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메구미에게 메시지들을 보냈다. 잘 잤냐, 밥 먹었냐 등의 대수롭지 않은 것들. 그런데 오늘따라 답이 없다. 아직 자나.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남자 기숙사에 과감히 와 버렸다. 아프기라도 한 거면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까.

 "메구미. 그만 일어나라."

 똑똑. 소심하게 문을 두드리고 옆방을 힐끔 쳐다봤다. 딱히 못 올 데 온 것도 아니고 유지가 본다 해도 상관없지만 굳이 알려지고 싶지도 않았다.

 "녀석아.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냐."

 똑똑똑. 좀 더 세게 두드렸다. 곧 안에서 걸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터벅터벅. 덜컥. 아니나 다를까 부스스한 몰골의 메구미가 얼굴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꼴이 그게 뭐야? 임무였다고는 들었다만."

 "후아암. 아, 네. 잠을 별로⋯⋯ 졸려요⋯⋯."

 내 쪽으로 기울어지는 메구미를 밀어넣고 잽싸게 들어와 문을 닫았다.

 "답장이 없길래 혹시나 하고 왔더니 역시나구나. 어디 가? 또 자려고?"

 "점심식사 하셨나요. 아직이면 뭐라도 드세요. 저는 조금만 더 잘게요."

 "이 녀석이 정말?"

 남자 기숙사까지 깨우러 와 줬더니. 그새 메구미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쫓아가서 이불을 두고 실랑이 벌이다 스매싱을 날렸다.

 "으으응. 싫어어. 하지 마. 엉덩이 때리지 마. 누나⋯⋯."

 "누가 네 누나야. 어휴. 아직 애는 애구만. 얀마! 간지럽힌다!"

 "아, 아하하! 하하하핫! 그만! 알았어요⋯⋯ 알았다구욧⋯⋯."

 눈이 스르르 감기는 걸 보고 이불을 확 제꼈다. 계속 잠투정을 하더니 건방진 녀석이 나를 냅다 침대에 메꽂았다. 헤드록까지 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이거 안 놔? 앙?"

 "아, 몰라. 스즈카 씨도 자든가요."

 쬐끄만 게 어디서 감히. 하지만 이불 냄새를 맡으니 솔직히 자고 싶긴 했다. 망할 꼬맹이. 너만 잠이 부족한 게 아냐. 나야말로 피곤해 돌아가시겠거든. 주제에 힘은 세서 이제는 고등학생한테까지 쩔쩔 매고 있는 내 처지가 말이 아니다.

 에라 모르겠다, 몸을 축 늘어뜨렸다.

 "고죠 그 녀석도 참. 애를 어떻게 굴리는 거야⋯⋯."

 "⋯⋯."

 "성장기인데 잠은 실컷 자게 해 줘야 될 것 아냐⋯⋯."

 새삼 가엾기 그지없어 혀를 끌끌 차고는 메구미를 토닥토닥 두드려 줬다. 문득 힘 빠진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말 그렇네요. 고죠 쌤한테 말해 주세요. 메구미의 키가 컸음 좋겠다, 근육도 많이 붙었으면 좋겠다고요."

 내가 그런 말을 왜 해? 까불고 있어! 걱정되는 건 당연하지만 말투가 왠지 이상해서 꿀밤을 때려 주려다 말았다.

 "오늘만 봐주는 거다."

 "네."

 꼬맹이라도 사내 놈이니 그대로 태연하게 잘 수는 없었다. 구겨진 이불을 곧게 펴서 덮어 주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와. 밥까지 차려 주실 줄은 몰랐어요."

 "냉장고 안에 든 게 없구나. 뭐 먹고 사냐."

 "스즈카 씨는 평소에 어떻게 드시는데요?"

 "여자친구 만들어. 혼자서도 잘 챙겨 먹고."

 후다닥 요리했다. 메구미가 씻는 동안. 별로 대단한 건 없다. 더 잘해 주고 싶어도 재료가 부족했다.

 성장기 애들이 대개 그렇지만 남자애들은 정말 잘 먹는다. 많이. 빠르게. 입에 넣는 양부터 다르다. 밥이 한 웅큼 들어갈 때 한 번, 계란말이같은 반찬을 한입에 먹을 때 두 번 놀란다. 그게 다 들어가는 것도 신기하고, 그걸 소화하는 것도 굉장하다.

 "메구미 네가 먹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묘하게 기분이 좋아진다. 어째서일까."

 "여자친구에 이입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스즈카 씨야말로 남자친구 만드세요."

 "이 녀석이⋯⋯ 아니,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오랫동안 그런 기분을 모르고 살았구만."

 "동생 뒷바라지하느라 자기 삶을 살지 못한 누나의 대사 같아서 제가 다 뭉클해지네요."

 발끈하면서도 메구미를 바라보는 건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흐뭇한 표정을 짓게 된다. 어쩌면 메구미를 보면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부터 잘못됐고, 내 안에 무언가 결여되었고, 그것이 이성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뜻 마음이 움직이질 않아. 한번이라도 좋게 끝났던 기억이 있어야 말이지."

 "그러니까요. 또 나쁜 남자한테 걸려서 고생하지 말고 안목부터 길러요. 부탁입니다."

 "메구미 네가 알고 있는 내 과거 남자라면⋯⋯ 본인 말로는 여자 만난 지 오래됐다던데."

 분주히 밥과 반찬을 나르던 손이 멈추었다. 메구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긴, 9년이면.

 참아 보려고 했는데 입 꼬리가 올라갔다. 나는 말로만 죽어 죽어 하지 고죠한테 덤비지 못하니까. 메구미가 나 대신 분노하고 은근히 돌려 까는 건 싫지 않다. 애초에 발랑 까진 놈이 여자랑 놀러다니든 뒹굴거리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그 따위 성격으로 여자를 가볍게 본다는 게 괘씸하다. 물론 그렇다고 메구미가 고죠를 개똥같이 봐도 좋다는 건 아니다.

 "사실이든 뻥이든 외로움을 타고 있다는 건 진짜다. 솔직히 나도 마음이 별로 편하지는 않아."

 "다른 여자들도 무슨 생각이었는지 뻔하네요. 알겠으니까 그만해요. 이런 얘기 밥맛 떨어져요."

 요즘들어 생각을 조금 달리하게 됐다. 메구미에 대해. 내 감이 말하고 있다. 냉정한 척하고 있지만 질투 많고, 치정 문제에 있어서는 사소한 일에도 용서가 없는 남자라고. 하지만 진짜 문제는 메구미가 아니라 내게 있다. 뭐가 문제냐면, 내가 그런 남자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야 이만큼 살다 보면 여유가 생겨서 귀엽게 봐줄 수도 있다.

 이거야 원. 슬슬 연애든 뭐든 정말 해야겠다. 다만, 나는 고죠가 왜 정착을 못하는지 알 것 같다. 조금 돌려 말하면 마음에 여유가 없다. 대놓고 말하면 귀찮다. 그래도 애정욕은 남아 있어서 외로워하고 누군가의 곁에 머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다.

 "이것까지만 말하게 해 다오. 고죠가 그다지 좋은 애인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만. 과거에는 나도⋯⋯ 나는 그런 남자에게조차 버림받아도 싼 여자였다."

 "무슨 말씀이시죠."

 "무슨 말이냐면⋯⋯ 뻔한 거 아니냐. 나는 그이를 한 번도 제대로 품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이제껏 고죠도 내게 사랑받은 기억 따위는 없을 거란 얘기다."

 "그이⋯⋯ 언제나 그 놈 그 녀석 하시더니. 지금 마음이 정말로 불편하신가 봐요. 저도 부끄러워해야 하나요."

 "메구미⋯⋯."

 눈빛이 싸늘했다.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다. 고죠와 내 관계 같은 건 메구미와 만나기 전부터 엉망이었는데도. 헤어진 여자친구를 이용해 먹는 고죠나 그런 놈에게 빌붙는 나나 할말이 없다. 그딴 꼴을 보고도 한편으로는 믿었나 보다.

 그래도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겠지라고.

 "이해했습니다. 두 분 사이 별것 없네요."

 메구미 앞에서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나 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다. 먹는 모습이 예뻐서만은 아니다. 잠시뿐이라도 기뻤다. 그런 눈빛을 볼 수 있어서. 메구미에게는 나도 사랑을 주거나 받을 자격이 있는 평범한 여자라 생각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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