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씀 마세요. 갈 길이 멀거든요."

 요즘에는 반강제 자습을 한다. 방과후에는 느긋하게 쉬고 싶지만 애들끼리 정한 거라 별 수 없다. 메구미의 방에 모이기로 했는데 유지와 노바라가 훈련 때문에 빠졌다. 는 그 둘이 없으면 어쩔 줄 몰라해서 내가 나왔다.

 "저기, 메구미. 말인데. 아직 다른 애들에 비해 진도가 늦은 편이지? 네가 보기에는 어떠냐?"

 "좀 미안하지만 본인이 더 잘 알 테니 말씀드릴게요. 그녀는 몇 학기 건너띈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대부분 병원에서 보냈다. 학교는커녕 병실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는 녀석이었으니 고전으로 오기 전 제대로 수업을 들었던 건 아마도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느릴 수밖에.

 그리고 메구미는 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에 대해 누구에게도 자세히 묻지 않았을 것이다. 메구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오직 하나. 내가 그녀의 몸에 강생할 때 강제력을 동원했는가 안 했는가. 그뿐이다.

 "무리하지 말고 잠깐 쉬세요.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더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후후후. 듬직하구나."

 꼬맹이 덕에 공부할 게 산더미다. 그릇을 바꿀 때마다 불가피한 일이다. 그들의 직업이나 신분에 따라서 최소한의 노련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 지금은 내 그릇이 고등학생이므로 좋든 싫든 간에 고교 과정을 공부하는 것이다.

 보기 중 옳은 것을 모두 고르시오⋯⋯ 그것 참 인간다운 질문이다. 나는 지금도 놈들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 어쨌거나 내게 질문을 하면 대답하고 틀리면 혼나야 한다. 그들이 나를 내버려두기 전까지는 계속 그래야 할 것이다.

 "그릇의 얘기입니다만.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셨는데, 제 또래의 몸에 강생한 게 처음은 아니시죠."

 "물론 처음은 아니지. 다만 그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그 시대에 네 또래는 아이가 아니었어."

 "그럼 현대의 학교 생활을 몸소 체험하시는 건 처음이라 봐도 되겠네요. 처음치고 잘하고 계세요."

 "네 스승도 거기에 공감을 좀 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대로 가면 다음 학기도 보충 수업 확정이다."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쌤이 항상 붙어서 봐 주실 수는 없잖아요. 제가 같이 남아 드릴 수 있어요."

 "고맙지만 내 대답은 노 땡큐다. 가끔 도와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너는 너의 학습에 집중하거라."

 "제 말이 그다지 위기감을 드리지 못했나 보군요. 다음 학기는 이번보다 더 힘들 텐데요."

 "그래도 메구미 네가 전부 안고 갈 필요는 없잖느냐. 유지도 있고 노바라도 있다. 괜찮아."

 "이타도리의 얼렁뚱땅 설명만으로는 어림없어요. 쿠기사키도 제 코가 석 자라 안 됩니다."

 오래 전, 나는 답을 정했다. 살아 있는 동안 인간들과 부딪히지 않겠다고. 그때부터 불가피하게 그들과 가까워질 때마다 쏟아지는 질문의 답을 찾기가 두려웠다. 그 중에서 유난히 어려운 게 '무엇이 옳냐'인데, 정말 너무한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할말이 없다. 있다고 해 봤자⋯⋯ 너는 좋은 남자애다, 메구미. 할 수만 있다면 이대로 네 옆에 있고 싶어. 내 관점으로는 네가 고죠의 제자라는 것 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만. 그래도 내가 나쁘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부담 드리려는 게 아니니 편하게 생각하세요. 앞으로 저를 친구로 여겨 주실 수 없습니까."

 "뭐?"

 "스즈카 씨랑 나, 동급생이에요. 이미 서로에게 충분히 익숙해져 있고요. 안 될 거 없잖아요."

 그 순간 메구미의 시점에서 내 모습을 한 번만 보고 싶었다. 보자보자 하니까 이 꼬맹이가. 친구라니, 내가 로 보이냐. 어어 그래 나랑 아예 맞먹겠단 거지. 기가 막혀서 얼굴이 다 벌개진 듯 화끈거리고 심박수가 올라갔다.

 "허락하신 거죠. 이제 문제를 봐 주세요."

 "⋯⋯."

 대상이 틀렸어. 지금 얘기하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잊어버린 거 아냐. 그렇게라도 말렸어야 했을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말았다. 메구미의 한마디가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있던 것들을 깨끗이 쓸어 버린 탓이다.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