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술사는 임무를 위해 저주가 짙은 곳을 직접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가끔 뜻밖의 살을 맞는 일도 있다. 놈들은 살이란 표현을 쓰지 않지만 나는 옛날부터 장소와 관련된 저주를 모두 하나로 묶어 살이라 했다. 저주란 인간이 아닌 내가 봐도 악독한 것이 있는가 하면 감기처럼 미약해서 며칠 만에 저절로 사라지는 것도 있다.
"정말 와 주셨네요." "그래. 몸은 어떠냐." "오전 내내 잤더니 열은 내렸어요." 어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니 갑자기 열이 나더랬다. 별것 아니라 들었지만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었다. "저, 배고파요." "아아. 그렇겠지." 간병하러 올 생각은 어제부터 했기 때문에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미리 정해 두었고 장을 보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았다. 메구미와는 틈틈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화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른 녀석이었다면 모르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듣자하니 어제 점심 이후로 계속 굶은 모양이다. 갑자기 무거운 음식을 집어넣는 것은 좋지 않겠지. "왜 나를 쫄쫄 따라다니냐. 침대에 가서 누워." "요리하는 거 구경하고 싶어요. 방해 안 할게요." 기숙사에서 요리 한 번 해 보고 이해하게 됐다. 꼬맹이들이 왜 그리 밥해 먹는 것을 귀찮아하는지. 혼자 쓰기에는 충분한 방이지만 딱히 주방이랄 공간은 없다. 뭐 하나 제대로 만들라 치면 싱크대와 식탁을 계속 오가야 한다. "뭐 재밌는 게 있다고. 거기 앉든가." 귀찮다는 듯이 말하면 얌전히 침대로 갈 줄 알았는데. 메구미의 눈은 내가 요리하는 내내 나를 쫓아다녔다. "레시피 보고 그대로 따라했다. 가 자세히 적어 줬어." "어쩐지. 아니, 제 말은. 스즈카 씨가 만들어 줘서 더 맛있어요." 메구미가 식사를 마치고 잠깐 양치하러 간 사이 나는 설거지를 하고 그가 책상에 펼쳐 놓은 두꺼운 문제집과 학용품을 정리했다. 내가 메구미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렇게 사소한 일 정도는 해도 되겠지. 창문을 열자 바람이 느껴졌다. 적당히 시원하고 기분 좋아서 환기도 할 겸 열어 두면 좋을 것 같았다. 메구미가 침대에 앉는 것까지 보고 이제 갈까 했는데 좀 더 있다 가도 된다기에 침대 옆에 앉아 잡담을 나눴다. 놀러 가자. 깨끗이 털고 일어난 뒤 시간을 내서. 차를 마시든 밥을 먹든 뭐든 좋으니 외출하자. 대체로 그런 내용이었다. 요리할 때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나 보다. 메구미가 만져 줬다. 가만히 있자니 낯간지러운데 피하기도 뭐했다. 그때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앉아 있어라." 나는 메구미 대신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을 열 때 고죠가 서 있다면 일단 거대한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마주보기 위해 나는 고개를 젖히고 고죠는 숙여야 한다. 그런데 고죠가 평소보다 더 몸을 숙이고 다가와서 낮게 속닥였다. "안녕." 곧장 귀를 막았다. 간지럽달까 깜짝 놀랐다. 발끝부터 소름이 돋았다. "무슨 인사를 그렇게 하냐⋯⋯." "요즘들어 너랑 메구미가 자주 속닥거리는 것 같길래. 재밌어 보여서." 왜 나까지 목소리를 낮춰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수군거리고 있었다. 고죠가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허리를 펴고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내밀었다. "죽이랑 반찬 몇 개 만들었어. 지금쯤이면 엄청 배고플 거 아니야." "내가 벌써 차려 줬지. 뭐 이건 저녁에 먹으면 되겠네. 내놔. 잘 가라." "잠깐!" 고죠에게는 방안을 들여다볼 틈도 주지 않고 봉투만 낚아챈 뒤 문을 닫았다. "⋯⋯." 메구미는 별로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따분한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기왕이면 저 대신 고맙다는 말도 전해 주지 그러셨습니까." "고맙긴 개뿔. 빨리나 오든가. 애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나." "고죠 쌤이 제 보호자는 아니잖아요. 그래도 두 분이 걱정해 주시니 기분 좋네요." "애초에 내가 간병하러 온 것쯤은 미리 예상하고 과일을 사 와야지. 센스 빵꾸 놈." 그랬다면 비교되지 않았을 텐데. 솔직히 봉투 크기만 봐도 압도적인 차이가 느껴져 분한 마음도 있었다. 뭐야, 고죠 사토루. 어째서 평범하게 요리할 줄 아는 거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아 왔던 주제에. 그나저나 내게 그런 취급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고죠가 아닌데 문 밖이 조용했다. 센스는 없을지 몰라도 여전히 눈치가 빠르다.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어. 한숨 더 자는 게 어떠냐. 스마트폰 만지작거리지 말고." "아, 휴대폰은 줘요. 심심해요. 아까 충분히 잤으니까 바로 다시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아요." 메구미가 습관처럼 전화기를 집으려 하기에 재빨리 낚아채서 멀찍이 떨어진 책상 위에 놓았다. "주세요." "안 돼!" 메시지 앱 알림이 울렸지만 유지와 노바라가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읽어도 되는데 시끄럽기만 할 것 같아 진동으로 바꿨다. "필요하다면 뭐든 가져다 줄게. 하지만 이 요물은 안 돼. 이것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을 테니까." "아닌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알았어요. 그럼 제가 잠들 때까지는 돌아가지 마세요. 여기 있어요." 유지의 훈련 시간은 멀었고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이다. 메구미가 원한다면 곁에 있어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까도 충분히 떠들었는데 이제부터는 무슨 얘기를 하면 좋을까. 유리에 비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해 봤다. 아까처럼 머리카락을 만져 주려는 듯한 손길이 느껴졌다. 그새 다시 흐트러졌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느낌이 달랐다. 가만히 있자니 메구미에게 과감히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는 지금 무슨 생각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걸까. 부우 하고 메구미의 책상 위에서 진동이 울렸다. "네 스승한테서 전화 왔구나. 근데 뭐야? 동영상?" "영상 통화예요. 받아 보세요." 영상 통화? 어디서 들어 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어떤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초록색 버튼을 당겨 평소처럼 받았다. 「앵글 고쳐 주지 않을래. 네 한쪽 얼굴밖에 안 보이잖아.」 "어! 뭐야! 내가 보이냐? 그럼 이건 녹화된 게 아닌 거야?" 「메구미 듣고 있지? 기분이 어때? 어제보다 좀 나아졌어?」 "네, 거의 나았습니다. 저⋯⋯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방까지 가져다 주셔서 감사해요. 저녁에 먹으려고 일단 냉장고에 넣어 두었어요. 잘 먹을게요. 고죠 선생님." 저쪽에서 촬영되는 걸 여기서 바로 볼 수 있는 건가. 생방송처럼. 그게 맞다면 고죠는 보이는 대로 지금 자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겠지. 바쁜 줄 알았더니 완전히 한가해 보이잖아. 「메구미가 잘못한 건 없지. 야, 난쟁이똥자루. 아까는 잘도 문전박대했겠다. 저리 가. 비켜. 너 꼴 보기 싫어.」 "비키라고 해도 나는 이 물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모른다. 사진 찍을 때처럼 하면 되는 건가. 어이, 이렇게 하면 되냐." 「그쪽이 아니에요. 반대쪽 갖다 대고 있어요. 지금 카메라가 누굴 찍고 있는지 눈이 달렸음 보세요. 어우 진짜 답답해.」 "오호라. 구석에 있는 작은 것이 나를 보여 주는 게로구나. 아 까짓거 모를 수도 있지 그런 거 가지고 면박을 주고 그래!" "풉⋯⋯." 지금뿐만 아니라 예전에도 고죠와 나는 틈만 나면 티격댔다. 심지어 메구미와 츠미키가 있는 데서도 싸웠다. 언제였더라. 다툼을 지켜보던 메구미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다. 지금이야 웃는 얼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정말 진귀한 것이었다. 그런 메구미를 봤을 때 고죠도 나도 무심코 할말을 잃고 싸움을 멈추었다. "스즈카 씨, 제 옆으로 와요. 저랑 같이 화면에 나오게요." 메구미가 웃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고죠가 일부러 시비를 걸어 오는 것쯤은 개의치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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