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훈련을 하지 않는 날이라 수업이 끝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오전에 꼬맹이에게 쇼핑을 맡기고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서 뒹굴거린 게 전부다. 꼬맹이가 태블릿으로 틀어 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적어도 고죠 놈의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유지가 위험해. 잠깐 가 줄 수 있어?」

 문을 박차고 기숙사 밖으로 나갔을 때, 황당하게도 그와 마주쳤다. 그제서야 낚였다는 걸 알았다. 본인이 갈 수 있다면 내가 딱히 필요 없는 것 아닌가. 그대로 돌아서서 다시 들어가려 했지만 뒷덜미를 붙잡히고 말았다. 정신차렸을 때는 이미 끌려온 뒤. 쿵쿵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아직 주력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유지가 맨몸으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어떤 멍청한 놈이 엉터리 보고서를 써서 올렸을까. 그치?"

 드물긴 하지만 주술사가 파견되기 전 사전조사 단계에서 실수가 있었다고 가정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누구든 싸대기 맞아도 싸다고 생각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럼에도 유지는 덤덤하게 대처하는 듯 보였고 새삼 감탄이 나왔다.

 "규칙을 알려 줄게. 지금부터 유지를 위해서 싸우는 거야."

 당연히 내게는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제자들 수련인형으로도 모자라 별 갖잖은 일에 다 써먹는구나. 그래 봤자 떨거지지만 오래 전 봉인되어 뿔뿔이 흩어진 내게 손쉬운 상대라 말하기도 어렵다. 결국 보기 좋게 한 방 먹었다.

 "스즈카 쌤!"

 "물러나 있어라."

 주령에게 인간들과 같은 인격이 존재하냐면 그렇지 않다 해도 주령이 두려움을 느끼냐고 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놈들도 불제되거나 봉인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저항하고 때로는 방어적인 행동을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죠를 의식해서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내 등장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으니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고죠인지 나인지 긴가민가했는데 머잖아 저쪽임을 알았다.

 놈의 중얼거림이 어눌하지만 분명히 들렸다. 고죠 사토루라고. 그 뒤에 이어질 상황은 불보듯 뻔했다. 너무 빨라서 냅다 몸을 던졌다. 어차피 고죠는 당하지 않는다. 알고 있지만 막아야 했다. 내가 민망해지는 건 마찬가지니까.

 "나까지 지켜 주는 거야?"

 "방해되니까 비키란 거다!"

 고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다른 주술사들과 다른 점은 내게 싸우지 말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더 열받는 것은 이쪽이다. 나를 가르치려 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주술사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

 명백한 선과 악은 없다. 그건 놈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다만 싸움의 명분은 무언가를 부수는 쪽보다 지키는 쪽에 있는 게 세상의 이치다. 솔직히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다. 굳이 한 쪽을 택해야 한다면 답은 이미 정해진 셈이다.

 지키면 되는 거지. 속으로 중얼대며 욕지기를 삼켰다. 적을 만들지 않는 게 싸움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여겨 왔건만. 고죠는 그것마저 나를 대신해 결정지었다. 지키기 위해, 누구를 상대해야 하는가. 내게는 거부할 힘이 없다.

 적을 처리한 뒤, 유지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불쑥 튀어나온 탓에 놀랐지만 웃음이 터졌다.

 "괜찮으세요?"

 "이 정도쯤은⋯⋯ 헉."

 아니야. 끝나지 않았어.

 "왜 그러세요? 저기, 다친 거 얼른 치료해 주세요. 가⋯⋯."

 " 지금 고통을 느끼지 못해. 걱정 말고 물러나 있어라, 유지."

 어리둥절해하는 유지를 억지로 밀어내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공기가 뒤바뀌며 무게를 더해 갔다.

 "혹시 모르니, 고죠에게 붙어 있⋯⋯ 윽!"

 "쌤!"

 떨거지 주제에. 의식이 날아갈 뻔했다. 아니, 잠깐 끊겼는지도 모른다. 어퍼컷을 세게 맞은 정도.

 유지와 눈이 마주쳤을 때 녀석이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낙하되었어야 하는데, 이상하다.

 주변이 조용했다. 성가신 것들을 단숨에 고요함으로 제압해 버리는 힘. 눈을 떠 보니 나는 유지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니, 유지가 아니었다.

 "손이 많이 가는 여자군."

 여전히. 바람처럼 목소리가 들려 왔다. 따스한 햇살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위화감과 평온함이 느껴졌다. 앞머리를 넘기지 않아도 바람에 날려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이의 총기 어린 눈빛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라? 나 지금⋯⋯."

 "유지⋯⋯ 유지냐⋯⋯."

 "예? 네, 유지인데요. 저는."

 "그럼 빨리 내려놔. 창피하니까."

 유지를 밀어내기까지 하며 나는 다급히 그와 떨어졌다. 맞아서인지 뭐 때문인지 몽롱한 기분을 쉬이 떨쳐낼 수 없었다.

 "고죠 쌤! 왜 진작 나서 주시지 않은 거예요?"

 유지가 따지자, 고죠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설교하려고? 선생님한테."

 "정말 중요한 때에 늦으면 어쩌시려고요."

 "하아⋯⋯ 그래, 좀 더 심하게 말해도 돼."

 "일단 학교로 돌아가요. 걱정이에요."

 "역시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네, 애들은. 부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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