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구미와 저녁을 먹는다. 조금 전 임무를 끝낸 뒤 돌아오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개인적인 일이 있을 때는 자신의 옷을 입지만 오늘은 것을 빌려 입었다. 화장도 평소처럼 했더니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대로 했다. 백분, 연지, 끝이다. 꼬맹이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스즈카, 기분 좋아 보이네요."

 침대에 앉자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계를 보니 약간 여유가 있었다. 나는 태연하게 그녀의 왼쪽 뺨에 나왔다.

 "그럼 좋지. 뭐야, 내가 기분 좋아 보이는 게 거슬리냐?"

교대하고 싶을 때마다 내게 허락을 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지 않는다는 건 불만이 있다는 뜻이다. 그녀의 불만에는 나도 일단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니요. 스즈카가 나를 예쁘게 꾸며 주니까 사랑받는 기분이에요. 내 옷을 입고 나처럼 화장하는 게 기뻐요. 뭘 입을까, 어떻게 꾸밀까, 의논하고 싶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냥, 나가기 전에 고죠 쌤한테 전화 한 번 해 봐요. 네?"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라고. 데이트 해도 되냐고 물어봐?"

 "그래요! 왜냐면⋯⋯ 왜냐면⋯⋯ 쌤이 걱정할지도 몰라요."

 "고죠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아, 메구한테 전화 왔다."

 "후시구로 군을 그렇게 부르는 것도 그만둬요. 남친도 아니고."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불평이라면 나중에 들어도 된다. 나는 말을 듣지 않고 교대가 이루어짐과 동시에 전화를 받았다. 만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나. 그래서 어디에 갈지 물어보려고 전화했나.

 "메구미, 잘 오고 있냐. 나도 준비 다 했다."

 「스즈카 씨. 네, 지금 차 안이에요. 근데⋯⋯.」

 "근데 뭐? 설마 너, 다친 건 아니지? 괜찮은 거냐!"

 「아니, 아니에요. 학교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어요.」

 "또 임무냐. 하⋯⋯ 알았다. 그럼 후딱 해치우고 와."

 「저도 그러고 싶죠. 하지만 저 혼자 2급 상대라구요.」

 "이것들은 어째 하루도 쉬질 않아. 밥도 못 먹게 하고."

 「하하하. 어쩌면⋯⋯ 밤이 되어서야 돌아갈지도 몰라요.」

 임무 때문에 약속을 미루게 되더라도 거기서 메구미를 부추겨 위험을 부를 수는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약속보다는 일이 중요하고 일보다는 안전이 우선이다. 물론 나도 알고 있지만 오늘은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거기가 어딘데."

 저녁 하늘이 예쁘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변덕 부리듯 옥빛으로 잿빛으로 모습을 바꾼다. 그나마 주령은 인간만큼 감상적이지 않아 주술사도 아닌 나한테 죽임을 당한 이것에게 하늘은 옥빛이든 잿빛이든 그저 하늘이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너도 불만은 없겠지. 내게 너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지만 인간들은, 주술사들이 너를 죽임으로써 다른 인간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하면 나도 그리 믿는다. 시비곡절을 따지는 것은 인간들의 특기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나도 딱히 놈들이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내가 아는 것은 단지 인간들이 언제나 큰 악을 피하기 위해 작은 악을 택한다는 거다. 나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야. 어차피 더 나은 선택지도 없지 않으냐.

 "느리다, 느려. 여자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면 쓰나."

 "그럼 저녁 약속은 취소하고 훈련이라도 받을까요."

 "안 돼. 내가 못 기다려. 그래서 마중까지 나왔잖아."

 메구미가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잇따라 내린 보조 감독은 이러한 상황에 경악을 했다. 나는 주술사들의 원칙 따위 모른다. 결계 없이 주령을 해치우든 뭘 하든 내 맘이다.

 "괜찮습니까."

 "내가 누구냐."

 보조 감독처럼 입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메구미도 주령의 시체 위에 앉아 있는 나를 봤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괜찮다는 걸 다시 한번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멋있는데요."

 "비꼬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스즈카 씨 덕분에 저는 힘 하나 안 들이고 일을 처리한데다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됐는걸요. 보고서를 어떻게 꾸며서 제출할지 고민하는 것은 원래부터 제 몫이었으니 더욱 할말이 없죠. 얼마나 좋아요."

 어쨌든 메구미를 되찾는 데 성공한 나는 그에게 팔짱을 끼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보조 감독이 잔소리할 줄 알았는데 말없이 고개만 젓고 넘어가 줬다.

 "헤헤헤. 꼬맹이들 치다꺼리 하느라 수고가 많다."

 "당신은 꼬맹이가 아니잖습니까! 스즈카 고젠 씨!"

 "아니지. 나는 주령이거든. 그래서, 나도 퇴치할래?"

 "누가요? 제가요? 좋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에게 덤빌 테니 저를 죽이십시오. 제가 죽으면 후시구로 군이 보고서에 뭘 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그 또한 좋은 일 아닙니까."

 무슨 말을 해도 보조 감독의 화만 돋울 게 뻔하니 메구미와 조용히 뒤로 빠졌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했다. 이제 뭐라도 할 수 있겠구나. 거리가 떠들썩해지는 시간이다. 우리처럼이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나란히 걷고 있는 연인들이 적잖이 보였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스즈카 씨도 주령에게는 가차없으십니다."

 "너희 주술사들은 그렇게 모든 골칫거리들을 싸잡아 주령이라 부르지. 우리는 안 그래. 인간들이 모기를 때려잡는 것처럼 나는 그것을 죽일 때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모기라구요⋯⋯ 2급 주령이⋯⋯ 뭐랄까, 아이러니네요. 저도 2급 주술사 나부랭인데 같이 밥을 먹어 주시는 겁니까?"

 "네놈들은 그 유치한 숫자 놀음 좀 그만하면 안 되냐. 왜, 아예 이마에다 '2급' 딱 써 붙이고 다니지. 그럼 더 편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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