이제는 하늘이 어떻게 변하든 나도 기후에 맞춰서 자신의 기분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다. 다만 오늘은 먹구름과 비가 반갑지 않았는데 노바라와 트레이닝하기로 약속했던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 없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으므로 일찍이 날씨와 타협하는 법을 배웠다. 간단히 말해 바깥이 안 되면 안에서 하면 된다. 트레이닝을 쉬는 대신 실내에서 스포츠를 즐기게 되었으니 좋은 점도 없지 않은 셈이다. 이런 사정은 남자애들도 마찬가지다. 후시구로와 인사하고 도구를 가지러 창고에 들어가니 이타도리가 있었다.

 "이타도리 군, 안녕. 뭐 하고 있어?"

 "어, 안녕. 셔틀콕이 통에 꽉 끼었어."

 원기둥 모양 통 안에 겹겹이 들어찬 셔틀꼭은 가끔 그렇게 애를 먹인다. 어떻게 빼는지 알려 주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타도리가 통의 밑바닥이 벽을 향하게 하고 두어 번 힘껏 쳤다. 셔틀곡이 그의 발치로 똑 떨어졌다.

 "하하하. 이거 봐. 하나밖에 안 들어 있어. 열받네애⋯⋯ 자."

 이타도리가 셔틀콕을 주워 내밀었다. 투덜거리면서도 선뜻 양보해 주니 당혹스럽기도 하고 되우 쑥스러웠다. 혼자 왔다면 고민하지도 않았겠지만 나는 노바라와 함께였으므로 애써 민망함을 감추지 않고 호의를 받아들였다.

 "고마워. 이타도리 군은?"

 "걱정 마. 파트너 해 주는 대신 양보한 거니까. 복식으로 하자."

 "이타도리 너. 여자애들 꼬실 때는 그런 치사한 방법 쓰지 마라."

 "네, 네."

 노바라의 잔소리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이타도리가 앞장섰다. 미안해서 발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는데 어쨌든 마음이 놓였다. 복식경기가 결정된 뒤 나는 이타도리와 한 팀이 되었다. 누가 정한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갈렸다.

 다른 아이들도 내가 준비운동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있기에 나와 어울리거나 다른 일을 하며 기다려 준다. 전자에 더 익숙한 이타도리는 스트레칭을 하고 나도 팔다리를 쭉 늘리며 나름 진지하게 상대편을 살펴보았다. 코트 너머의 둘은 전투 준비라도 하는지 배드민턴 채를 양손 검처럼 쥐더니 어느새 투닥거리며 칼싸움을 하고 있었다.

 ". 준비 됐어?"

 "언제라도 오케이야!"

 "후시구로! 지면 죽는다?"

 "하! 너야말로 엄살떨지 마."

 "스포츠 경기에서 만큼은 감자 녀석과 같은 편이 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인지 알지!"

 "진심을 내지 않고서는 저 둘의 조합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거⋯⋯ 물론, 잘 알고 있어!"

 후시구로의 서브를 기점으로 음료수배 배드민턴 시합의 막이 열렸다. 간만에 기분 좋게 땀을 흘릴 생각으로 웃음이 만연한 이쪽 코트에 비해 저쪽에는 긴장감이 넘쳤다. 뜨거운 랠리를 펼친 끝에 셔틀콕이 상대편 코트에 꽂혔다.

 "아자!"

 "선점!"

 기선제압까지 포함해 첫 득점은 더 뜻깊고 기쁘다. 이타도리와 나는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간발의 차로 점수를 내어준 노바라가 갈지자 상태로 끙 앓더니 파트너인 후시구로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무릎을 펴고 일어났다.

 "으윽⋯⋯ 이건 아니잖아. 공이 너무 빨라서 못 따라가겠어."

 "연연하지 마. 이 정도는 예상했으니까. 쿠기사키, 잠깐 귀 좀."

 후시구로와 노바라가 귓담을 주고받았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그저 무던히 노력하는 것뿐. 예측할 수 없는 전략전술에 부딪힐 때마다 긴장해서 이를 감추기 위해 부러 헤실거렸다. 다양한 흐름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돌파할지 머릿속에 그려 보는 동안 긴 투병생활의 여독을 미처 풀지 못한 몸이 곳곳에서 묵묵히 신음했다.

 "엇!"

 "우와!"

 후시구로의 전술은 흠잡을 곳 없이 매끄러웠다. 마찬가지로 갈지자가 된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바닥에 무릎을 찧어 시름하면서 한편으로는 통쾌해 웃고 아쉬움에 겨워 새살댔다. 득점한 노바라가 환호성을 질렀다.

 "좋아! 나이스! 역시 후시구로야! 머리 하나는 잘 쓴다니까! 으하하!"

 "긴장 놓으면 안 돼. 잔재주만으로는 실력차를 좁히는 데 한계가 있어."

 "한계라니?"

 "아무리 그럴싸한 작전을 짜도 갈수록 통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야."

 "그럼⋯⋯."

 "꾀를 내어 겨루는 게 아닌데 어쩌겠어. 그냥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후시구로가 똑같은 전략으로 나온다니 의아하고도 재밌어서 주책맞게 샐샐 웃으며 파트너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자신의 실책으로 점수를 내주었는데 셔틀콕을 주우러 터덜터덜 걸어갈 때 조금도 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미안, 이타도리 군."

 "괜찮아. 이길 거니까."

 이렇게 하늘이 충충하고 비설거지를 하는 날 아이들끼리 모여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나마 운동도 되고 게임도 되는 것이 배드민턴이므로 저마다 규칙을 꿰고 있음은 물론 승부욕도 있다. 번차례 공을 띄우고 겨끔내기로 주고받으며 하나같이 내기에 열을 올렸다. 마지막 세트에서는 내가 서브를 했고 깔끔하게 승부가 났다.

 "고마워, 후시구로."

 "잘 마실게, 노바라!"

 "⋯⋯."

 "⋯⋯."

 땡그랑. 동전 소리에 자판기 앞에서 또 한 번 희비가 교차했다. 한편에서는 캔을 트로피처럼 받아들고 다른 편에서는 패배의 쓴맛을 아로새기며 초연히 지갑을 열었다. 땀 흘린 뒤에 마시는 음료는 말할 것도 없이 청량했다.

 "둘 다 기운내. 그래도 1세트까지는 막상막하였잖아."

 "후시구로 군과 노바라의 전략적인 팀플레이도 멋졌어!"

 "맞아, 몇 번인가 등골이 서늘해졌지. 솔직히 지기 싫었거든."

 "실은 나도. 내 실수로 지면 속상하니까 이겨서 기뻐. 헤헤헤."

 부랴사랴 뛰어다닌 대가로 팔다리가 욱신거렸지만 마음은 가붓했기에 그 자리에서 날아갈 듯이 방방 뛰어도 모자랐다. 이타도리가 얼굴에 웃음빛을 띠며 서근서근히 내 뒤통수를 도닥였다. 마침내 이겼으니 후련도 하고 그렇기에 더욱 듬직한 그의 손과 나 사이에 감도는 온기가 몹시 훈훈했다. 마치 수고했다 재밌었다 말하는 것 같았다.

 "너네, 이걸로 끝이라 생각하지 마. 다음번에는 무조건 이길 거니까. 그렇지, 후시구로?"

 "그 사이 변화가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네가 다시 한 팀을 제안한다면 거절하지 않을게!"

 후시구로와 노바라는 훗날을 기약하며 주먹을 맞댔다. 그들의 의리는 그것대로 멋있어 보여 조금 부러웠다. 이같이 얘기가 흘렀으니 다음 시합에서도 나의 파트너는 거의 확정된 셈이었다. 실제로 그리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