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뭐, 좋지. 그러고 보니 도쿄에 와서 영화관에는 한 번도 안 가 봤네."

 "헤헤헤. 영화관에는 다음에 가면 안 될까. 실은 내가 VOD 구매해 놨거든."

 "뭐야, 시시해. 그래, 그래. VOD라도 상관없어. 재밌는 걸로 골랐지. 이따가 갈게."

 "팝콘도 사 놨어.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

 오늘은 노바라와 같이 영화를 본다. 그런 얘기를 언제든지 꺼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침내 한가한 저녁이다. 나는 침대 위를 정리하며 노바라를 기다렸고 약속한 대로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과자 몇 개를 들고 내 방으로 왔다. 준비물은 태블릿 그리고 푹신한 베개뿐이다. 노바라가 베개를 끌어안은 채 화면에 비친 포스터를 보며 말했다.

 "너는 도대체 누구한테 추천받은 거야. 이런 듣도 보도 못한 영화를."

 "실은 나 이거 어렸을 때 한 번 본 적 있어.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었어."

 "무언가 이상한 생명체가 있어. 귀신 같은 게 있다고. 설마, 주인공의 눈에만 보인다든가 그런 건 아니겠지."

 "맞아!"

 "윽⋯⋯."

 노바라는 좀처럼 흥미가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본 적 없는 영화라면 시도를 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포스터가 이래서 그렇지 결말까지 보면 딱히 공포 장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약간 스릴러가 더해진 공상 영화다.

 어느 시골 마을의 버려진 창고. 영화는 거기에 갇혀 억울하게 죽은 소녀 이야기를 보여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주인공이 태어난다. 주인공은 어린 여자애로 묘한 능력을 가졌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녀에게는 보였다. 느껴졌다. 그런 능력을 숨길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너는 누구야. 왜 나한테만 보이지.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 어떻게 해야 믿어 줄까. 주인공의 독백이 흐른다. 마을 아이들이 점점 멀어지고 끝내 외톨이가 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주인공은 자신만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버려진 창고로 간다. 거기에 있던 것은 물론 그녀처럼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니다. 과거의 억울한 죽음으로 원령이 되어 버린 불쌍한 소녀. 죽어서도 창고를 나가지 못하고 저주와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가지 마. 거기 들어가면 안 돼. 주인공이 아이들에게 소리친다. 그러나 화만 돋울 뿐이다. 아이들은 주인공을 놀리고 심지어 밀쳐 버리기까지 한다. 거짓말쟁이. 상처 주는 말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내뱉는다. 주인공 역시 그 아이들이 밉다. 그러나 그녀만이 막을 수 있다. 그녀는 간절히 찾고 있었다. 자신이 더는 혼자일 필요가 없는 이유를.

 주인공은 아이들을 막지 못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이 실종되며 조용했던 시골 마을은 발칵 뒤집어진다. 좌절했지만 주인공도 마음을 다잡고 일어나 버려진 창고로 간다. 주인공은 담담하다.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다. 여기서 원령에 맞서 싸웠다면 공포 내지 퇴마를 주제로 한 액션 영화가 됐을 텐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나는 팝콘을 집어 먹는 김에 노바라의 눈치를 살폈다. 자기 무릎과 베개를 끌어안은 채 그녀는 멍한 얼굴로 태블릿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미없거나 피곤하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아서 일단은 다른 영화도 있다는 말을 해 주었다. 노바라는 괜찮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태블릿 화면에 비친 영상의 색채로 저분저분 물들었다.

 "내버려 두면 좋을 텐데."

 "응?"

 노바라가 갑자기 화장실 좀 쓰겠다며 일어났다. 재생을 멈추고 기다리자니 조금 신경이 쓰였다. 화장실 앞을 서성이다 노바라가 나올 때 자연스럽게 싱크대 쪽으로 향했다. 물을 가지고 침대에 돌아온 나는 노바라에게 물었다.

 "괜찮아?"

 노바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그러나 그녀 스스로 제 마음속에 묵은 체증이 박혀 있음을 안다. 내가 바치고 있던 태블릿을 저리 치운다. 구부리고 있던 내 다리를 우격으로 뻗게 한다. 그 위로 벌러덩 엎어져 머리를 대고 눕는다.

 "너야말로 정말 괜찮은 거지."

 "나?"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냐고 물어봤을 때. 별로 힘들지 않았다고 했잖아. 나는 일단 그 말을 믿고 있어. 근데 만약에. 네가 나를 작년에 만났다면. 아무것도 몰랐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인정해 줬을까. 친구로 지낼 수 있었을까."

 내가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두 사람에게 이야기에 몰입하기 적합한 구석이 적어도 지금의 현실로써는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결말도 주인공이 원령의 한을 풀어 주고 아이들을 찾아 돌아오는 해피 엔딩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럴싸한 이유다. 그러나 노바라는 나와 달리 자신에 대해 그리고 이 현실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노바라가 했던 질문은 과거에 자신에게도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했던 질문이었고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해피 엔딩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도 그때보다는 신중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건 나도 모르겠어. 보이지 않으니까 말도 안 된다고 화냈을지도 모르지. 네 말을 믿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무서웠을 거야. 나는 많이 아팠고, 약했고, 나를 해치려고 다가왔던 존재들은 전부 보이지 않았거든. 어차피 잘 모르니까 그런 게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거야. 단지 이겨내기 위해서 뭐든지 했겠지. 우리가 작년에 만났다면 노바라는 지금처럼 피곤해하면서 불평하면서 멋지게 싸워 줬겠지. 나는 그런 너한테 분명히 반했을 거야."

 "멋지게 싸우긴 개뿔. 나는 모른 척한 적도 많아."

 "그렇구나아. 헤헤헤. 노바라도 힘들었겠다. 그치."

 "딱히⋯⋯ 그래도 이제 내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아."

 "잘됐다! 있잖아, 노바라. 우리 앞으로도 같이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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