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려 보이네, 스즈카."

 "커피 마시고 가도 되냐."

 최근에는 학생이란 신분이 얼마나 귀찮은지를 실감하고 있다. 일반 학교와 비교할 순 없어도 죽도록 귀찮긴 매한가지다. 온종일 앉아 있는 건 그것대로 고역이랄까. 수업 시작까지 시간이 비어 휴게실에 들렀다가 고죠와 마주쳤다.

 "조금만 마셔. 성장기에 카페인은 좋지 않으니까."

 "뭐?"

 "키 안 큰다고. 난쟁이똥자루."

 "참 나. 별 걱정을 다 한다. 흥!"

 천년 역사를 지닌 내가 고작 스물 여덟 살 인간 놈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다니.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자 눈이 스르르 감겼다. 드르륵 드르륵. 원두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죠가 드리퍼에 필터를 깔고 천천히 온수를 부었다.

 예전 같음 누군가에게(아마도 나) 전화해 심부름을 시켰겠지. 절대 자기 손으로 안 했을 거다. 변했다고 느낀 게 언제였더라. 솔직히 나는 가끔 녀석의 일인칭이 귀엽다고 생각한다. 길었던 공백 만큼 지금은 내가 모르는 부분도 많다.

 "네가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너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잖아."

 "무슨 뜻이냐."

 "이만하면 잘 적응한 셈이니 다행이란 뜻이야. 이번에는 적응하기까지 좀 더 시간이 걸릴 줄 알았거든."

 "어쩐지 말에 가시가 있는데. 너,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 사실을 알려 주마. 후쿠오카에서 지낼 때 나는 반나절 동안 자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잠도 마음껏 못 자고,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시고, 남자도⋯⋯."

 "⋯⋯."

 "그냥 잘 몰라서 그러는데, 요즘 애들은 어때?"

 "내가 어떻게 알아."

 아무리 고죠라도 이번에는 조금 난감했던 걸까. 되는 대로 떠든 건 나였지만 꼬맹이 안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었을 리도 없는데. 문득 고죠의 표정이 보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는 머잖아 태연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머그컵을 내밀었다.

 "수업 시간에 졸지 마. 복도에서 손 들게 할 거야."

 "재밌는 농담이군."

 "진짜루."

 "⋯⋯."

 기다림 없이는 마실 수 없는 커피 한 잔을 봐서 넘어가기로 했다. 고죠는 제 컵을 가지고 내 옆에 앉았다. 코를 대 보니 신기하게도 꽃과 풀내음이 났다. 커피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어떤 원두냐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는 것 같다.

 "너랑 내 커피 색이 묘하게 다르지 않냐."

 "내 커피에는 다른 원두를 더 넣었거든."

 "여러 가지 원두를 섞는다는 말이냐. 재미있군."

 "그래? 한 모금 정도는 바꿔 마셔도 상관없는데."

 "그럼 한 모금만."

 나는 고죠와 컵을 바꿔 들었다. 뜨거운 김을 후 불어내고 한 모금 마신 뒤에 그대로 뿜을 뻔했다. 놀란 것은 고죠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생각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던 당연한 결과인데도 어째서인지 둘 다 방심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제정신이냐!"

 내가 먹은 것이 커피였는지 설탕이었는지 분간이 안 간다. 원두 본연의 맛을 고집하는 사람으로서 고약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고죠에게 냉큼 컵을 돌려주고 나도 내 컵을 뺏어 들었다. 두 가지 맛이 중화되어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이상하군. 고죠 너, 언제부터 내 컵을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게 된 것이냐."

 "그게 뭐 이상한가. 너도 방금 내 컵 썼잖아. 자기야말로 신경도 안 썼으면서."

 "예전에 기껏 사다 준 커피를 내던진 놈이 있었지. 그 꼴을 보고 성가시다 느낀 뒤로 자잘한 건 신경쓰지 않게 됐다."

 "나는 첨 듣는 얘긴데. 생각해 보니까 그런 놈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 그 자식, 여자 친구랑 키스는 어떻게 했대?"

 여전히 애 같은 입맛을 가졌는가 하면 아저씨답게 능청도 떨고. 확실히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지금 녀석은 어떤 사내가 되어 있는 걸까. 뭐라고 해야 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습지만⋯⋯ 평범하게 흥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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