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가운 마음에 달려왔지만 조용히 쉬고 있는 메구미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일부러 한 계단 아래 앉았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더니. 네모난 것에 또 한눈을 팔고 있다. 이름을 부르자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판자때기만 쳐다보길래 그냥 불러 봤다." "판자때기⋯⋯ 태블릿 말이죠.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보여주기 싫으면 관둬라. 약올리지 말고." "지금은 딱히 곤란하지 않아요. 그래서 유감입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요. 마음대로 보세요. 혼자 봐도 재미없으니까요." "뭐야⋯⋯ 사진이었냐." "스즈카 씨의 사진입니다.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메구미는 얌전한데다 그다지 다정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 친해지면 장난도 곧잘 친다. 태연한 얼굴로 농담을 하거나, 제 스승처럼 은근히 비꼬길 즐긴다. 이번에도 그런 것이 아닐까 했는데, 태블릿 화면을 보고 머쓱해졌다. "이해할 수 없구나. 네 곁에 있는 이를 무시한 채 판자때기 속 사진 따위를 보는 것은 무슨 연유에서냐."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얘기라도 하지 않으면요. 악의적으로 무시했던 건 아닙니다."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이야깃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내가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었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지난 얘기든 뭐든 상관없으니 나도 같이 보자." "가까이 가도 될까요." "당연하지. 왜 물어봐." "왜냐니⋯⋯ 앞으로 먼저 물어보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나는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다. 메구미가 이상하리 만큼 나를 쳐다보며 바짝 다가왔다. 태블릿은 무릎에 올려 놓았다. 나로서는 옛 얼굴을 봐도 즐겁지 않으니 바로 옆의 소년을 바라보았다. 지금보다 어린 중학생 시절의 메구미. 질풍노도의 정점을 찍고 있었는지 쌈박질을 하고 다니기에 한심한 꼴을 하고 나타날 때마다 벌주는 셈치고 사진을 찍어 남겼다. 메구미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와 찍은 사진은 멀쩡한 얼굴 보다 까지고 멍든 것이 더 많고 표정이 썩 좋지 않다. "이때만 해도 점잖은 숙녀셨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는 말이군." "스즈카 씨의 성격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그릇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가에 따라서 말이지요." 메구미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모습이 바뀌어도 나는 나지만 적응하는 과정 속에 크고 작은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인간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당연히 나도 환경의 영향을 받고 함께 생활하며 닮아 가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번에도 그릇 때문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점잖은 느낌으로부터 벗어나 귀여워지셨다고 생각합니다." "귀여⋯⋯ 착각이다! 아무리 그릇이 어려졌다지만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너 이 놈, 나를 놀리는 것이렷다? 까불지 맛!" 예전처럼 꿀밤을 때려 줄까 하고 다섯손가락을 움켜쥐었지만 차마 휘두르지 못했다. 딱히 그새 성질이 죽은 게 아니다. 내 그릇은 사춘기 소녀다. 더구나 동급생 앞이다. 이제 아줌마처럼 주책떨면 안 되고 짐승처럼 날뛰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화내고 있는 거 맞습니까. 하나도 안 무섭네요." 메구미도 알고 있다. 예전같았음 벌써 꿀밤이 날아왔다는 걸. 그러니 이 상황이 마냥 재미있을 것이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겠지. |
<제작> Copyright ⓒ 공갈이 All Rights Reserved. <소스> Copyright ⓒ 카라하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