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봅니다."

 "오랜만에 직접 감주를 만들었다."

 "단맛이 나는 음식은 싫어하잖아요."

 "맞아, 설탕 들어간 거. 감주는 좋아해."

 "그런 부분은 스즈카 씨답네요. 옛날 사람들은 감주를 차게 마시는 것으로 더위를 이겨냈다 들었습니다."

 "그거다! 이제 여름이잖아. 너도 마시는 거 어때. 지금쯤 시원해졌을 테니 내 방으로 가자. 부끄러워 말고."

 "감사합니다. 조금 껄끄럽지만 부끄럽지는 않아요. 감주니까 적당히 발효되어서 알코올은 전혀 없는 거죠?"

 "글쎄, 쬐끔 술이 됐을지도. 얼렁뚱땅 만든 건 처음이라."

 "쬐끔도 곤란해요."

 "괜찮아. 사내 놈이 술 몇 방울 들어간다고 쓰러지기야 하겠어. 하하하."

 쌀 한 톨이 없어 굶어 죽는 놈들이 산더미 같았던 시절과 달리 배가 부르다 못해 살이 찌는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아졌다. 지금은 어딜 가도 썩어날 정도로 넘쳐난다. 기숙사에서는 혼자 밥을 먹으니 더 그럴 수밖에 없고 외식을 자주 하다 보면 묵은 쌀이 나오기 마련이다. 본래의 맛을 잃었다고는 하나 버릴 수야 없다. 떡을 해 먹을까. 아니, 그보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인간들의 발명품 중 마음에 드는 것 하나! 내게는 밥솥이 있다! 요즘 밥솥은 쓸모가 많다. 밥만 짓는 것이 아니라 요리도 할 수 있다. 감주라고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 오랜만에 감주를 만들어 보자. 몇 가지 준비를 마치면 일정한 온도로 발효시키는 것뿐.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간단하다. 그렇게 해서 스즈카 고젠 표 감주가 완성되었다. 오늘은 시원한 감주 한 사발로 다가오는 여름을 맞이해야지. 룰루랄라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메구미와 마주쳤다. 혼자 먹긴 아까워서 녀석을 방에 초대했다.

 "어떠냐."

 "어떠냐고 물으셔도⋯⋯ 바로 연상되는 그 맛입니다. 무지 달아요."

 "그치? 맛있지? 옛날에는 이걸 만들기 위해 종일 불을 지켜봐야 했단다."

 "지금은 전기 밥솥이 그 일을 대신 해 주는 거군요. 새삼 감탄하게 되네요."

 두 개의 컵에 감주를 따라 메구미와 나눠 마셨다. 지쳐 있을 때 감주 한 잔은 몸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준다. 기분도 좋아지는 것 같다.

 "캬아. 좋다!"

 "영감님 같아요."

 "뭐? 감주 마실 때 이걸 빠뜨리면 개운하지가 않단 말이야."

 "다른 애들이 있을 때는 하지 마세요. 도 생각해야죠."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메구미의 잔소리가 묘하게 간지러웠기에 히죽거리며 웃었다. 영감님 같다 뭐다 해도 메구미는 이런 내가 재밌나 보다.

 "맹꽁이처럼 서 있지 말고 앉아 마시자꾸나. 앉을 곳이라 봤자 책상 의자뿐이다만."

 "그건  의자이기도 하니까 허락 없이 쓰면 안 될 거 같아요. 바닥에 앉을게요."

 "그럼 내 방석 줄게."

 "네, 고마워요."

 메구미가 일어나려 할 때 엉덩이 밑으로 방석을 쏙 집어넣었다. 하나 사다 놓길 잘했다. 방석이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좌식 문화가 남아 있던 시절에는 의자에 앉으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고 기분이 이상했다. 반면에 고죠 당주님은 의자를 선호해서 식사할 때라든지 많이 싸웠다. 드문드문 그때를 떠올리게 되면 웃음도 나고 탄식도 난다. 싸우긴 했어도 여름에 풍경 소리를 들으며 감주를 마시는 게 좋았다. 그래서 생각했던 걸까. 누군가 옆에 있음 좋겠다고.

 "너랑  말이야. 같이 지내는 데 문제 없냐. 친구로서."

 "저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쪽은 어땠는지 모르겠네요."

 "유지나 노바라에 비해 아직 너를 어색해하는 것 같다. 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네, 그녀에게 잘못한 것은 딱히 없습니다. 자신에게 상냥하지 않은 사람이 무서운가 보죠."

 물론 감주 때문만은 아니고 얘기하고 싶은 것도 있었다. 메구미가 다른 두 녀석에 비해 친절해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사실상 를 가장 제대로 알고 있는 녀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메구미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는 또래 계집애들보다 순수하고 두려움도 많다. 사람을 대하는 게 어색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메구미 쪽이 보통인데.

 모처럼 학교로 돌아왔다. 동급생이 세 명뿐이다. 험난한 일도 많이 겪게 될 테니 나와의 인연에 의미가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기억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그녀와 나의 운명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신물이 났다. 책임으로부터 회피하려는 내가 혐오스럽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점점 끝을 봐야 할 때가 다가오는 것 같다.

 "유지의 흉내를 내라는 게 아니다. 노바라한테 하는 만큼이면 돼."

 "그건 어렵습니다. 아니, 싫습니다. 이번에는 당신 말 안 들을래요."

 "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 모두를 생각해 하는 말이야."

 "모두를 위한 게 뭔데요.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잔소리하지 마요."

 "평소에 얌전한 녀석이 이상한 데서 반항하는군. 너, 취했냐? 풉."

 "당신 비위 맞추려고 아무 여자한테나 아부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꼬맹이들의 관계성은 귀엽기만 한데 듣고 보면 현명하기도 하다.

 "그냥 톡 까놓고 말해서 저는 쿠기사키가 더 귀엽다고 생각해요."

 "후시구로 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고야?"

 "농담 아닙니다."

 "⋯⋯."

 차라리 취해 버리면 훨씬 귀여울 텐데.

 "나도 참. 괜한 참견을 해서 미안하다."

 "알면 됐어요."

 "그래, 너도 남자였지. 앙큼한 녀석 같으니라고."

 "당신은 편애하지 마세요. 저랑 다를 게 없잖아요."

 실제로 다를 게 없다고 말하면 어떤 반응일지 보고 싶기도 하다. 꼬맹이가 몇 명 있든 간에 메구미는 유일무이한 존재다. 진작부터 흔들림 없는 위치에 있었다. 이미 완전하니 가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겠다. 그건 알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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