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맞아 만물의 일광욕이 한창이다. 창밖의 풍경은 벌써부터 녹색 물감을 마구잡이로 칠해 놓은 듯하다. 머리털처럼 무성히 자란 나무 위로 웃자란 가지가 듬성듬성 우리 교실까지 높게 뻗쳤다. 미지근한 바람은 소리 없이 다가와 치근덕거리고 목덜미를 살살 간질인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남자애들은 시원한 것을 찾아 뛰쳐나갔다.
"피곤한 게 당연하지. 어제 임무였으니까. 제대로 쉬지 못해서 피부도 엉망이야. 좀만 잤음 좋겠는데⋯⋯." 노바라가 늘어지게 하품을 뽑았다. 피곤해 보이긴 해도 나는 그녀의 눈 밑에 오늘따라 그늘이 진 것 빼고는 걱정스러운 부분을 찾지 못했다. 달처럼 환하면서 매끄러운 얼굴과 불긋하고 톡톡한 입술이 지극히 탐스러워 흐뭇했다. "나는 푹 잤지만 노바라가 더 귀여워. 소중한 여자애의 피부를 위해 잠깐 엎드려서 눈을 붙이는 게 어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책상에 엎드려 자지는 않을 거야. 불편한 자세로 계속 앉아 있는 게 오히려 힘들어." "안마해라도 해 줄까." "안마는 무슨. 내가 어르신이냐. 투덜거린 건 나지만 너도 딱히 나한테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 없잖아." 나는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노바라야말로 이 정도로 부담스러워 할 거 없어. 친절은 베푸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분 좋은 거야."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는 가끔 말하는 게 너무 성경책이야. 그 목사님 같은 부분이 부담스러운 거라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노바라가 민망해하는 것도 그래서야. 괜찮아." "아니야! 나는 달라!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딱히 상관없지. 어차피 너를 웃게 만드는 데 그거면 충분하니까." 노바라는 체념하듯 말했다. 그러면서 몸을 웅크리며 귀를 막는다. 나를 보지 않고 듣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내 뒤에서 찬송가라도 흘러 나오고 있는 걸까. 지금까지 어디서도 겪어 본 적 없는 나라는 존재가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피곤한 노바라를 위해서 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가르쳐 주라." "머리가 아플 지경인데 오히려 안심되는 게 더 무서워. 나도 모르게 정화되고 있어." 이렇게 되면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평범하지 않지만 그럴수록 이보다 더 평범한 일은 없다고 합리화 해 버리는 것이다. 일단 노바라의 행동은 그랬다. 그녀가 다시 허리를 폈다. 그리고 자기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안마는 됐고, 이리로 와서 앉아 봐." "앉으라니, 어디? 노바라의 책상에?" 그러나 어정쩡하게 기대어 앉으니까, "그게 아니야. 올라 앉으라고. 폴짝 뛰어." 이렇게 일러 주며 내 팔을 슬쩍 잡아끈다. "네애, 폴짝. 앉았어요. 이제 어떻게 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네 무릎 좀 빌리자." "아아, 그런 거구나." 그녀는 내 넓은 다리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으음, 이거지, 이거. 차갑고 딱딱한 건 싫어." "풉. 이렇게 보니까 노바라도 아저씨 같네애." "그래. 그렇게 말하는 너도 알고 있는 거잖아." "들켰나! 그치, 무릎을 베고 누우면 기분 좋아." 책상 위에서는 발이 붕 뜬다. 바닥에 딱 붙어 소임을 다하는 저로서는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꼴이다. 발끝이 부딪히고 쓰적쓰적 문질러 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보배를 무릎에 올려놓고서 감히 물장구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앗, 깻잎 망가졌다. 잠깐 머리카락 만져도 돼?" "응, 네가 정리해 줘. 자는 모습도 예뻐 보이게." 보배는 예쁨받아 마땅하다. 쓰담쓰담. 아끼면 아낄수록 예뻐지고 나는 몹시도 만족스럽다. 삐져나온 털까지 소중하게 보듬으면 자연스럽게 애착이 생긴다. 행여 누가 건드릴까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노바라, 남자애들이 교실로 돌아오는 것 같아." "그러거나 말거나. 내 머리카락이나 계속 만져." 이타도리와 후시구로가 각각 양손에 음료수를 들고 돌아왔다. 자판기가 멀지 않아 쉬는 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녀올 수 있다. 두 사람의 하얗게 뜬 손만 봐도 얼마나 차가운지 알겠다. 열기와 냉기가 한꺼번에 불쑥 다가온다. "아까부터 계속 하품해대더니 결국 쓰러진 거냐, 쿠기사키." "음료수 네 것도 뽑아 왔어. 하지만 직접 받지 않으면 안 줘." "우리도 잠깐 쉬자. 쿠기사키가 얼마나 바보 같은 얼굴로 자는지 구경하면서." "나도 피곤한데 혼자 보란듯이 쿨쿨 자고 있네. 푸핫, 안 들리는 척하는 거 봐." 노바라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저 얼굴들을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웬만하면 계속 눈을 감은 채로 있고 싶다. 졸리다. 자야 한다. 5 분만. 1 분만. 더위와 갈증까지 참으며 최대한 버틴다. 그러나 이럴 때는 남자애들을 이길 수 없다. "야, 쿠기사키. 진짜 자냐. 너 오늘 아침에 얼굴 부었더라. 어젯밤에 뭐 먹었어." "오, 참는다. 대단한데. 엄청 편한가 봐. 좋겠다. 근데 너 다크서클도 내려왔어." "아 놔 이것들이 듣자듣자 하니까! 저리 안 가!" 쉬는 시간 막바지에 교실이 발카닥 뒤집어졌다. 의자가 엎어지고 교과서가 날아다니고 이건 아주 장난 아니다. 세상에는 얌전한 아이들도 많지만 지금 여기에는 한 명도 없다. 고죠 쌤이 온 뒤 이런 교실을 정리하는 시간은 그냥 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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