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완.전. 힘들어! 죽을 거 같아!"
"결국 쉬는 시간은 한 번도 없었네." "오랜만에 스트레이트로 쭉 나갔어." 오늘 수업은 정말 힘들었다. 마땅히 할일이 없었던 나도 반나절 넘게 꼼짝없이 붙어 앉아 수업을 듣는 꼬맹이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지쳤을 정도다. 마침내 모든 수업이 끝나고, 녀석들은 한 명 씩 쓰러지며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교실이 다시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평소처럼 웃고 떠들 기운도 남아 있지 않나 보다. 오늘은 내가 생각해도 고죠가 너무했다. 잠시도 쉬지를 않고 복대기더니 자기도 교실에서 나갈 때는 걸음걸이가 휘청휘청했다. "노바라, 괜찮아? 내가 어깨 주물러 줄까?" "너는 이럴 때까지⋯⋯ 천사냐! 예쓰! 두 잇!" 그 와중에 싱글벙글인 기꺼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바라의 어깨를 주물렀다. 몸은 다른 녀석들에 비해 약하지만, 뭐랄까, 정신적인 부분에서 의외로 듬직한 면이 보인다. 학교를 너무 그리워했던 나머지 힘든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으으. 어어어. 그새 많이 늘었네. 솔직히 처음에는 겁나 아프기만 했어." "역시 아팠구나. 참지 않아도 되는데⋯⋯ 여러 가지 알아봤어. 이건 어때?" "오오오. 우우우. 그거야. 어디서 뭘 본 거야. 오 마이 갓! 여기가 천국인가!"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나는 편의상 그녀의 뺨에 눈과 입을 내놓는다. 그리고 그녀와는 다른 각도의 풍경을 바라보게 되는데 여기서는 남자애들이 보인다. 메구미는 노트 정리 중이고 유지는 책상에 반쯤 누웠다. "쿠기사키, 남탕도 여기보다 시끄럽진 않거든." "어쩌라고? 네가 칠판 지우면 조용히 해 줄게." 노바라 녀석, 조금은 사근사근하게 말해도 될 텐데 말하는 게 사내놈과 다를 바 없다. 옷이라든지, 화장이라든지, 겉모습은 보다 훨씬 잘 꾸미고 다니면서 정작 남자애들한테는 관심이 없달까, 웬만해선 의식하지 않는다. 녀석이 유일하게 신경쓰는 게 있다면 지금 뒤에서 열심히 어깨를 주무르고 있는 다. 가끔은 유지나 메구미보다 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직 어리다 보니 동성에게 더 관심을 갖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 아직 다 못 썼어. 칠판은 내가 이따 지울게." "다 하고 노트 내놔. 나는 도중에 포기했으니까." 노바라의 매력은 당당함에서 나오는 것이라 조금 뻔뻔해도 괜찮다. 처음에는 투덜거리던 메구미도 이제 익숙해졌는지 콧방귀를 뀌며 한 번 쳐다보고 만다. 내 앞에서는 점잖은 모습만 보이려고 하니까, 어찌 보면 노바라 덕분에 나도 메구미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언짢아하는 얼굴 등 더 다양한 표정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젠장, 부럽네애. , 나도 해 주면 안 될까." "인마, 부러운 건 이해하지만 네가 그럼 안 되지."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미 받은 건 어떡해." "너 이 자식 그렇게 안 봤는데, 잘했다. 좋았겠네." 사내놈끼리 통하는 게 있는지 유지와 메구미가 진득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계집애들은 섬뜩할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마저 귀여울 따름이다. 시선을 알아챘는지 메구미가 나를 봤다. 눈이 마주치자 응큼한 늑대는 다시 들어갔다. "누가 남자 어깨를 막 만지고 다니래. 혼나야겠어." "쿠기사키 어디 만지고 있냐! , 당장 이리 와!" 엉덩이를 쓰다듬는 것으로 벌하고 있는 뻔뻔한 손을 유지가 알아차리고는 소리쳤다. 결국 유지의 어깨도 주물러 준다. 두 녀석에게만은 방해가 될 수 없어서 잠깐 들어왔다. 나야 굳이 뺨에 나와 있을 필요는 없다. "아, 시원해. 이제 됐어, ." "벌써? 나는 괜찮으니까 더 해 줄게." "으응, 아니야. 너도 힘들잖아. 고마워." 시점으로 보면 분명히 와 닿는다. 녀석이 다른 누구도 아닌 유지에게 의지하는 이유. 고락간에 유색완용하니 마음을 열기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이 유지의 전부는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새살떨고 있어도 속은 차분하면서 냉정하고, 드러내지 않을 뿐 영악한 구석도 있다. 그런 녀석이기에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헤헤. 이렇게 된 거 후시구로 군까지 해 줄까." ", 이 학교 남자들을 죄다 주무를 셈이야?" 이래 봬도 메구미와 조금이나마 친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굳이 따진다면 메구미는 유지와 반대라 할 수 있다. 상당히 속이 깊은 놈인데도 상대가 남자건 여자건 불필요한 배려는 하지 않고 때로는 직설적인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래서 내 솔직한 생각은, 메구미의 무관심이 에게는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 "됐어. 내 옆에 오지도 못하잖아, 너는." "나는⋯⋯ 아, 그렇지. 스즈카. 도와줘요." 결국에는 내게 SOS를 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다지 일상적인 일은 아니지만 한쪽이 곤란해하고 있을 때 나서서 돕는 게 나와 그릇 사이에 정해진 불문율이다.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니 일단 뺨에 나왔다. "꼬맹이들이! 누가 나를 오라 가라 해?" "아이고, 어깨야. 아직도 쓸 게 많네⋯⋯." 메구미가 고단한 듯이 제 손으로 한쪽 어깨를 두드렸다. 메구미 옆에는 가지도 못하는 에 비하면 내가 그의 주변에 있는 건 평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쌔한 기분이 들어 다가가기 망설여졌다. 갑자기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말이 없고 뻣뻣하게 서 있는 나를 유지와 노바라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나로서도 분명히 알 수는 없다. 그저 메구미는 누구보다 고죠 밑에 오래 있었으니 아무래도 가끔 그렇다. 괜히 불안하다.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내 직감을 믿기로 했다. 불길할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몸부터 사려야 한다. 무언가 메구미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 있고 뭐든 간에 싫은 생각밖에 안 든다. 지금은 넣어 두는 게 좋다. 분명 그게 나을 거다. 메구미까지 거들지 않아도 나는 여기 고전에서 주술사에게 둘러싸인 채 가슴 졸이며 지내고 있다. 언제 누구한테 해코지당할지 모르는 내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는 남자다. 일부러 따지듯이 힘을 실어 꾹 눌렀더니 바로 불평이 돌아왔다. "아야얏, 아파요. 스즈카 씨는 그 안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나 봅니다. 안마가 형편없네요." "메구야, 공부도 중요하지만 적당히 하고 들어가서 자야지. 계속 그렇게 무리하면 키 안 큰다." 좀 더 따지고 싶지만 힘을 빼고 단단히 뭉친 어깨를 살살 문질렀다. 이러고 있으니 내가 정말 이 놈의 하수인이라도 된 것 같다. 유지가 없으면 그나마 나을 텐데. 영감태기가 지금 내 꼴을 누워서 구경하고 있다 생각하면 차라리 죽고 싶다. "메구미 네가 나한테 이러면 안 되지⋯⋯." "당신이 이러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은데." 내 발로 걸어오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진심으로 안마를 할 마음이 없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메구미가 장난치고 있는 것뿐이라 믿었고 시늉만 해도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나 더 부려먹을 셈인지 좀처럼 만족할 줄을 모른다. 혹시라도 다른 애들이 없을 때 내가 저한테 어떤 모습들을 보였는지 다 말해 버릴 셈이라면, 그렇다면, 나도 가만 있지 않을 거다. 오히려 눈치볼 필요가 없으니 갈 데까지 가는 거다. 그 와중에 반말 듣는 건 오랜만이라 먹먹했다. "쿠기사키, 저거⋯⋯ 좀 위험해 보이지 않냐." "뭔가 있네, 있어. 야릇한 낌새가 느껴지는걸." 유지가 노바라에게 가서 그녀와 쑤군거렸다. 목소리를 낮춰도 들렸다. 그 정도는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만든 시점에서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단호하게 그런 거 아니라고 못을 박아 놓아야 하는 걸까. 별로 자신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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