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메구미를 생각할 때면 삐죽삐죽한 머리카락과 단정한 고전의 교복 차림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중학생 때의 밝은 색 블레이저도 병아리 같고 풋풋해서 귀여웠지만 지금은 어두운 남색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어쩐지 오늘은 교복이 아닌 사복 차림이다.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어딜 다녀왔나. 데이트라도 했나. 궁금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메구미의 모습이 평소와 조금 달라서 놀랐다. 부스스하달까. 가까이서 보니 얼굴에 생채기도 보였다.

 "하하하. 메구야. 꼴이 그게 뭐냐. 너답지 않은데."

 "당신도 말이죠⋯⋯ 그렇다고 보자마자 웃습니까."

 "여자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칠칠치 못하구만."

 "사정이 있습니다."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메구미의 머리카락을 만져 주었다. 그리고 메구미가 오늘 유기견을 구조하는 현장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예상할 수 있었지만 데이트가 아니라 봉사 활동이었다.

 "다 합하면 서른 여섯 시간입니다. 오늘도 네 시간 잠복했어요. 녀석을 잡으려고."

 "잡았냐."

 "잡았는데요. 놓쳤습니다. 이제 됐다 생각했는데 여자애 하나 때문에 헛고생했어요."

 "여자애라니, 그러니까 이게 계집애한테 맞은 상처란 말이냐. 왜 그걸 다 맞고 있었어?"

 "다짜고짜 나쁜 놈이라고 소리치며 달려와서 마구 때리는 걸 제가 무슨 수로 막습니까?"

 메구미의 타겟은 동물 보호 단체에서 몇 번이나 구조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요주의견. 베테랑들조차 성공하지 못한 임무이기에 메구미도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기회를 엿봐야 했다. 마침내 오늘, 기다림의 종지부를 찍을 뻔했던 순간이 왔다. 그러나 목덜미를 붙잡힌 개가 도움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 턱이 없다. 당연히 죽어라 발악을 해댔고 하필이면 그때 녀석을 줄곧 돌봐 온 메구미 또래의 여자애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처참해진다.

 "푸하하!"

 뭐어, 메구미로서는 확실히 훈련받은 주술사도 아닌 여자애와 대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충분히 당황할 만하고 섣불리 손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여자애는 메구미에게 사과한 뒤 어쩔 줄 몰라하더니 자기도 구조를 도울 수 있게 연락해 달라며 번호를 알려 주고는 냅다 도망갔다. 아마도 얼굴이 빨개졌겠지.

 "오늘은 재수가 없었다 생각해라. 학대범을 너무 잡고 싶었던 나머지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든 거잖아."

 "그야 그렇죠. 저도 잡고 싶어 미칠 거 같아요. 누군지 눈에 띄기만 하면 이빨을 털어 버리고 싶다고요."

 "진정해. 워, 워."

 "죄송합니다, 흥분해서. 하지만 등에 단체 마크가 떡 하니 찍혀 있는데 학대범과 착각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네 마음 안다. 맞은 것도 서러운데 개를 놓친 자신에게 더 화가 났겠지. 또 기회가 있을 거다. 다음에는 같이 가자."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메구미의 전화기에 여자 번호가 늘어나는 건 묘한 기분이어서, 녀석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왜 찔러. 말로 해. 아, 그리고 고죠⋯⋯ 고양이에 대한 소식이 있습니다. 스즈카 씨가 궁금하시다면 말씀드릴게요."

 "⋯⋯실은 말이야, 꿈을 하나 꿨어. 녀석을 찾고 있었지. 근데 그 꿈에서는 동네 고양이가 다 하얀 털에 파란 눈이더라."

 "과연 우연이었을까요. 최근들어 고죠가 왠지 우울해 보이고 밥도 잘 먹지 않는다고 하네요."

 "우울이라니 그럴 리가⋯⋯ 아니,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어. 강아지풀 가지고 잘 놀았는걸."

 "그때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고죠는 사실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전혀 관심이 없달까."

 "뭐?"

 "평소에는 캣 타워에서 내려오지도 않거든요. 그날은 카운터에 있길래 별일이라 생각했어요."

 "맞아. 거기에 앉아서 나를 쳐다봤지. 약올리는 것처럼 이렇게 눈을 자꾸 깜빡거리고 말이야."

 "약올리는 게 아니에요. 반가움을 표현하는 거죠. 가끔 기분이 굉장히 좋을 때 하기도 하고요."

 "네 말은 녀석이 우울해하는 이유가⋯⋯ 에이, 설마. 잠깐 눈이 마주친 것뿐이었잖아. 우연이겠지."

 "글쎄요. 어쩌면 고양이들은 한 번의 눈맞춤으로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는지도 모르죠."

 그렇게 말한다면 메구미는 물론 나도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고죠는 처음부터 내가 인간과 다른 존재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는지도. 보호서에서의 추억과 꿈에서 찾아다니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봤다. 내가 간택된 건가. 고양이의 기본적인 습성도 모르는 나 같은 것보다 좋은 주인을 만나 새 삶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다음에 방문하면 고죠와 시간을 좀 더 가져 보는 게 어떨까요. 저는 방해하지 않을게요."

 "꿈에서 들은 그 소리가 정말 녀석이었는가. 이제는 고양이마저 나를 성가시게 하는구나."

 눈을 깜빡인 게 그런 뜻이었다니! 고양이가 먼저 내게 말을 건 셈이다. 다음에는 녀석과 대화라는 걸 해 볼까. 하여간 어딜 가나 고죠 놈들이 귀찮다니까. 인간이나 동물에게 봉사하는 취미 따위 가져 본 적 없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머리로는 귀찮다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입 꼬리가 계속 씰룩거렸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메구미를 보면 더 웃음이 났다. 역시 나도 좋은 어른은 못 되는지, 이럴 때는 시원하게 웃어야 직성이 풀린다.

 "하하하. 생각할수록 웃긴다. 개 잡으러 가서 개한테 물린 것도 아니고 사람한테."

 "다 웃었으면 지난번처럼 치료해 주세요. 다른 애들한테까지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너어. 그때 말했잖아. 한번만이라고. 누가 보면 어떡해 남사스럽게. 이번에야말로 진짜 마지막이다. 이리 와."

 "아무도 없는데요. 남사스럽긴요. 진짜 마지막이라고 결심했으면 당신도 더 냉정해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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