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병실. 그곳이야말로 부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하다. 슬픔, 두려움, 증오, 원망. 무어라 하나로 정의할 수 없다. 그 중에서 가장 짙은 것은 미련. 말할 것도 없이 삶에 대한 미련이다. 그때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매일같이 그것들이 내게 무서운 발톱을 들이대며 송장처럼 차가운 손이 되어 내 목을 조여 왔다.

 '아무리 좋은 생각만 하려고 해도 자꾸 우울해져. 네가 아프고 괴로워하는데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는 게 답답해 미칠 것 같아. 무엇보다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무섭고 불안해. 나는 이제 여기 안 오는 게 나을 것 같아. 미안.'

 가지 마. 저것들이 나를 데려가게 두지 마.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조용한 병실에 덩그러니 누워서, 천천히 생명력을 잃어 가며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차라리 보이는 편이 나은 것 같다. 보이면 선택할 수 있다. 싸우든 도망치든.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도 없었다. 그것들은 한 발치 떨어져서 가만히 지켜보다 형상 없이, 소리 없이, 그림자처럼 나를 덮쳐 왔다. 어둠이 내려앉고 꾸물꾸물 기어 들기 시작할 때는 숨이 막혔다.

 "꼬맹아. 진정해라. 괜찮으니까."

 "스즈카, 방금⋯⋯ 무슨 일이⋯⋯."

 "아무것도 아냐. 악몽을 꾼 것뿐이다."

 "헉⋯⋯ 저⋯⋯ 숨을⋯⋯ 못 쉬겠어요⋯⋯."

 고전에 온 뒤로 적어도 방에서는 그때와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단지 꿈일 뿐이었다. 내 두려움이 빚어낸 악몽.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이 뭐였는지 알 수는 없다. 주령이라면 오히려 안심이다. 스즈카가 지켜줄 테니까.

 "일어날 수 있겠냐. 아니면 내가 가겠다."

 "아니요. 할 수 있어요. 일어날 수 있어요."

 걸을 때마다 피가 솟구치는 것 같다. 다르르 떨리는 손으로 거지반 흘려 가며 컵에 물을 따르고 약을 삼켰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서랍을 열었다. 기계를 꺼내어 심장박동수를 확인한다. 내게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지겨운 일이다.

 겉보기는 무서워도 별것 아니다. 심박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날 때 숫자가 적색으로 변하며 삐 하고 경고음을 낸다. 심각할 때는 며칠 앓아눕는 것을 각오하고 더 독한 약을 먹거나 재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그래도 대개는 약 먹고 호흡기에 의지해 심호흡하다 보면 서서히 두근거림이 가라앉는다. 숫자도 녹색으로 돌아오고 경고음이 멈춘다.

 "스즈카, 저는 왜 아직도 이런 꿈을 꾸는 걸까요."

 "꿈은 꿈일 뿐이다. 누구라도⋯⋯ 나도 꿀 수 있어."

 "주령도 꿈을 꿔요? 어떤 꿈인지 가르쳐 주면 안 돼요?"

 "웃으며 얘기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들어 볼 것도 없잖냐."

 주령이 부정적인 감정의 결정체라면 그들의 꿈에서 행복이나 즐거움 따위는 찾아보기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들어 보고 싶었는데. 어차피 전부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됐으니 크게 다르지 않을 테고 어느 정도 공감할 자신도 있었다.

 "저, 오늘은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꿈에서 본 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로군."

 "그런 것 같아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글쎄다. 네가 의지하는 녀석과 통화라도 하지 그래."

 이대로는 아침까지 깨어 있을지도 모른다. 지각은 둘째 치고 결석만큼은 하고 싶지 않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베개 맡에 놓아 두었던 자신의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어둠 속에서 액정이 빛났다. 전화번호부를 뒤질 필요는 없었다. 일 번을 꾹 누르면 곧바로 신호가 간다. 그냥, 왠지 모르게.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누구보다 먼저 떠오른다.

 「네⋯⋯ 여보세요⋯⋯.」

 나는 한 마디 말도 없이 곧바로 빨간 버튼을 끌어당겼다. 당황한 나머지 무심코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이다.

 "자는 중이었나 봐요! 저 때문에 깬 거 같아요!"

 "그야 그렇겠지. 지금이 몇 시라고 생각한 거냐?"

 당황하며 시계를 보고 경악했다. 새벽 한 시. 악몽을 꾸고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헉! 어떡해요! 이타도리 군에게 전화가 왔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받아. 네가 먼저 걸었잖아."

 안절부절못하다 에라 모르겠다 초록 버튼을 당겼다.

 "이타도리 군! 미안! 이런 시간에 갑자기 전화해서!"

 「그건 그렇다 치고 깨운 다음 그냥 끊는 건 뭐야⋯⋯.」

 "나도 모르게⋯⋯ 저기, 신경 쓰지 말고 다시 자! 끊을게!"

 「아니. 잠깐 기다려 봐. 이러면 장난 전화밖에 안 되잖아.」

 이타도리가 느릿느릿 이불을 제치고 일어났다. 전화기 너머로 소리가 들려서 알 수 있었다.

 「끊지 말고 기다려. 목이 잠겨서 물 좀 마시고⋯⋯ 알았지?」

 왜 전화했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막상 솔직하게 말하자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애도 아니고 꿈 때문에 갑자기 전화했다니. 내가 침대 밑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그는 터벅터벅 싱크대로 걸어가 물을 따라 마셨다.

 「하아. 이제 내 목소리 어때, .」

 "응? 으음, 왠지 평소보다 멋있게 들려."

 낮의 목소리는 밝고 명랑한 느낌이었는데 밤의 목소리는 조금 낯설 정도로 낮고 거칠었다.

 「그게 아니라⋯⋯ 풉. 고마워. 후후후.」

 나른한 웃음소리를 들으니 긴장이 스르륵 풀렸다. 이렇게도 웃을 수 있었구나. 이타도리 군.

 "이타도리 씨, 어떤 무례한 여자애가 밤중에 갑자기 전화하는 건 처음이시죠."

 「네, 물론이죠. 여자애와 24시간 붙어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처음이고요.」

 방과후에도 같이 자습하고, 산책하고. 너무 귀찮게 했던 것 아닌가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흔들렸다. 어차피 민폐를 끼칠 것이라면 조금만 더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있으면 늘 왜 이런지 모르겠다. 어째서 제멋대로 구는 응석쟁이가 되어 버리는지. 터벅터벅. 드르륵. 창문이 열리고 바람이 울었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그가 내게 물었다.

 「약 먹었어?」

 "응, 먹었어."

 이타도리는 창문에 기대어 바람을 쐬었다. 그의 방에서 보이는 남자 기숙사 밖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밤하늘? 나무? 전통식 건물의 지붕? 나도 창문을 열까 하다가 손가락에 달고 있는 기기를 보고 그만뒀다. 산과 숲으로 둘러싸인 새벽의 학교. 맑은 공기 덕분인지 그의 음성이 한결 가볍고 깨끗하게 들렸다.

 「최근 쿠기사키의 태도가 조금 달라진 것 같더라. 나 때문에 미안해. 믿고 얘기해 줬는데.」

 "이타도리 군 때문이 아니야. 그냥 내가 솔직하게 고백했어. 어차피 얘기할 생각이었거든."

 「그랬구나.」

 "응. 걱정을 끼쳐 버렸지만⋯⋯ 내가 보기엔 그런 것보다 다른 이유로 고민하는 것 같았어."

 「다른 이유?」

 "이타도리 군과 나에 대한 일인 것 같아.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데, 자기가 틀렸으면 좋겠대."

 「⋯⋯.」

 "무슨 뜻일까?"

 「글쎄, 무슨 뜻이지.」

 손가락과 이어진 기기를 보니 더할나위 없이 편안한 상태였다. 때로는 녹색 숫자만 봐도 안심되고 행복마저 느낀다.

 "정말 신기해. 네 목소리 들으면 숨쉬는 게 힘들지 않아. 가끔은 약 먹어도 전혀 소용없거든."

 이타도리에게는 고맙고 미안했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어떤 말을 골라야 좋을지 고민됐다. 말하면 언제나처럼 웃어 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이타도리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러더니 잠시 뜸을 들이다 내게 말했다.

 「.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네 말을 듣고 부담을 느낄 수도 있어.」

 "⋯⋯."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야. 왜냐면 내가 원하지 않아도 가끔 생각하게 되거든. 불쌍하다고.」

 "미, 미안."

 「사과하지 마.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너한테 묻고 싶어서야. 이런 나를 계속 의지할 수 있어?」

 "나는⋯⋯."

 「내가 너를 보고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그래도 친구로 있고 싶다 하면. 내 말을 믿을 수 있겠어?」

 마지막은 제대로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사고가 멈췄다. 깨닫고 보면 앞섬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BPM 80, 90, 100⋯⋯ 숫자가 적색으로 변했다. 그에게까지 들릴 것이다. 흉측한 기계음. 그 전에, 손가락에서 기기를 뺐다.

 「너, 괜찮아? 숨소리가 조금⋯⋯.」

 "헤헤헤. 나도 알아. 말 안 해도 알고 있으니까."

 「정말 알고 있는 거 맞아? 제대로 전해진 거냐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어차피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것, 반대로 더 나쁘게 듣는 것, 아무 의미도 없다. 어차피 변하는 건 없으니까.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숨을 참았다. 당장은 죽을 것처럼 아파도 차라리 그게 나았다. 다행히 이타도리는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맞아.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 없어. 지금은 그거면 돼.」

 "알았어.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 내 걱정은 하지 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어떻게든 넘겼으면 됐다. 스스로 만족했을 때 그가 말했다.

 「흠흠⋯⋯ 이러다 너랑 나 둘 다 늦잠 자겠다.」

 "그렇네. 내일⋯⋯ 아니, 이따가 봐. 이타도리 군."

 의식이 흐려졌다. 전화를 끊자마자 참았던 숨을 단번에 들이마시고 연신 기침을 토해냈다. 결국 쓰러졌지만 그뿐이었다. 어쩐지 아픔이 성가시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딱히 약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냥 가만히 기다렸다. 괴로움은 오늘따라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순순히 물러갔다. 덤덤히 떨쳐내고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역시 밤하늘이려나. 이런 하늘이라면 저절로 시선이 간다.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으니 스즈카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봐, 애송이. 하늘이 너를 아주 버리지는 않았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귀를 기울였다.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말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 같았다.

 "운명이 허락한다면, 그 녀석을 절대로 놓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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