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볼 수 있게 된 거지? 주령."

 "응. 하지만 나는 주령을 보지 못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닌 다른 감각에 의지했달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어."

 "굉장하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 느꼈거든. 나름 오컬트 부에서 활동했는데 말이지. 사사키 선배가 여기 있었다면 너한테 당장 동아리 가입을 권유했을 거야. 네가 느낀 기분에 대해 몇 시간이고 자세히 얘기하게 했을지도."

 주령의 그릇이 되어서 전보다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됐다. 미리 경고를 들었지만 막상 마주하는 순간에는 소용없었다. 주령의 겉모습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것보다는 나를 죽이려 할 만큼의 악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언제나 스즈카와 함께니까 내 앞에 얼마나 많은 주령이 나타나든 어차피 내가 나서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늘어 가기도 해. 만약에, 스즈카도 어쩔 수 없는 상대라면. 나는 어떡해야 되지. 적어도 다른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 싸우는 것 말고. 혹시라도 내가 잘못된 생각이나 판단을 하게 될까 봐 무서워. 이런 거, 이타도리 군이랑은 상관없는 얘기겠지만."

 상대가 보이지 않거나 보이지 않는 척할 수 있을 때는 괜찮았다 치더라도 눈이 마주친 이상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다음 결정은 자신에게 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로서는 간단한 결정조차 섣불리 내리기 어렵다. 단지 무섭다는 이유로 도망을 다니거나 숨어 지내고 싶지도 않다.

 "글쎄. 솔직히 말하면 나도 주령을 처음 봤을 때 무서웠어. 후시구로랑 고죠 쌤한테 은근히 불평도 많이 했어. 할 수만 있었다면 저항했을지도 몰라. 물론,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야. 급할수록 몸이 먼저 나가거든. 아직은 자려고 누울 때마다 그날 좀 더 고민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랬다면 아마 늦었겠지. 아무것도 못했겠지. 몸으로 부딪히는 것밖에 못하는 주제. 주령과 싸울 때, 스쿠나의 주물을 삼킬 때도, 어차피 후회하게 될 거면 뭐라도 하고서 후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누군가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말해 주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거야."

 "맞아. 이타도리 군, 분위기에 금방 휩쓸리지만 그런 것에 비해 불평도 잘 하는 편이지. 헤헤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무섭다는 말을 할 줄은 몰랐어. 무서워도, 후회해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거구나. 듣고 보니까 그건 그것대로 너답다. 덕분에 전보다 분명히 알게 된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네 옆에서 가장 안심할 수 있는 거야."

 "뭐랄까, 잘됐네. 네가 무서워하는 게 주령의 생김새나 오싹한 분위기 같은 게 아니라서 무엇보다 다행이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이건 내 예상인데, 어차피 주령들은 너한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을 거야. 수적으로도 주술사들이 밀리는데 자책할 여유가 있을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떠밀리듯이 선택하게 될걸. 지금밖에 못하는 일 말이야. 여기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그래. 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머지는 어떻게든 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너나 나나 지금과 같을 수 없을 거야. 무서운 것도, 망설여지는 것도, 결국에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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