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이라면 대련 상대가 되어 주기도 하시는 겁니까."
"그냥 몸이나 풀 생각이었다만. 딱히 못해 줄 것도 없지."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나였지만 다른 훈련으로 이미 지쳤을 법한데 메구미는 오히려 나와의 대련을 반기며 씩씩하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계단을 내려왔다. 메구미가 유지나 노바라에 비해 얌전한 녀석이라 할지라도, 그런 차이가 고등학생의 넘치는 활력을 떨어뜨리거나 감추어 버리지는 못한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여유로운 표정. 가벼운 발돋움. 나와는 다르다. 나도 몸은 고등학생이지만 안쪽은 영락 없는 늙은이라 때로는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난다. "드디어 제 차례네요. 언제쯤에나 올까 생각했어요." "진작 말하지 그랬냐. 유지랑 맨날 하는 게 대련인데." "그러니까 언제나 제가 덤비기 전에 지쳐 계셨던 거죠." "질투하는 것이냐. 지금은 유지가 우선이지만 나중에 질리도록 상대해 주마." "맨손으로 합니까? 스즈카 고젠 하면 검이니까, 저는 주구를 쓰는 것도 좋아요." "좋은 배짱이다. 무기고로 가지. 검을 드는 순간부터 봐주지 않을 테니 울지 마라." 새로운 방과후 훈련이 결정되고 메구미와 나는 보다 적당한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나란히 걸었다. 다른 1학년들이나 2학년들은 오늘따라 보이지도 않고 감감했다. 아마 녀석들도 어딘가에서 저들끼리 훈련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타도리 녀석은 아무 얘기도 듣지 못했나 봅니다. 당신의 힘이 점점⋯⋯." "유지는 모를 거다. 스쿠나에게는 완전히 조롱거리가 되어 버렸지만 말이야." "고죠 쌤은 왜 스즈카 씨에게 이타도리의 훈련을 부탁했을까요. 비슷한 사정이라고는 해도 저는 당신이 언제까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당신에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물론 기쁜 일입니다만." "왜인지 말해 주마. 모두 반대하는 걸 네 스승이 억지로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그건 제가⋯⋯." "고죠는 네가 결정하길 바랐을 뿐 너의 결정을 따른 것이 아니다. 너 혼자 책임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느냐. 일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고죠 대신 유타를 가르칠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 고죠의 판단이 옳았다고는 하나 당시에는 리카라는 계집애를 시한폭탄쯤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더 많았다. 나만 해도 유타가 버텨낼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한데 이번에는 무엇이냐. 료멘스쿠나다. 리카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인데 누가 나서겠냐." "⋯⋯." "내 나름대로는 애쓴 것이다. 나도 주술사들의 적이 되고 싶지 않아.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더라도 원망 마라. 어쩌면 고죠는 스쿠나의 손을 빌려 나까지 치워 버릴 심산인지도 몰라. 더 이상 께름칙한 일은 하고 싶지 않을 테니." "두 분에게는 대화가 조금 필요하겠네요.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주술사들의 편이 되는 것을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등을 떠밀지도 않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구박당하는 것 정도는 참아 주세요." 메구미 너의 말대로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안타깝게도 고죠는 너와 달라. 내가 온전히 자기 편이 되어 싸워 주길 바라고 있을 거다. 생각해 봐, 녀석도 나를 감시하는 데 지치지 않았겠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로를 의심해 왔어. 스쿠나는 어차피 내 능력 밖이다. 그것도 유지의 선택이고 주술사 놈들이 알아서 하겠거니 놔둘 밖에 도리가 없다. 그보다 염려되는 건 다. 여차하면 깽판쳐서라도 비밀 처형만은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 후의 일은 모르는 것 아닌가. 그리고 메구미. 자신의 안위를 위해 위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 이렇게 나를 감싸다 오해라도 받으면 최악이다. 벌써부터 심각하게 여길 필요는 없지만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되어 가는 것 같다. 마음이 복잡하다. "어어!" 메구미와 합을 나눴다. 아차 하는 순간 몸이 기울었다. 쿵. 엉덩방아를 찧고 어처구니가 없어 녀석을 멍하니 쳐다봤다. "메구미, 너⋯⋯ 하하하!" "간신히 뒤통수는 지켰네요." 메구미가 일으켜 주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모처럼 보기 좋게 넘어졌으니 손사래를 쳤다. 숨을 돌리기 위해 두 다리를 쭈욱 뻗었다. 훈련 감독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상대는 아직 어리고 손봐야 할 부분도 많지만 어렸을 때부터 고죠 밑에서 꾸준히 단련해 온 놈들이라 만만치 않다. 돈을 더 받아야 하는데. "맙소사. 내 어디가 망가지긴 했나 보다. 방금 건 예전에 내가 너한테 알려 줬던 속임수 중 하나잖아." "그냥 알려 주시지는 않았어요. 뒤통수에 커다란 혹을 다는 것으로 대가를 치렀죠. 얼마나 아팠는데요." 배움에는 시련이 따르는 법. 다만 그랬냐 하고 메구미의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아이고 허리야. 이 녀석, 이제 보니 그냥 몸이 근질근질했던 것뿐이구나. 나랑 놀고 싶었던 게냐. 하하하." "실제로 스즈카 씨에게 배운 기술 중에는 교묘한 속임수 따위가 많습니다. 좀 치사할지는 몰라도 아주 편해요." "아유, 똑똑해. 그래, 유지와 대련하게 되면 십분 활용해라. 너는 이 녀석아, 정면으로 부딪혔다간 뼈도 못 추린다." "뼈도 못 추린다니⋯⋯ 저, 저도 지금까지 신체 능력으로 어디 가서 창피당한 적 없습니다. 이타도리가 너무 센 거죠." "서로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게 귀엽구만. 괜히 너희들끼리 시기하지 마라. 고죠의 제자들에겐 저마다 장점이 있어." 비록 내 엉덩이에는 멍이 들겠지만 메구미의 뺨을 쓰다듬었다. 녀석도 싫지 않은지 얌전히 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딱 이 만큼만 와도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만은 그런 것까지 참견하려 들면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 메구미는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 "제게 다른 애들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점이 있다면 뭐라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가 있지. 아주 많아.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특출난 것은 색기다." "색⋯⋯ 스즈카 씨." "못할 말이라도 했냐? 하여간 요즘 꼬맹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쯧." 이렇게 속으로 낄낄 웃으며 능청을 떨어대자 메구미가 싫다는 듯 돌아앉았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농담도 아니다. 요즘에는 색기라는 말이 다분히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모양이지만 옛날에는 그저 매력을 대신하는 말이었고 나도 그 정도 의미로 쓴다. 고전적인 시각으로 보면 메구미처럼 조용하고 무거운 사내가 유지보다는 이상적인 남성상에 가깝다. 여기서 나만큼 낡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까. 메구미는 저만의 훌륭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따금씩 고죠와 똑같은 짓을 해서 등골이 서늘해지지만 그건 그것대로 귀여우니까 됐다.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