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영화 고른 놈 누구야. 나와."
동급생끼리 모여 영화를 보는 날이다.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하나씩 가져오기로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원래 소장하고 있던 DVD가 몇 장 있어서 그 중 하나를 빼 들고 왔다. 이제 첫번째로 감상할 영화를 골라야 한다. 노바라가 DVD를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그 중에서 내가 가져 온 것을 집어 들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타도리 너지? 네놈, 이전 학교에서 오컬트 부였다고 들었어." "좋아하는 장르니까 나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냐." "그럼 설마, 후시구로 너냐. 뒤에서 음침하게 이런 걸 즐기는 거냐고." "귀신한테 당하는 건 재미없어. 굳이 말자하면 내가 괴롭히는 쪽이니까." 슬쩍, 손을 들었다. "나야, 노바라. 이제 여름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해서. 공포 영화는 싫었어?" "⋯⋯." 노바라는 DVD를 내려놓은 뒤 내 팔을 부드럽게 움켜쥐며 나긋나긋 달랬다. "내 말은, . 나는 주령을 퇴치해서 밥벌이하는 인간이거든. 걔네가 어떤 낯짝을 하고 있는지 알지?" "응." "그렇게 지쳐 버린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까지 혹사당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던 거야. 화내서 미안?" "응." "우리 귀염둥이가 보고 싶다면 기꺼이 내 한쪽 어깨를 내어 주고 초과 근무를 해 줄 수 있지. 두 시간쯤은." "헤헤헤." 후시구로는 군말 없이 DVD를 기기에 넣었다. 노바라가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이타도리에게 말했다. "너는 왜 당연한 듯이 거기 앉는 건데. 가 무서워할 때 이때다 하고 와락 껴안으려는 거 아냐. 비켜." 이타도리가 노바라의 등쌀에 밀려 주춤거리다 후시구로와 부딪혔다. 노바라는 떡하니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어쩔 수 없지. 무서울 때는 나라도 대신 껴안도록 해, 이타도리." "웬만해서는 주먹이나 팔꿈치가 날아갈 테니까 조심해, 후시구로." 후시구로가 리모콘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영화가 시작됐다. 공포영화답게 인트로부터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노바라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고 나는 해쭉 웃으면서 어깨에 기댔다. 머리맡에서 그녀의 편안한 음성이 들렸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너는 무서울 때 어떻게 해? 그 손으로 옆사람을 빡 때리거나 하지는 않지?" "쿳키에게 귀엽지 않은 모습 보여 주고 싶지 않으니까 조심할게. 무서울 때는 더 꼭 끌어안을 거야. 헤헤헤." 앗차. 내 휴대전화기에도 저장되어 있는 노바라의 이 애칭은 그녀와 둘이 있을 때만 쓰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쿳키?" "쿳키라니." 분위기에 젖어 무심코 입 밖에 내었다. 노바라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쑥스러워하는 얼굴이 귀엽다. 영화 효과음에 묻혀 한쪽에서 작게 들려 오는 그러나 귀에 꽂히는 듯한 남자애들의 중얼거림에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안 돼⋯⋯ 나의 캔디." 내가 쿳키라고 부르면 노바라는 이렇게 나를 불러 준다. 닭살스럽다 해도 좀 더 자주 듣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밖에도 애칭은 있지만 꾹 참았다. 노바라가 멋쩍게 헛기침을 하더니 이타도리의 허리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다. "웃지 마라. 하하하. 이 자식." "아얏⋯⋯ 아까부터 왜 나한테만 그래. 나는 아무 생각 없어. 있다고 한들 쿳키가 감시하고 있는데 어쩌겠어." 예전에 본 적 있는 영화라 짐작은 갔지만 오랜만에 보니 처음처럼 흥미진진하면서 무서웠다. 조금씩 무르익어 가는 분위기, 긴장감 넘치는 음악, 사실적인 효과음. 그 모든 것들이 극한으로 치닫는 순간에는 엉덩이가 들썩였다. "헉." "흐흐흐." "꺅!" "으하하." 나 빼고는, 한마디로 무덤덤했다. 현실도 매일 공포 체험의 연속이므로 마치 일상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의 사운드가 갈수록 박진감을 높인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남자애들이 저들끼리 속닥이는 소리가 얼핏설핏 들렸다.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쿠기사키가 자리를 비울지도 몰라. 오래 앉아 있는 거 못하니까." "둘 다 여자고 딱히 부러워할 이유는 없지만 저렇게 웃는 게 왠지 열받으니까 뺏어야겠다." "그래도 나를 위해 한 번쯤은 고민해. 쿠기사키가 웃길 때마다 나를 때릴 것 같아서 무서워." " 손이 얼마나 매운지 모르는구나. 그 정도 각오가 없으면 껴안을 생각도 할 수 없거든." "그러니까, 생각한 거네. 아무 생각도 없으면 어딘가 문제가 있는 거지. 어디서 내숭이야. 똑같은 놈이." "좀⋯⋯ 너까지 왜 그러는데. 닥쳐. 내 말은, 거기까지 생각했음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마찬가지라고." 솔직히 나는 이 무덤덤한 세 사람이 긴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반대로 내가 노바라를 안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공포 영화를 골랐던 것이다. 물론 그들의 반응을 전혀 예상 못한 것도 아니다. 결국 지금까지와 다른 일면을 보지는 못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도 함께여서 즐겁다. 지금 내 주변 사람들의 그런 부분도 나는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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