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바라." "두 번 말하지 않아도 돼. 듣고 있으니까. 뜬금없기도 하지만, 뭐랄까, 할말을 잃게 만드는 고백이네. 도대체 너 정체가 뭐야. 잠깐 그렇게 웃지 말아 봐.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질문들이 아무 의미도 없게 느껴지거든. 왜. 어쩌다. 애초에 말이야. 나도 내 전부를 사랑할 수는 없는데 네가 내 전부를 사랑하는 건 좀 아니잖아." "그럼 안 돼?" "부탁이니까 나를 보면서 세상의 경이로움을 찾는 듯한 표정 짓지 마. 나도 신을 봤을 때나 느낄 법한 감동을 너한테서 찾고 싶지는 않으니까. 너는 그거야. 인류애가 지나친 거야. 모든 게 네 눈에 비치는 대로라면 참 좋겠다." "헤헤헤. 그렇다고 해서 노바라가 나를 같은 눈으로 봐 주길 바라는 건 아니야. 그냥 내가 노바라를 좋아하지 않으면 나를 좋아할 수 없다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우리 동갑이고 같은 여자애잖아. 너를 보면서 내 목표나 꿈을 조금씩 그려 나가고 있는 거야. 너한테도 네 꿈이 중요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사랑하잖아. 나는 너를 닮고 싶어." 노바라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썹은 모나게 구부러지고 두 눈은 휘둥그레졌다. 입이 조금 벌어졌다. 이것들을 모두 따져 보면 사람의 아연실색하는 표정인데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경악스러움에서 곧 저항은 사라지고 놀라움만 남았다. 체머리를 흔드는가 싶었으나 그마저도 못하고 결국 체념해 버린다. 대신 고민해 본다. 그녀는 무언가 번뜩 생각난 것처럼 고개를 들더니 집게손가락으로 턱을 만지며 말했다. "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잠깐 어렸을 때로 돌아가서, 뭐, 너도 다른 애들처럼 소꿉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가정하고. 너는 주로 어떤 역할이었어? 엄마? 아빠? 아니면 아기? 개? 그것도 아니면 공주? 왕자? 혹시, 기사? 기사였니?" "응! 어떻게 알았어?" "그거야! 문제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문제라고 말해서 미안. 이쯤 되니까 순수하게 파헤쳐 보고 싶네. 내가 여기서 현대판 돈키호테를 보게 될 줄이야. 미리 말해 두지만 기사도 정신은 중세시대에나 통용되는 거야. 너는 누군가를 특별한 이유 없이 좋아하고 아무런 대가 없이 떠받들면서 네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 하고 있어. 그럼 안 돼." "역시 안 되는 거야?" "당연하지! 공주가 되어도 모자랄 판에 기사라니! 그런 정신으로 버티고 살아 봤자 네 자존감만 박살날 거야. 기사도? 낭만? 그딴 건 영화 속에나 있지. 더군다나 너는 여자인데, 남자를 좋아하게 되면⋯⋯ 윽, 생각하기도 싫다. 지금처럼 여자를 좋아하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지. 적어도 여자애들의 환상 속에서는, 왜, 그렇잖아. 멋진 사람이니까." 나는 노바라의 말을 경청하며 마음속으로도 크게 부정하지 않았다. 내 무의식적인 생각과 행동에 어떤 배경이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도 없거니와 가만히 들어 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분이 좋았다. "나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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