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묻겠습니다. 어째서 제 식신이 필요한 겁니까."
"이거 부끄럽구만. 나도 누에랑 같이 날아 보고 싶다." "역시 그렇습니까. 좋습니다만, 저는 책임 안 집니다." "위험한 거냐." "놀이 기구가 아니라 제 식신입니다. 어떨 것 같습니까." "내가 매달려 있을 때 만약 누에가 내키지 않으면⋯⋯." "당신을 떨어뜨릴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하시겠습니까?" 메구미와 술래잡기를 했던 날 도망치느라 정신없었지만 같은 날 저녁 나는 누에를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은 채 하늘 위의 누에를 그리고 있을 때 우연히 떠올린 것이 있다. 누에랑 상관도 없는데 그냥 비슷한 그림이라 그랬나 보다. 누군 좋겠다. 공중에 떠 있을 수도 있고. 계집애가 알아서 매달리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고죠는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속으로는 웃고 있었으려나. 아무래도 좋다. 나도 한 번쯤 높이 날아 보고 싶었다. 메구미는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자기 식신들의 힘을 빌릴 수 있다. 거대한 새의 형상을 가진 누에를 불러내서 날아오르는 것도 메구미에게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메구미가 있으니. 고죠의 무하한 따위는 이쪽에서 사양이다. "알았어요. 제가 누에를 잡을 테니까 저한테 매달리세요." "너라면 들어 줄 거라 생각했지! 역시 너밖에 없다 메구미!" "매달리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저를 끌어안으셔야 할 겁니다." "이렇게 말이냐?" 너무 들떠 있는 걸까. 두 팔로 와락 끌어안았더니 메구미가 그렇게까지 좋아할 일이냐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그야 물론 기뻤지만 철없는 부탁이라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거절하거나 무시했다 해도 메구미를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리고 저기⋯⋯ 이런 걸 여쭤봐서 죄송합니다. 속바지 입었습니까?" "왜애, 안 입었을까 봐?" "아, 물론 입었겠죠. 실례했습니다. 다른 뜻은 없었으니 넘어가 주세요." "뭐, 아침에 서두르다 깜빡하고 안 입는 날도 있긴 한데. 오늘은 입었어." 메구미는 나로 하여금 제대로 목을 끌어안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내 팔을 슬쩍 끌어올려 자기 어깨 위에 두었다. 갑자기 몸이 밀착되어도 놀라거나 하지 않게 천천히. 너무 조심스러워서 놀리고 싶긴 하지만 그런 점도 싫지 않았다. "날아간다고는 해도 누에가 가엾으니 직각으로 빠르게 떨어지겠습니다." "알겠다." "그럼 맞은편 건물까지 날아 볼게요. 보이시죠. 절대로 놓치면 안 됩니다." "너만 믿으마." 정말 기쁘다. 말보다는 뺨을 비비적거렸다. 공중으로 떠오른 다음에 잠깐 기다려 주려나 했는데 그럴 생각은 없나 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치마가 펄럭였다. 까마득한 낭떨어지와 대면하니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와아아! 바람 시원해! 역시 최고야! 속이 뻥 뚫리는 것 같다! 야호!" "뭐 하십니까. 야호가 아니잖아요. 손 흔들지 말고 저를 잡으라구욧!" 환호와 비명을 동시에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맞은편까지는 순식간이었다. 기와로 덮인 건물 위. 서 있는 건지 떠 있는 건지 헷갈릴 만큼 아찔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휘청거리다 마지막까지 메구미에게 에스코트를 받았다. "오늘은 햇빛이 좋으니 여기 잠깐 앉아 있다 가야겠다. 메구미 너도 앉아라." "저는 이만 기숙사로 돌아갈게요. 쿠기사키의 공부를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그러냐. 그래, 공부하러 가야 된다니 어쩔 수 없지. 푸핫! 꼬맹이는 꼬맹이구만. 기껏 바람 잡아 놓고 찬물을 끼얹는 건 뭐야. 거기서 노바라가 왜 나오냐고. 분하지만 눈치없다고 불평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무슨 기대를 한 거람. "그러고 보니, 일전에 노바라도 누에로 옮겨 줬지. 지브리의 한 장면처럼." "뭐가 지브리의 한 장면이에요. 그렇게 저를 보지 마세요. 놀리는 겁니까." 메구미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쁘지 않은데 그냥 조금 울컥했다. 망할 꼬맹이! 꼬맹이! 꼬맹이! 속으로 이렇게 분풀이를 하면서 꼬맹이에 의해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도 그런 자신이 그다지 어른스럽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볼에 손등을 대 보니 뜨거워서 괜히 민망해졌다. 흐트러져 보이지 않도록 치마를 끌어모은 뒤 죄없는 머리카락만 괴롭혔다. 메구미가 그런 나를 잠시 지켜보고 있다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털썩 앉으며 말했다. "에휴, 모르겠다. 쿠기사키에게는 제가 빠지는 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요." "설마 노바라도⋯⋯." "두 사람이 사귀게 되면 우리가 그걸 도와준 셈이죠. 미안하게 됐다, ." "내, 내가 뭘. 가만히 두고 볼 것 같냐. 녀석은 이쪽이 진작에 점찍어 놨다고." "누가 보면 스즈카 씨의 진심인 줄 알겠네요. 어쩜 그렇게 왔다 갔다 합니까." "네가 몰라서 그래. 인간의 몸에 기생하며 사는 것도 이만저만 힘든 게 아냐." 주술사가 아닌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내 고충도 당연히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알아 줬으면 한다. 곁에 있기만 해도 통하는 것이 마음인데 나와 내 그릇은 어떤가. 우리는 하나의 몸을 나눠 가졌다. 물론 나도 메구미에게 벌써부터 그런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 나를 '나'로 보는 것. 그녀를 '그녀'로 보는 것. 말처럼 쉽지만은 않겠지. 그래서 유지에게 더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유지라면 이쪽을 이해하지 않을까 하고. 메구미는 언제 눈치챘을까. 하긴, 그건 얼굴만 봐도 티가 난다. 지금쯤이면 본인만 깨닫지 못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다못해 격려 정도는 해 주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내 감정에 충실할 때가 아닌가. "다른 애들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네요." "바라는 바다. 가끔은 새로운 얘기 좀 하자." 내게도 나로서 있고 싶은 욕심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텨 왔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유난히도 버겁다. 그 시절 이후로는 이런 적이 없었건만. 역시 미성숙한 그릇을 고른 탓인가. 마음을 통제하는 것이 어렵다. 만약에, 내가 지금 들어가고 가 나오면. 꽤나 재밌는 상황이 될 거다. 메구미는 메구미대로 어색하겠지. 한번쯤은 장난쳐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런데 나를 완전히 지워 버리면 메구미와 더 이상 이렇게 있을 수 없다는 게 애달프다. 나는 메구미에게 한뼘 다가갔다. 눈이 마주치자 녀석이 나를 보며 웃는다. 무뚝뚝한 것도 좋고 이렇게 웃는 것도 정말 귀엽다. 나중에 의 마음이 바뀌거나 노바라가 새로운 감정에 눈을 뜨진 않겠지. 그런 건 별로 재미 없는데. "스즈카 씨, 여기 오시기 전에는 온천 마을에 계셨죠." "그래, 내 그릇⋯⋯이었던 녀석에게 요양이 필요했다." "한적한 시골에 있다가 도시로 나와서 답답하시겠어요." "그곳에도 때로는 인간들이 넘쳤지만. 부정 못하겠구나." 바람 한 점 없이 맑은 날. 구름을 보고 있으면 푹신푹신한 느낌이다. 이래서야, 나도 너무 알기 쉽다. 마음이 푸른색으로 물들면 이유 모를 두근거림도 선명해진다. 그럴 리 없는데도 꼬맹이 따위의 존재가 내게 이렇게나 컸던 적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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