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우리처럼 고전의 학생이셨다나 봐. 그리고 후시구로한테 들었는데, 고죠 가문의 당주님이래."

 고전에서의 첫날 고죠 쌤과 만났다. 병원에서 얼핏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은데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것으로 따지면 그날이 맞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키가 무척이나 큰 사람'. 나란히 서면 웬만한 남자들도 다 난쟁이로 만들어 버릴 것 같다. 내게는 거의 고층 빌딩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스즈카가 쌤이라면 질색한다.

 "당주님이라니. '고죠'는 주술계의 명문가 같은 걸까? 잘 모르겠지만 굉장하다. 고전에는 정말 굉장하신 분들 뿐이구나. 당주님⋯⋯ 당주님⋯⋯ 왠지 두근두근해. 그렇게 부르면 화내시려나.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불러 보고 싶어."

 "하하하. 고죠 쌤 좋아하지? 너."

 "응! 좋아! 이타도리 군도 그렇지?"

 "글쎄. 남자들도 많이 쳐다보긴 하더라. 다른 걸 떠나서 체격만으로 충분히 위압감 있잖아. 남자끼리는 그래. 내가 싫어할 수 없는 사람이면 좋아할 수밖에 없어. 무서우니까. 여자가 남자를 보는 거랑 전혀 다르지. 너는 어때."

 "내가 선생님의 제자가 된 건 단순히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 생각해. 딱히 여자친구가 되지 못 해도 기쁠 거야. 어쩌면 계속 같이 있고 싶은 건지도 몰라. 스즈카와 있을 때처럼 안심이 되니까. 그래서 나는 고죠 쌤을 좋아해. 너무 좋아."

 "풉. 뭐야. 네 말대로라면 굳이 고죠 쌤이 아니어도 되겠네. 겨우 안심이 된다는 이유로는 쌤이 너무 아깝잖아. 제자 한 명쯤이야 거뜬하고 더 굉장한 것까지 지킬 수 있는 남자인데. 그런 의미에서 나도 고죠 쌤을 좋아해. 너무 좋아."

 모두 똑같은 선생님의 제자라 해도 한 사람에 대한 이타도리와 내 마음이 서로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타도리의 마음은 무섭다는 감정을 포함해서 자기보다 큰 사람을 향한 공경심에 조금 더 가까웠다.

 그러한 까닭에 나도 고민을 하게 됐다. 자신의 감정이라도 이러쿵저러쿵 말하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지금보다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제관계를 떠나 자신이 선생님을 이성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냐 하면 그도 아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독차지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는 나를 보고 이타도리가 히물 웃었다.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는 뻐근했던 어깨를 한쪽으로 시그러뜨리고 만적만적하며 목소하다 이를 되풀이하는 것에 싫증났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고죠 쌤에 대해서는 후시구로한테 물어봐. 상냥하게 가르쳐 줄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헤헤헤.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분이지. 안대를 쓰는 선생님은 처음 봤어."

 "안대뿐이야? 나도 궁금하긴 해. 어떻게 사물을 분간하실까. 거리는 어떻게 재실까."

 "계속 눈을 가리고 계시는데도 위화감이 없어서 그다지 의문을 갖지 않았던 것 같아."

 "나는 있었어. 딱 한 번. 고죠 쌤 입술이 불쑥 다가와서 무서웠어. 거의 닿을 뻔했거든."

 "꺄! 정말?"

 "어⋯⋯ 정말이야. 나중에 사과하시긴 했어. 엄청 웃으시면서. 근데 평상시 쌤의 텐션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장난 수준이잖아. 솔직히. 그날의 기억이 더욱 악몽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등골이 오싹해지더라."

 "부럽다아."

 "농담이 아니야. 남녀라면 모를까. 나도 고죠 쌤도 남자잖아. 남자들한테 있어서 그⋯⋯ 거리감 유지는 매우 엄격한 사안이거든. 자칫하면 도발이 될 수도 있다고. 어쨌든 첫인상을 확실하게 남겨서 쌤은 만족하신 모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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