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이제는 어떻게 되든 그냥 해 버리자."

 술래잡기 한다면서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가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지만 차마 웃을 수 없다. 여러 가지로 기존 술래잡기와는 다른 전개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 또한 훈련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꼬맹이들을 가르치는 게 내 일이거니와 한 번 하자고 약속한 것을 언제까지고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술래는 접니다."

 "가위바위보로 정해야지."

 "아뇨, 오늘은 제가 오니예요."

 오니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메구미가 오니면 나는 뭐지. 도망가는 쪽이니까 인간인가.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야, 무서워라. 섹시한데. 상상 정도는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로 반대 입장이 되는. 기왕이면 제대로 어울려 주는 편이 좋겠지. 꼬맹이는 이런 도발에 어찌 반응할까. 나는 메구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이봐, 주술사 나리. 나한테 퇴치당할지도 몰라."

 "그렇지, 참. 스즈카 씨도 여차하면 주력 쓰세요."

 어쭈. 반대로 도발해 오니 나도 훈련 보다는 진지하게 골탕먹이고 싶어졌다. 이제는 내 주특기가 주술사 놈들로부터 도망다니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좀 내버려두라고 이것들아. 이참에 훈련을 빙자해서 조금 아픈 꼴을 보게 해 줄까. 아니, 아니.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진짜 다치게라도 했다간 최종 보스 마왕이 등판할 테니까. 어차피 내가 지는 건 정해져 있다. 그렇다고 심각해질 필요는 없지만 메구미가 드물게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어떻게 나올지 짐작할 수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눈 감았냐?"

 "네, 지금부터 10초 셀게요."

 잡힐 때는 잡히더라도 튀고 보자. 나는 숲 쪽으로 뛰었다. 10초가 평소 보다 길게 느껴졌달까, 도망치기에는 충분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메구미가 나를 찾지 못할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뭐야 저거. 설마하니 누에냐. 급한 대로 나무 밑에 숨었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냄새를 쫓아 빠르게 다가오는 그것. 소름이 쫙 돋는가 하면 메구미와 옥견이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다.

 "숨바꼭질 아니에요. 계속 달리셔야죠."

 "아아아악!"

 "도망쳐요. 도망치지 않으면 조복합니다."

 "싫어어어어어!"

 조복한다니. 나는 그렇다 치자. 내 그릇은. 1+1이냐.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리지만 거의 잡힐 뻔했을 때는 식겁했다. 스즈카 고젠, 언제까지 이런 굴욕을 당하며 살 것이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킁 삼킨 뒤 숲을 빠져나왔다.

 "스즈카 쌤이랑 후시구로네. 뭐 하는 거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데. 피해 줘야 되나?"

 "다시마?"

 운이 좋았던 걸까. 맞은편에 2학년들이 보였다. 설명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 때문에 일단 도움부터 청했다.

 "마키! 판다! 토게! 너희들 메구미 좀 막아!"

 셋 중 누구도 메구미가 나를 쫓아오는 상황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가 가관이었다.

 "힘내라, 후시구로. 꼭 조복하라고."

 "식신도 나눠 가질 수 있음 좋겠다."

 "연어."

 저것들이 뭐래. 그 와중에 탐을 내고 있고 있어. 네놈들에게 식신이나 주물은 전리품인 거냐. 웃기지 말라고.

 "그러니까 학장님. 이번 건은 내 선에서 처리하게⋯⋯ 음?"

 "거기! 누가 교정에서 뛰어다니며 소란을 피워대는 것이냐!"

 "고죠! 마사미치! 도와줘! 나는 아직 식신이 되고 싶지 않아!"

 그럼 그렇지. 고죠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 구경만 하고 마사미치는 진절머리가 나는 학칙만 외워댄다.

 "하하하. 역시 내 제자야."

 "이쪽 얘기를 마저 끝내지."

 애초에 기대도 안 했지만 슥 쳐다보고 끝이었다. '지금 바쁘니까 귀찮게 하지 말고 저쪽 가서 놀아'라는 분위기였다. 오늘은 외로움에 사무쳐 엉엉 울다 잠들지도 모른다. 어쩌다 내가 주술사들이 득실거리는 이런 곳에 덩그러니 놓여졌을까. 도움을 구하는 건 포기하고 다시 숲으로 도망쳤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으로 맞서는 수밖에.

 "헉⋯⋯ 헉⋯⋯ 지금까지 나를 그런 눈으로 봤던 거냐."

 "그랬을지도요. 식신술사니까 목표는 늘 크게 잡습니다."

 "꼬맹이가 제법이구나. 하나 너에게 이대로 순순히 잡혀 줄 수는 없다."

 "지난번에. 당신이 제 발로 들어와 잡혔을 때. 놔주지 말았어야 했나요?"

 "나쁜 놈들⋯⋯ 아무도 안 도와주고. 저주나 받아라. 죽어! 다 죽어 버려!"

 메구미가 괜찮다 해도 주력은 쓸 수 없다. 대신 근처의 나뭇가지며 풀떼기며 손에 잡히는 걸 마구잡이로 던져 분풀이했다.

 식사술사는 전부 변태다. 적어도 나를 조복하고 싶어했던 놈들은 틀림없는 변태였다. 집착도 그런 집착이 없다. 그렇지 않은가. 죽이러 온 거면 깨끗하게 죽이고 끝낼 것이지 왜 소유하려고 그래. 왜 길들이려고 하냐고. 어우, 진짜.

 차마 징그럽다고는 말 못하겠고 몸서리치며 도망치려다 결국 붙잡혀 메구미의 품으로 쓰러졌다. 중심을 잃고 꽈당 주저앉았다.

 "하⋯⋯ 잡았습니다. 드디어."

 어차피 더 뛰는 건 무리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메구미도 숨이 거칠어서 뜨겁게 달아오른 숨결이 귓등에 떨어졌다. 도망치지 못하게 나를 붙잡고 있던 그가 비로소 팔을 풀어 줬다. 모처럼이니 진정될 때까지 쉬자는 생각에 몸을 기댔다.

 "놀라울 정도로 평소와 텐션이 다르더군. 내가 졌다. 더는 도망치지 않으마. 조복하든 뭘 하든 마음대로 해."

 "진짜 붙잡혔을 때는 무슨 일이든 하시나 보죠.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래도 고마워요."

 기껏 잡아서 놔준다니 식신술사답다. 목적이 조복인 경우 놈들은 일부러 이렇게 몇 번 봐주기도 한다. 쫓아올 때도 소름이 끼치는데 놔줄 때는 더 변태 같다. 원하는 게 뭐야. 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굴복시키고 싶은 거냐.

 "풉, 지쳤습니까. 저한테서 도망치는 사이 상당히 시달린 듯한 얼굴이 됐어요."

 "윽⋯⋯."

 이참에 갈 때까지 가 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쪽은 이미 당할 대로 당해서 더는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데.

 "이걸 때릴 수도 없고⋯⋯ 진짜 뜨거운 맛을 보여 줘? 나중에 봐달라고 울지 마!"

 "네, 좋아요. 그래도 조금 봐주세요. 당신에 비하면 아직 어리고 경험도 없잖아요."

 그대로 마주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장난처럼 툭 때리고 다시 기댔다. 그때는 네가 나를 상대해라 꼬맹아. 잊어버리기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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